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쇼크, 1.0과 2.0을 넘어 ‘빅 원’(Big One)으로

중국의 무역 통계는 극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2020년 이후 중국은 국가 무역흑자를 엄청난 규모로 늘려 왔다.

2000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 이야기는 몇 단계로 나뉜다. 먼저 중국의 무역흑자가 급증한 초기 국면이 있었다. 이어 세계경제에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2008~2009년 중국의 무역흑자는 정체 국면에 접어들었고, 2020년부터 다시 큰 폭으로 증가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각각 '차이나 쇼크 1.0(China Shock 1.0)''차이나 쇼크 2.0'(China Shock 2.0)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최근 경제사를 이렇게 서로 다른 두 국면으로 묶어 하나의 연속된 이야기로 만드는 일은 결코 중립적이거나 단순히 경험적 사실을 나열하는 작업이 아니다. '1.0''2.0'이라는 번호를 붙이는 순간, 우리는 반복과 차이라는 복잡한 관계를 내포한 하나의 연속적인 계열을 상정하게 된다.

한편으로 우리는 이 두 시기가 모두 '차이나 쇼크'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을 만큼 충분히 닮았다고 본다. 다시 말해 두 시기 사이에 본질적인 유사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둘 사이의 차이도 인정한다. 두 번째 충격은 첫 번째 충격과 동일하지 않다. 나아가 우리는 시간적 순서까지 설정한다. , 21의 뒤를 잇는다.

그렇다면 차이나 쇼크 1.0과 차이나 쇼크 2.0 다음에는 무엇이 올까? 차이나 쇼크 3.0, 4.0이 이어진다고 생각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그처럼 아찔한 가능성을 논하기에 앞서, 더 시급한 질문이 있다. 차이나 쇼크 1.02.0은 정확히 어떤 관계에 있는가?

브래드 세처(Brad Setser)는 마르쿠스 브루너마이어(Markus Brunnermeier)와의 흥미로운 대담에서 이에 대한 자신의 분석을 제시했다.

브래드 세처는 경제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반면 나는 이러한 역사적 구성 방식 자체에 관심이 간다.

브래드 세처가 지적한 분명한 차이 가운데 하나는, 두 차례의 차이나 쇼크 모두 세계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친 현상이지만 중국의 무역흑자를 받아들인 주요 대상 경제권은 서로 달랐다는 점이다.

차이나 쇼크 1.0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곳은 미국이었다. 반면 차이나 쇼크 2.0에서는 유럽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두 시기 사이에 담론이 형성되는 속도에도 큰 차이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첫 번째 '차이나 쇼크'를 둘러싼 담론에서 특히 눈에 띄는 점은, 학계의 주요 논제로 널리 논의되기 시작한 시기가 201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였다는 것이다. 물론 여러 한계는 있지만, '충국 충격'라는 표현의 구글 엔그램 추이는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MIT의 노동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토(David Autor), 데이비드 돈(David Dorn), 고든 H. 핸슨(Gordon H. Hanson)2013년 미국경제학회지(AER)'중국 신드롬'을 다룬 핵심 논문을 발표했다. 이후 2020년 맷 클라인(Matt Klein)과 마이클 페티스(Michael Pettis)가 ⟪무역전쟁은 계급전쟁이다⟫(Trade Wars are Class Wars)를 출간하면서 이 논지는 설득력 있는 하나의 '거대 서사'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고 중국과의 경쟁이 미 정치에서 그 이전에는 중요한 쟁점이 아니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1990년대에는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둘러싼 우려가 1970~1980년대 일본산 수입품을 둘러싼 갈등,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논쟁, WTO 출범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과 맞물려 전개됐다.

2000년대 들어 중국의 수출이 실제로 급증하자 민주당과 공화당의 의회 지도부는 함께 보호무역 여론의 확산과 중국의 환율조작에 대한 비판을 억누르려 애썼다. 당시 또 다른 큰 우려는 중국이 미국 국채를 대규모로 보유한 점을 이용해 금융시장을 흔들고 달러 가치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런 시나리오는 현실이 되지 않았다. 브래드 세처를 비롯한 일부 경제학자들은 경상수지 불균형이 2008년 금융위기와 연결돼 있다고 계속 주장하지만, 2007년 이후 세간의 주목을 받은 위기의 중심은 중국의 외환보유액 운용이 아니라 서방의 은행들이었다.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든 것은 베이징이 달러를 공격한 것이 아니라 대서양 양안 은행권에서 대규모 자금 흐름이 역전되며 급격히 청산된 과정이었다.

서방의 경기침체와 중국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이 맞물리면서 2008년 이후 중국의 무역흑자는 절대 규모로도, GDP 대비 비중으로도 빠르게 줄어들었다. 이후 2015년 무렵 한 단계 높은 수준에서 다시 정체하는 국면이 나타났는데(브래드 세처는 이를 '미니 차이나 쇼크'라고 부르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바로 이 후퇴와 정체의 시기가 차이나 쇼크 1.0과 차이나 쇼크 2.0을 구분하는 공백기를 형성했다.

데이비드 오토와 그의 공동 연구자들은 이러한 공백기가 이어지던 2010년대 초, 미국 사회가 오랫동안 겪어 온 구조적 침체를 되돌아보며 2000년대 노동시장 자료를 다시 분석했다. 그 결과 그들은 '차이나 쇼크', 또는 '중국 신드롬'이라고 부른 현상을 규명했다.

출처: American Economic Review(AER)

이 연구가 중요했던 이유는 사회 전반에 막연하게 퍼져 있던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인식에 구체성과 정밀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처음에 미국 제조업 일자리 감소의 약 4분의 1이 수입품과의 경쟁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이는 당시의 일반적인 인식과도 대체로 일치했다. 그러나 이 충격을 정확히 규명하려면 언론의 큰 제목만으로는 부족했다. 미국 노동시장의 취약한 부문에서 특정 제조업 노동자 집단이 얼마나 심각한 타격을 받았는지, 그리고 그 지역 경제가 왜 회복하지 못했는지를 세밀하게 살펴봐야 했다. 이 연구가 인상적인 이유는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 만큼 압도적인 규모의 현상을 다뤘기 때문이 아니라, 적절한 분석 방법을 적용하면 특정 산업과 지역에서 매우 뚜렷한 영향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2013년 발표한 원래 논문에서 특히 큰 피해를 입은 산업을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2007년까지 중국은 미국의 네 자리 표준산업분류(SIC) 기준 네 개 산업(여행가방, 고무·플라스틱 신발, 게임·장난감, 다이커팅 종이판)에서 미국 수입의 40% 이상을 차지했다. 또한 의류, 섬유, 가구, 가죽제품, 전기제품, 보석류를 포함한 28개 산업에서는 30% 이상을 차지했다.

후속 연구에서 '차이나 쇼크' 연구진은 1999년부터 2011년까지 중국산 수입 증가로 인한 고용 감소 규모가 200~240만 명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다. 그러나 2011년 미국 노동인구가 15,200만 명이었고, 비교적 고용시장이 안정적이었던 그해에도 해고·권고사직·자발적 퇴직을 모두 합한 노동 이동 규모가 4,720만 명에 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를 국가적 대재앙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차이나 쇼크 1.0의 핵심은 피해가 특정 지역사회에 집중됐고 그 영향이 오랫동안 지속됐다는 데 있었다. 연구진의 주장은 무엇보다 거시경제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충격적인 사실은 미국의 경제·사회 시스템이 피해 지역에 신속하고 효과적인 회복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차이나 쇼크 1.0 담론의 본래 목적은 중국과의 경쟁이 얼마나 불공정했는지를 부각하는 데 있지 않았다. 핵심은 세계화가 특정 지역에 집중적인 충격을 가했을 때 미국의 정책과 사회 제도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문제의식이 대중에게 그대로 전달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어떻게 훨씬 더 위기감을 조성하는 거시경제·거시사회적 담론이 확산됐는지를 따로 진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실제 사건이 벌어진 뒤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였지만, 오랫동안 이어져 온 보호무역주의적 주장과 미국의 불평등·사회적 배제에 대한 깊고 정당한 우려가 결합하면서 대중은 반중 보호무역을 압도적으로 지지하게 됐다. 이러한 흐름은 중국의 무역흑자가 이미 정점을 지난 뒤인 2017년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본격적인 정책으로 구현됐고, 바이든 행정부를 거쳐 현재 트럼프 2기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이 오늘날 미국을 현재의 차이나 쇼크로부터 일정 부분 보호하는 방패 역할을 하고 있다.

분명 차이나 쇼크 2.0은 다르다. 담론의 중심이 미국이 아니라 유럽이라는 점만 다른 것이 아니다. 이번에는 충격이 발생한 시점과 사람들이 그것을 인식하는 시점 사이에 거의 시간차가 없다.

차이나 쇼크 2.0은 차이나 쇼크 1.0이라는 담론 자체를 하나의 모델로 삼을 수 있다. 그 결과 게임의 규칙 자체가 달라졌다. 차이나 쇼크 2.0은 뒤늦게 과거를 돌아보며 발견한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경고의 외침이다. 중국산 수입이 급증하는 흐름 속에서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미리 경고를 울리고 있으며, 그 목소리는 거의 즉각 최고위 정책 결정자들에게까지 전달되고 있다.

이는 의식적으로 기존 담론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결과다. 주목받는 산업도 달라졌다. 미국이 겪은 차이나 쇼크 1.0의 피해자는 부가가치가 낮은 저임금 제조업이었다. 반면 차이나 쇼크 2.0은 전혀 다른 산업을 겨냥한다. 이번에는 유럽의 자동차 산업과 기계·엔지니어링 산업처럼 높은 위상을 가진 제조업이 위협받고 있다. 초기 차이나 쇼크 연구와 달리, 유럽 자동차 산업이 가장 큰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 복잡한 경제학 분석은 필요하지 않다. 더욱이 이 산업은 2000년대 미국의 장난감·고무제품·가구 산업처럼 경제 발전에서 뒤처진 낙후 산업이 아니다. 유럽 제조업의 핵심이며, 그 노동자들은 세계 어느 곳의 블루칼라 노동자들과 비교해도 가장 좋은 근로조건을 누려 온 집단이다.

따라서 '차이나 쇼크'의 성격 자체가 달라졌다. 그 충격을 문제로 규정하는 정치적 맥락도 달라졌다. 그리고 차이나 쇼크 2.0을 만들어 내는 '중국' 역시 이전과는 다른 중국이다.

중국의 무역흑자가 고착된 성장모델에 따라 불가피하게 확대된 결과일 뿐이라고 주장하며 연속성을 강조하는 비판론자들과 달리, 이러한 변화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지점이다.

물론 베이징에서는 여전히 공산당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으며 성장도 계속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중국의 국내 소비는 여전히 낮고 투자 성향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강하다. 이런 거시경제의 가장 추상적인 수준에서는 중국 경제의 연속성을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론을 넘어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연속성은 무너지기 시작하며, 애초에 차이나 쇼크 1.02.0이라는 개념 자체가 점점 더 문제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브래드 세처가 강조한 거시경제 지표들조차도 지금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2000년대 첫 번째 수출 급증은 중국 경제 발전의 초기 단계에서 일어났다. 당시 수출 증가는 외국 민간자본의 투자에 크게 의존했다. 이는 서방이 주도한 세계화 질서에 중국이 편입되는 과정이었다. 차이나 쇼크는 방대한 노동력과 생산 능력을 지닌 중국이 서방이 구축한 글로벌 공급망에, 그것도 서방이 정한 규칙에 따라 편입되면서 발생했다.

올여름 다롄에서 카이저 궈(Kaiser Guo)가 이것을 칼 폴라니(Karl Polanyi)의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1944)과 연결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을 때, 돌이켜보면 나는 차이나 쇼크 1.0이 실제로 폴라니적 성격을 지녔다고 답했어야 했다.

아시아 노동력이 글로벌 공급망에 편입된 것은 급진적인 세계화의 한 사례였으며, 19세기 신대륙의 곡물이 유럽 시장으로 대거 유입된 일이나 1914년 이전 미국으로 향한 대규모 이민과 비교할 수 있다. 이러한 세계적 흐름은 사회를 뒤흔드는 충격을 가져왔고, 폴라니의 표현을 빌리면 '이중 운동(double movement)'을 촉발했다. , 세계화로 기존 사회구조가 흔들리자 이해관계자들이 이에 맞서 사회적 혼란을 억제하려는 반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2010년대 미국에서 무역을 둘러싼 담론이 급속히 확산되며 WTO 중심의 자유무역 질서를 뒤흔든 과정은 바로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트럼프 1기 행정부와 브렉시트는 모두 차이나 쇼크 1.0에 대한 뒤늦은 폴라니식 반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차이나 쇼크 2.0은 성격이 다르다.

차이나 쇼크 2.0 역시 거시경제적 현상에서 비롯된다. 무역흑자는 언제나 거시경제의 산물이다. 하지만 어떤 상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중국의 기업과 엔지니어들이 축적한 투자와 혁신, 그리고 국가·지역·도시 차원에서 정교하게 추진된 중국의 산업정책이다.

차이나 쇼크 2.0은 단순한 세계화 충격이 아니며, 폴라니가 말한 사회적 반발을 촉발하는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포스트-폴라니' 시대의 현상이다. 2020년대 중국이 세계에 가져오는 것은 세계적 규모의 산업정책 충격이다.

이는 새로운 세대의 무역 충격이며, 중국이 차이나 쇼크 1.0을 성찰한 결과 등장한 세계 경제사의 새로운 국면이다.

차이나 쇼크 1.0에서 교훈을 얻은 것은 서방만이 아니었다. 베이징도 차이나 쇼크 1.0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베이징은 이미 2000년대 초 중국이 WTO에 가입한 뒤 글로벌 공급망에서 차지하게 된 위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이후 20년 동안 중국 정부는 가치사슬의 상위 단계로 올라가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중국이 정한 방식으로 세계경제에 참여하겠다는 목표를 공식적인 정책으로 내세웠다. 이러한 비전이 국가 산업정책을 이끌었다. 동시에 상업적 동기뿐 아니라 국가적 자부심과 야망을 품은 중국의 기업가와 엔지니어들에게도 강력한 추진력이 됐다.

그렇다면 결론은 무엇일까?

우리는 '1.0''2.0'이라는 번호가 암시하는 본질적인 연속성을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오히려 '차이나 쇼크 2.0'이라는 표현은 '중국의 충격'에 세계가 점차 익숙해져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로 이해하는 편이 적절하다.

문제는 이러한 연속성의 이미지를 강조하다 보면, 우리가 실제로 마주한 변화의 극적인 성격을 오히려 과소평가하게 된다는 점이다. 지금 진행되는 변화는 세계적 차원의 산업 분업 체계가 완전히 재편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충격(shock)'이라는 표현을 계속 사용할 것이라면, 차라리 지진학의 용어를 빌리는 편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차이나 쇼크 1.0'전진(前震, foreshock)'이었고, 2020년대 우리가 맞닥뜨린 것은 본진이다.

만약 에너지 산업을 하나의 기준으로 삼는다면(물론 이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선택이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이야말로 마침내 '빅 원(Big One, 결정적인 대지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첫 번째 지진의 진동인지도 모른다고 묻게 될 것이다.

[출처] Chartbook 462: China shocked - beyond 1.0 and 2.0 to the "Big One".

[번역] 이꽃맘 

덧붙이는 말

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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