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Unsplash+, Nahrizul Kadri
인공지능에 관한 글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상황에서 나까지 글 하나를 더 보태려니 다소 민망한 마음이 든다. 이미 내 몫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이 중국인의 일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살펴본 글도 썼고, 마르크스와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인공지능의 역할을 어떻게 바라볼지를 다룬 글도 썼다. 더 최근에는 일부 사람들이 우려하는 새로운 디스토피아 사회가 어떤 사회 구조를 갖게 될지에 대해서도 썼다. 마지막 글은 미국의 호모플루티아(homoploutia)에 관해 내가 쓴 글들과 닐스 길먼(Nils Gilman)의 추가 기고를 결합해, 곧 <노에마>(Noema)에 실릴 공동 논문의 토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또 글을 쓰는가? 새롭게 할 말이라도 있는가? 사실 그렇지는 않다. 다만 AI에 관한 글을 조금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고 싶다. 현재 AI를 다루는 글 가운데 상당수는 가능한 모든 문제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파급효과를 한데 뒤섞어 논한다. 윤곽조차 희미하게 짐작할 수밖에 없는 중요한 현상을 처음 마주했을 때 흔히 나타나는 글쓰기 방식이 바로 이렇다. 그렇다 해도 적어도 AI가 제기하는 서로 다른 문제와 그에 대응하는 문헌 정도는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첫 번째는 AI가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경제학·사회학 문헌이다. 이 글들은 국민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몫이 커지는 문제와, AI가 일자리에서 밀어내 결국 새로운 일자리를 찾지 못할 수 있는 잉여인구 문제를 다룬다. 여기서 AI는 다른 노동 대체 기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체 생산량이 같다고 가정하면 AI는 필요한 노동 투입량을 줄인다. 물론 어떤 노동에는 AI가 보완재가 될 수 있고, 다른 노동에는 대체재가 될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주로 목격하는 것은 대체 효과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 번역가, 변호사 보조인력, 택시 운전기사, 교사 등이 그 예다. 그러나 AI가 능력을 강화해 주는 사람도 생길 수 있으며, 이들은 그 결과 더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보면 자본이 가져가는 소득의 비중은 커질 가능성이 높다. 생산의 자본집약도, 즉 자본과 노동의 비율(K/L)이 상승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이윤율은 그대로 유지되거나 오히려 높아질 수도 있다. 적어도 생산의 자본집약도 상승분을 모두 상쇄할 만큼 이윤율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자본가의 소득도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AI 기업의 주인은 결국 실제 사람들이고, 이들은 일반적인 주주들과 마찬가지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계층에 속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소득의 몫이 커진다는 것은 부유층의 소득도 늘고 소득불평등도 심해진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A) 일자리에서 밀려난 모든 잉여인구에게 최저소득을 보장한다. 경제적 문제는 해결할 수 있겠지만 심리적·사회학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 문제는 이전 글에서 다루었으므로 여기서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다.
(B) 자본 소유를 더 폭넓게 분산한다. 예를 들어 모든 시민에게 주요 AI 기업의 지분을 되팔 수 없는 형태로 나누어주는 방법이 있다. 자본소득의 비중이 커지더라도 다양한 소득계층에 속한 더 많은 사람들이 자본을 소유한다면 전체 소득불평등이 반드시 심해지는 것은 아니다.
(C) AI 기업을 국유화한다. AI를 옹호하는 사람들과 연구자들이 하는 말을 고려하면 이는 상당히 합리적인 선택지로 보인다. 이들에 따르면 기업 간 경쟁은 극도로 치열하고, 엄청난 금전적 보상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다. 그 결과 누구도 적응형 AI가 인류 전체에 초래할 수 있는 잠재적 재앙을 살펴볼 시간도, 관심도 갖지 않는다. AI가 구체적으로 규정하기도 어렵고 예측하기도 힘든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강하게 믿을수록 국가가 AI를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더 강한 설득력을 얻는다. AI가 창출한 이윤을 국부펀드에 넣고, 그 수익을 모든 시민에게 나누어줄 수도 있다. 분배 결과만 놓고 보면 B와 C는 비슷하다. 그러나 핵심적인 차이는 통제권에 있다. B에서는 외부 기관이 기업을 통제하지 않는다. C에서는 국가가 기업을 통제하며, 그렇게 하는 주된 이유는 경제적 목적 때문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경제를 넘어서는 다음 문제로 넘어가게 된다.
두 번째 유형의 문헌은 AI 산업을 이끄는 주요 창업자들의 이념, 더 과장해서 말하면 ‘AI 운동’의 이념을 살펴본다. 최근 니컬러스 멀더(Nicholas Mulder)가 쓴 훌륭한 글 ‘AI 시대에 막스 베버 읽기’(Reading Max Weber in the Age of AI)가 대표적인 사례다. 여기서는 창업자들의 이념이 과거의 발명가나 산업가였던 에디슨, 테슬라, 포드, 카네기의 이념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AI 창업자들은 AI를 단순히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로만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AI가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심지어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까지 새롭게 정의할 힘이라고 본다. 이렇게 삶 자체를 바꿀 사건을 다룰 때는 우리를 그 미래로 이끌고 있는 사람들의 이념 역시 어느 정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퀸 슬로보디언(Quinn Slobodian)과 벤 타노프(Ben Tarnoff)는 ⟪머스크주의: 혼란스러운 이들을 위한 안내서⟫(Muskism: A Guide for the Perplexed)에서 바로 이 작업을 한다. 이 책은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 거물들의 이념을 살펴본다. 새로운 기술을 움직이는 동력이 바로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으며 정치적이다.
물론 돈은 중요한 동기 중 하나다. 그러나 유일한 동기는 아니다. 천년왕국주의, 우생학, 유토피아 추구, 그리고 인류라는 종을 지구 바깥까지 확산시키려는 열망이 창업자들의 세계관에서 모두 발견된다. 이런 생각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개발하는 기술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은 점점 더 많은 정치적 수단과 권력을 손에 넣고 있으며, 그 힘을 이용해 새로운 기술과 잘 들어맞는 사회, 혹은 적어도 자신들이 선호하는 사회를 만들려 할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여러 나라의 정치생활을 바꾸고 있다. 창업자들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시대부터 이미 나타나기 시작한 탈정치화의 흐름을 더욱 강화하는 듯하다. 당시에도 전문가가 운영하는 편이 낫다는 이유로 여러 기관을 대중의 통제에서 떼어냈다. 실리콘밸리의 거물들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영역을 대중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되면 정치생활 전체를 기술이 내리는 결정으로 대체할 수도 있다. 뛰어난 관리자와 소유주가 중앙집권적으로 통제하는 기업이 번영할 수 있다면, 그와 비슷하게 영리한 기술적 판단을 통해 사회 역시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세 번째 사고의 흐름은 철학적이다. 이 흐름은 앤트로픽의 연구자 중 한 명인 제이컵 콕슨(Jacob Coxon)이 며칠 전 경고의 형태로 제기한 질문을 던진다. AI 로봇이 언젠가 완전한 자율성을 갖게 되면 인간을 없애버릴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이다. 매슈 로웬스타인(Matthew Lowenstein)도 흥미로운 논문 ‘말의 쓸모가 사라진 시대: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다’(The Obsolescence of the Horse: Predicting the Future of Humanity in the World Dominated by Artificial Intelligence)에서 비슷한 생각을 제시한다. 그는 오늘날의 인간을 과거의 말에 빗댄다. 과거 인간은 농업부터 운송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말을 사용했고, 그 덕분에 수 세기에 걸쳐 말의 개체 수가 늘어났다. 그러나 말이 맡던 영역을 기계가 대신하기 시작하면서 말은 쓸모를 잃었고, 전 세계의 말 개체 수도 급격히 줄었다. 로웬스타인이 암시하는 것은 이런 가능성이다. 더 우월한 AI 종족이 한동안 인간을 곁에 두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에게서 얻는 효용이 점점 줄어든다면 인간의 수를 서서히 줄이고, 어쩌면 결국 완전히 없애버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비슷한 사고방식은 인간 자신을 돌아보며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혹시 우리 인간도 다른 종족이 만들어낸 존재였으며, 우리가 충분히 강력해진 뒤 그 종족을 없애버린 것은 아닐까? 마지막으로 이러한 사고를 계속 밀고 나가면 생명이란 과연 무엇인지, 정신세계와 물질세계를 완전히 분리할 수 있는지 같은 질문에 이르게 된다. 다만 나는 이 분야에 충분한 지식이 없으므로 여기서 더 깊이 들어가지는 않겠다.
마지막으로, AI가 현재 사람들이 기대하거나 두려워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 역시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AI는 개발자와 소유주가 주장하는 만큼 큰 수익을 내지 못할 수도 있고, 오히려 거대한 금융 거품으로 끝날 수도 있다. 경제적 효과 자체를 우리가 과대평가했을 가능성도 있다. 완전히 들어맞는 비유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2000년 문제(Y2K)가 다가오던 당시 매우 교육받고 똑똑한 사람들조차 얼마나 극단적인 우려에 사로잡혔는지는 기억한다. 상점에서는 물건이 동나고, 굶주린 사람들이 음식을 찾아 도시를 헤매며, 비행기는 날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그러나 그때는 2000년 1월 1일에서 불과 24시간 뒤인 1월 2일로 넘어가자 우리는 꽤 빠르게 이전의 현실로 돌아갔다.
[출처] Three types of literature regarding the world of AI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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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랑코 밀라노비치(Branko Milanovic)는 경제학자로 불평등과 경제정의 문제를 연구한다. 룩셈부르크 소득연구센터(LIS)의 선임 학자이며 뉴욕시립대학교(CUNY) 대학원의 객원석좌교수다. 세계은행(World Bank) 연구소 수석 경제학자로 활동한 바 있으며, 메릴랜드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