소피아 로젠펠드의 ⟪선택의 시대⟫는 현대 자유의 역사 속에서 인간의 선택 개념이 어떻게 시장 중심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형태로 변질되었는지를 추적한다. 쇼핑, 연애, 투표 등 일상의 선택 행위들은 타인의 관점과 공동선을 고려하지 않는 고립된 개인의 소비 행위로 탈바꿈해버렸으며, 이는 신자유주의 질서가 낳은 결과다. 진정한 해방은 선택의 자유를 시장 논리로부터 회복하고, 공동체적이고 타자 지향적인 선택 방식을 되찾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앤 애플바움의 『Autocracy, Inc.』는 미국과 그 동맹국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있으며 이에 반대하는 국가들은 독재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는 고루한 이분법을 반복하지만, 실제로는 서구 자체가 점점 더 감시국가적, 과두제적 현실로 이행하고 있는 가운데 이런 구분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책은 러시아, 중국, 이란, 베네수엘라 등 ‘비민주적’ 국가들을 도매금으로 규탄하면서도, 미국의 군사주의, 불평등, 표현의 자유 억압, 글로벌 개입주의 등은 철저히 외면한다. 애플바움은 서구 엘리트의 가치 붕괴를 외면한 채, 전제정과 싸운다는 신화를 유지하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미국 중심 세계질서가 내적 모순으로 붕괴 중임을 반증하는 자기 합리화로 읽힌다.
기후위기, 무역전쟁, 권위주의 확산이 겹치는 오늘날, 이마누엘 칸트는 ‘자유’를 미래로부터 되짚어 계획하는 사고방식으로 제시하며, 자율성과 공공이성, 국제협력을 통해 인간의 불완전성 속에서도 진보의 가능성을 찾을 것을 강조한다. 그는 소비주의를 넘는 집단적 열망, 장기적 기후 계획, 지역 중심의 생산과 공정한 전환을 통해 자유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디지털 시대의 파편화된 여론 공간을 극복하기 위해 독립 언론과 분산형 플랫폼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결국 칸트는 현세대가 단기 이익을 넘어 공동의 미래를 상상하고 구성해가는 '사유의 예술(Denkungsart)'을 되살려야 할 때라고 말한다.
푸코와 리프는 정치적·성적 정체성에서 상반되지만, 개인의 자율성과 정체성이 형성되는 공간과 조건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이 글은 그들의 사유가 ‘비가시성’, ‘금기’, ‘제도적 틀 속의 탈주’에 관해 어떻게 수렴하며, 현대의 해방 담론과 신좌파적 공간 낭만주의를 비판하는 데 어떤 통찰을 제공하는지를 고찰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샤워기, 냉장고, 가스레인지 같은 가전제품의 에너지 효율 기준을 ‘개인 자유’ 침해로 규정하며 철폐에 나섰다. 이는 산업계와 가스업계의 로비와 맞물린 조직적 캠페인으로, 효율기준을 자유 침해로 프레이밍하며 규제 철폐를 추진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도입한 규제가 광범위하게 폐기되면서, 장기적으로 미국 가정과 기업이 누릴 수 있는 에너지 절감 효과와 비용 절감이 위협받고 있다.
20세기 좌파는 안정된 노동계급인 프롤레타리아에 기반해 성과를 냈지만, 신자유주의 이후 새로 부상한 불안정 노동계층 ‘프레카리아트’에는 무관심했다. 프레카리아트는 불안정 노동, 박탈된 권리, 계급 내 분열 등 고유한 특징을 지닌 새로운 대중계급이며, 이를 이해하지 못한 좌파는 영향력을 잃고 있다. 우파는 프레카리아트 일부와 연합해 정치적 기반을 넓히는 데 성공했고, 좌파가 새로운 사회적 기획과 도덕적 연대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암흑기가 닥칠 수 있다.
보수주의 국제정치사가 폴 슈뢰더(Paul Schroeder)는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유럽 질서를 연구하며, 안정은 비정상적 상태이며 평화를 지키는 구조적 노력은 정치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의 패권이 제국주의로 전환되는 것을 경고하며, 이라크 전쟁을 기점으로 한 미국 외교의 오만함이 국제 질서를 붕괴시켰다고 비판했다. 슈뢰더는 미국이 단독으로 세계 질서를 재편할 수 없다고 보았으며, 오히려 무모한 행동으로 전체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멜랑숑은 자본주의적 생산주의의 서사가 종말을 맞았으며, 그 대신 인간과 생명 전반의 공동 이익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정치적·도덕적 서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생태적 전환과 사회적 연대를 위한 개인적 헌신과 집단적 성찰, 행동을 강조하며 이를 '시민적 덕성'으로 정의한다. 문화적 혼종성(크레올화)은 인류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증거로, 기후 변화와 인공지능, 우주 개척의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인류 공동체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고 본다.
영국 언론인의 71%는 상위 계층 가정 출신으로, 이들의 부모는 전문직·관리직 등 상위 직업군에 속했다. 사립학교 출신 비율도 일반 인구보다 현저히 높다. 이러한 계급 특권은 언론사 종류에 따라 더 뚜렷하게 나타나며, 국제적·전국적 매체일수록 상위 계층 출신 비율이 높고, 지역 언론일수록 노동계급 출신 비율이 높다. 여성·흑인·아시아계 언론인은 50세 이후 현저히 감소하고 있으며, 소득과 고용 안정성 면에서도 불이익을 받고 있다. 이는 언론에 대한 신뢰 하락과 뉴스 회피 현상과도 연결될 수 있다.
슬라보예 지젝은 혁명을 유토피아적 해방이 아닌 인간 실존의 고통과 직면하는 과정으로 해석하며, 마인렌더의 비관주의에 기대어 마르크스주의의 환상주의를 비판한다. 이에 맞서 튠크 튀렐은 마르크스주의는 여전히 인간 해방에 대한 낙관주의에 기반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지젝은 그 낙관주의가 현실의 고통을 회피하는 도피라고 지적한다. 지젝은 이상주의적 마르크스주의와 서구 불교의 자기 해방 중심적 해석 모두를 비판하며, 혁명은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 현실성과 보편성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