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이전의 우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양자 진공에서 은하까지

출처: 레토카/텔로스(Retoka/Telos)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하나 있다. 그래도 우리는 그 답을 조심스럽게 추론해 볼 수 있다. 빅뱅(Big Bang)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여기서는 양자 요동에서 은하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가장 긴 여정을 따라가 본다.

우리가 빅뱅이라고 부르는 뜨거운 단계가 시작되기 전, 그 무대를 마련하는 어떤 일이 일어났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가 출현하기 전 우주의 여명기는 별다른 특징이 없어 보일 수도 있다. 모든 영역이 놀라울 정도로 서로 비슷했기 때문이다. 이를 균질성(homogeneity)이라고 부른다. 가까운 지점과 먼 지점 사이에서도 뚜렷한 차이가 없었다. 통계적으로도 변동은 극히 미미했다. 겉보기에는 완벽한 고요함이 지배했다. 하지만 그 시작은 절대 단순하지 않았다. 거의 완벽했던 그 균일성에서 거대한 변화가 싹텄다.

뜨거운 단계, 즉 우리가 빅뱅이라고 부르는 시기가 시작되기 전에 어떤 사건이 일어나 우주가 이후의 방식대로 진화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했을 것이다. 그 결과 물질은 엄청나게 풍부한 구조를 이루었고, 별과 은하, 은하단, 필라멘트와 공동(void)이 탄생했다. 현대 우주론의 핵심 질문은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겉보기에는 단순했던 그 시작에 어떻게 이후 우주의 모든 구조를 만들어 낼 씨앗이 이미 담겨 있었을까?

우주의 겨울

원시 플라스마(primordial plasma)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고요하지 않았다. 양자역학에 진공이 정말 비어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답할 것이다. 원시 플라스마는 서로 충돌하고 상호작용하는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듯하면서도 끊임없이 움직이는 세계였다. 이 플라스마에서는 입자들이 서로 다른 종류로 변환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자연의 네 가지 기본 상호작용 가운데 하나인 약한 상호작용(weak interaction)이 이러한 변환을 담당하며, 입자의 맛(flavor)을 바꾼다.

한편, 우주는 팽창하고 있었다. 우주가 팽창할수록 입자들이 서로 상호작용할 기회는 줄어들었고 충돌 빈도도 빠르게 감소했다. 우주가 팽창하기 시작한 지 불과 약 1초 뒤에는 이러한 상호작용이 사실상 동결됐다. 우주의 겨울은 다행스러운 결과를 낳았다. 중성미자(neutrino)가 플라스마에서 분리되어 자유롭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이 중성미자가 왜 우주가 반물질보다 주로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밝힐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훨씬 뒤인 약 38만 년 후에는 광자가 물질과 분리되면서 플라스마가 투명해졌다. 광자는 거의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우리가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복사(cosmic microwave background, CMB)로 관측하는 것이 바로 이 광자들이며, 이는 우리가 볼 수 있는 초기 우주의 흔적이다. 이렇게 우주에 빛이 나타났다.

뜨거운 빅뱅(hot Big Bang) 이론은 우주가 이미 충분히 식고 희박해져 잘 알려진 물리 법칙이 지배하기 시작한 이 시기를 매우 정확하게 설명한다. 하지만 앞서 살펴봤듯 그보다 이전에도 작지만, 중대한 사건들이 일어났다.

인플레이션

그 이전 단계에는 시공간이 가속 팽창하는 시기가 있었다. 이 과정은 아주 짧은 순간 동안 지속됐으며, 우리는 이를 인플레이션(inflation)이라고 부른다. 인플레이션은 이론을 장식하기 위해 덧붙인 요소가 아니라 뜨거운 빅뱅 자체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이론적 틀이다. 인플레이션은 오늘날 관측하는 우주의 균질성뿐 아니라 거의 평탄한 공간 기하와 중력의 작용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작은 섭동의 존재도 설명한다.

인플레이션은 공간 전체를 채우며 천천히 진화하고 에너지를 잃어가는 장(field)이 일으킨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장의 에너지 크기가 우주의 팽창 속도와 가속 정도를 결정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에너지는 공간이라는 막을 늘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부드럽고 거의 감지할 수 없는 물결을 만들듯 그 막을 변형하기도 한다. 이렇게 생긴 곡률은 물질이 어떻게 움직이고 모이는지를 결정한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은 우주의 크기를 키울 뿐 아니라 이후 은하와 우주 거대구조가 형성될 수 있는 지형도 마련한다.

인플레이션에서 아름답거나 적어도 주목할 만한 점은 원시적인 고에너지 플라스마에서 발생한 초기 섭동을 말 그대로 늘인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우주를 지배하는 장에서 피할 수 없이 발생하는 양자 요동(quantum fluctuation)을 늘린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중력과 이미 존재하는 것

양자물리학에 따르면 원시 플라스마와 같은 장에서는 특정 지점의 에너지 밀도가 미세하고 무작위적으로 변한다. 초기 우주에서 이러한 요동은 극히 적었으며 아원자 규모에서 발생했다.

우주 인플레이션 단계에서 우주는 극도로 빠른 지수함수적 팽창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양자 요동은 미시적인 규모에서 훨씬 큰 규모로 늘어났으며, 심지어 우주 자체에 맞먹는 규모까지 커졌다. 인플레이션은 양자 요동을 미시 세계에서 끌어내 대규모 밀도 요동으로 바꾸었다.

이 요동이 거시적인 규모로 커지면서 물질에는 작은 밀도 차이가 생겼다. 그리고 물질이 등장하자 중력이 작용할 무대가 마련됐다.

중력의 영향으로 이러한 밀도 차이는 점점 벌어졌고, 오늘날 우리가 보는 은하와 은하단 같은 우주 구조를 형성했다. 물질이 이런 방식으로 모이면서 텅 비고 균일한 공간으로 남는 대신, 별과 행성계를 형성할 만큼 충분히 밀도가 높은 영역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양자적 우연에서 비롯된 요동의 존재는 더 큰 규모의 어떤 구조라도 만들어질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바로 이 요동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는 우주가 존재하게 됐다.

이러한 원시 섭동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다행히 이 섭동이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복사에 고유한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 흔적은 우주가 아직 거의 균질했던 시기에 양자적 기원에서 발생한 작은 불균일성이 남긴 화석이다.

초기 우주에 남은 양자의 흔적

전통적으로 우주 연구는 중력이 어떻게 물질을 끌어당겨 구조를 형성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더 근본적인 것을 찾고 있다. 초기 우주에 남은 양자적 흔적, 즉 원시 요동의 기원을 간접적이면서도 엄밀한 방법으로 검출하려 한다.

중력은 이미 존재하는 것에만 작용한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우주에 양자적인 과거가 존재했다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결과까지 예측하는 것이다. 당시 양자 세계의 확률적 특성은 물질이 구조를 이루게 했을 뿐 아니라, 특정한 방식으로 구조를 형성하도록 만들었다.

중력을 자연의 다른 상호작용과 하나로 통합한다는 지적 도전을 해결하기까지는 아직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이들이 어떻게 서로 협력해 하나의 우주를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 우주에서 바로 그 해답을 찾아 나설 존재가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는지를 점차 이해해 가고 있다.

이 글은 텔레포니카 재단(Fundación Telefónica)이 발행하는 잡지 《텔로스(Telos)에 처음 게재됐다.

[출처] Cómo era el universo antes del universo: del vacío cuántico a las galaxias

[번역] 하주영 

덧붙이는 말

루트 라스코스(Ruth Lazkoz)는 바스크대학교(UPV/EHU) 물리학 교수이자 우주론 전문가다. 우주의 팽창, 암흑에너지, 수정중력이론을 연구한다. 스페인 중력·상대론학회(Sociedad Española de Gravitación y Relatividad) 회장을 역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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