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Unsplash+, Behnam Norouzi
지속되는 프랑스와 독일의 중국 무역흑자 불평에 지친 나는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리며 이 논의를 시작했다.
"유럽이 중국을 비난하는 모습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지금 중국은 독일이나 프랑스보다 더 좋은 제품을 더 저렴하게 만들고 있다. 과거 프랑스와 독일이 다른 나라보다 더 좋은 제품을 더 싸게 만들던 시절에는 이런 불만을 비웃었다. 이제는 자신들이 경쟁에서 밀리자,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유럽은 세계 다른 지역을 착취하면서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 중국은 그렇지 않았다.“
프랑스와 독일이 중국의 보조금, 장시간 노동 등을 문제 삼는 모습을 보면서, 오래전 세계은행에서 일할 때 아프리카에서 들었던 비슷한 불만이 떠올랐다. 다만 그때는 정반대 입장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유럽과의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불평하며 불공정 경쟁을 지적했다.
"보라. 유럽에는 최첨단 기계가 있어서 한 시간 만에 제품 열 개를 만든다. 우리는 같은 제품을 만드는 데 열 시간이 걸린다. 당연히 우리는 가격 경쟁에서 밀리고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기록한다. 결국 국제통화기금에서 혹독한 조건으로 돈을 빌릴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공정한 경쟁을 원한다. 그러니 유럽은 새 기계를 없애고 사람 대 사람으로 정정당당하게 경쟁하자.“
물론 이런 아프리카의 주장은 조롱거리였다. 프랑스와 IMF는 그들을 기술 발전을 거부하는 러다이트(Luddites), 무지한 사람들, 생산성과 기술 진보의 적이라고 비난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유럽은 중국을 향해 똑같은 불평을 늘어놓는다. 중국은 노동시간을 줄이고, 새로운 발명을 훨씬 덜 해야 하며,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훨씬 더 많이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주장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겠다.
내 트윗에 대해 마이클 페티스(Michael Pettis)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밀라노비치가 불평등에 대해 하는 많은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이 문제에서는 생각이 다르다. 그는 '효율적인' 제조와 '경쟁력 있는' 제조를 혼동하고 있다고 본다. 중국이 독일이나 프랑스보다 반드시 더 좋은 제품을 더 낮은 비용으로 만드는 것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이 훨씬 더 낮은 가격에 판매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 차이는 가계가 자신들이 생산한 부가가치 가운데 차지하는 몫이 매우 낮다는 점과, 중국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이 놀라울 정도로 높아졌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일본도 1980년대에 같은 전략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 전략은 지속 가능하지 않았고, 높은 부채와 낮은 소비 비중 때문에 결국 일본은 매우 고통스러운 조정을 겪어야 했다. 만약 독일과 프랑스가 임금을 억제하거나, 다시 말해 사회 이전지출을 줄일 의향이 있었다면, 또는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중국과 비슷한 규모로 빚을 내 보조금을 지급할 의향이 있었다면, 프랑스와 독일의 제조업체들도 세계시장에서 훨씬 더 낮은 가격에 제품을 팔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정책은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일 뿐 제조업 자체를 더 효율적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단지 생산 비용의 일부를 나라 전체가 떠안도록 전가할 뿐이다.“
나는 다시 마이클에게 답했다.
"마이클, 당신 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국제 경쟁의 본질이다. 프랑스와 독일은 임금을 낮출 수 없거나, 낮추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시장을 잃고 있다. 당신은 마치 모든 나라가 유럽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고 전제하는 것처럼 보인다. 솔직히 말하면, 이는 과거 아프리카 국가들이 프랑스를 향해 '당신들의 경쟁은 공정하지 않다. 당신들은 최첨단 기계를 쓰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맞다. 프랑스와 독일이 임금과 사회 이전지출을 줄인다면 중국과 경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럽의 정책이 모든 나라가 따라야 할 기준도 아니고, 그것이 곧 '공정한' 정책을 정의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적어도 이번 논쟁은 마이클의 다음 답변으로 마무리됐다.
"맞다, 브랑코. 하지만 유럽이 경쟁력을 되찾기 위해 임금과 사회 이전지출을 중국 수준으로 억제한다면 정치적으로 엄청난 혼란이 발생할 것이고 세계경제에도 좋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유럽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가계소득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확보한 나라들의 이점을 상쇄하기 위해 대외거래에 개입하는 것이다. 조앤 로빈슨(Joan Robinson)이 바로 이 점을 경고했다. 일부 국가는 시장을 비교적 개방하는 반면 다른 국가는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세계경제에서는, 후자의 지속적인 무역흑자가 결국 전자에게도 개입을 강요하게 되고 그 결과 세계무역이 훼손된다. 미하우 칼레츠키(Michał Kalecki)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그는 한 나라가 생산성에 비해 임금을 억제하면 가계소비가 약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투자 확대나 무역흑자로 소비 부족을 메울 수 있다면 생산은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중국이 1990년대에 그랬고, 2010년대 부동산 거품의 마지막 국면에서도 비슷한 일이 나타났다. 그러나 칼레츠키가 지적한 문제는 이런 방식이 일부 국가만 사용할 때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개방된 무역체제에서 내 임금이 생산성에 비해 당신 나라보다 더 낮다면 내 상품은 경쟁력이 높아지고, 나는 당신 나라의 수요 일부를 흡수하면서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그러면 당신은 성장률을 높일 것인지, 아니면 더 많은 부채를 감수하고 국내 수요를 늘릴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양국이 모두 같은 전략을 쓰면 결과는 모두에게 더 나빠진다. 칼레츠키가 말했듯이 임금이 수요를 만들고, 수요가 기업 이윤과 경제성장을 이끌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한 나라가 임금을 억제하고 생산을 보조해 제조업 제품 가격을 전반적으로 낮출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더 높은 생산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대부분 노동자와 금융시스템이 가격을 보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반대로 비교우위에 따라 어떤 상품은 상대적으로 더 싸고 다른 상품은 상대적으로 더 비싸며, 그런 상품들이 국제무역을 통해 교환된다면, 그때는 해당 나라가 전자의 상품을 더 효율적으로 생산했고 상대국은 후자의 상품을 더 효율적으로 생산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가 흥미로운 부분이다. 나는 맷 클라인(Matt Klein)과 마이클 페티스(Michael Pettis)가 함께 쓴 《무역전쟁은 계급전쟁이다》(Trade Wars Are Class Wars)의 열렬한 독자다. 나는 내 저서 《위대한 세계적 전환》(The Great Global Transformation)에서도 이 책을 매우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중국의 국유기업(SOEs)이 왜 임금을 '억제'하면서 대규모 무역흑자를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두 저자의 설명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정치경제학적 설명이다. 중국은 국유기업의 막대한 유보이익을 활용해 국내 생산과 혁신을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거나, 정치적·경제적 목적에 따라 해외에 투자해야 한다. 따라서 페티스의 표현을 빌리면 중국은 "임금을 억제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무역흑자를 추구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임금을 억제한다'는 말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가? 중국의 적정 임금 수준을 누군가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프랑스의 적정 임금도 결정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문제는 훨씬 단순하다. 프랑스의 임금은 사회 이전지출과 짧은 노동시간까지 포함하면 상대적으로 매우 높다. 프랑스의 1인당 GDP도 중국보다 상당히 높다. 그러자 프랑스는 중국의 임금이 지나치게 낮다고 불평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프랑스가 스스로 중국의 임금이 너무 낮은지 높은지를 판단할 권한이 있다고 여긴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임금을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할 수 있는 경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면, 그것 역시 국제무역에서 흔히 말하는 구조적 우위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경쟁국보다 더 좋은 기계를 갖고 있거나 더 싼 원자재를 확보한 것이 구조적 우위이자 비교우위, 혹은 절대우위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마찬가지로 경쟁국보다 낮은 임금으로 경제를 운영할 수 있다면, 그것 역시 하나의 구조적 우위다. 그 자체를 불공정하다고 볼 이유는 없다.
이것은 오래전 칼 마르크스가 이미 지적했던 자본주의의 고질적인 모순이다. 모든 자본가는 다른 자본가의 노동자들이 더 높은 임금을 받아 자신들의 상품을 사주는 소비자가 되기를 바라지만, 정작 자기 회사 노동자들에게는 가능한 한 적은 임금을 주고 싶어 한다. 바로 지금 서구가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내에서는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이나 처우 개선을 조금이라도 비판하는 런던과 뉴욕의 경제신문들이, 중국을 향해서는 임금을 "억제하지 말고" 올리고 사회 이전지출도 확대하라고 촉구하는 기사로 지면을 채운다. 갑자기 <파이낸셜 타임스>와< 월스트리트 저널>이 중국 노동자의 복지를 걱정하는 신문으로 변한 것처럼 보인다.
더욱 중요하게는, 서구 역시 임금을 "억제해 왔다"고 똑같이 주장할 수도 있다. 아래의 유명한 그래프는 노동자 1인당 생산량(짙은 파란색 선)과 노동자 1인당 임금(연한 파란색 선)이 서로 갈라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1980년대 초 이후 서구 국가들에서 노동소득보다 기업 이윤이 훨씬 더 빠르게 증가했다는 사실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이 역시 충분히 '임금 억제'라는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그렇다면 질문의 방향도 바뀌어야 한다. 서구 자본가들이 정말 중국과 진지하게 경쟁하고 싶다면, 왜 자신들의 이윤부터 줄여 제품 가격을 더 경쟁력 있게 만들지 않는가?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이윤에 관해서는 이야기하기를 꺼린다. 대신 다른 나라 노동자들의 임금에 대해서는 끝없이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250년 전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이 문제를 매우 정확하게 짚었다.
"우리의 상인들과 제조업자들은 높은 임금이 상품 가격을 올려 국내외 판매를 줄이는 나쁜 영향을 끊임없이 불평한다. 그러나 높은 이윤이 가져오는 나쁜 영향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 《국부론》(Wealth of Nations) 제1권 제9장 ‘자본의 이윤에 대하여’(Of the Profits of Stock)
문제의 본질은 매우 단순하다. 분권화된 서구 자본가들은 지난 40년 동안 자국 노동자들의 몫을 줄이면서 막대한 이윤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임금을 더욱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생산성을 더욱 높이는 중앙집중형 자본가, 즉 사실상 중국 국가체제와 맞서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 중앙집중형 자본가는 이제 분권화된 서구 자본가들을 시장에서 밀어내고 있다. 그래서 서구 자본가들은 중국이 승리하지 못하도록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자신들의 높은 이윤이 이 문제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결코 입에 올리지 않는다.
추신.
흥미롭게도 마이클 페티스와 내가 이런 논쟁을 벌인 바로 그날 저녁, 나는 미국 공영라디오 NPR에서 버니 모레노(Bernie Moreno) 상원의원과 또 다른 인사가 벌인 토론을 들었다. 두 사람은 미국에서 중국산 자동차와 관련 부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공동 발의한 인물들이다. 토론 수준은 솔직히 그다지 높지 않았다. 이 토론이 미국기업연구소의 주최로 열렸다는 사실은, 미국 제품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원인인 높은 기업 이윤이 끝내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 미국의 거대 자본가들이 막대한 이윤을 올리는 동시에 미국 정치인들의 선거자금을 후원하는 현실에서, 그 문제를 어떻게 공개적으로 거론할 수 있겠는가?
[출처] Don’t ask me about my profits, but let’s talk about your wages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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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랑코 밀라노비치(Branko Milanovic)는 경제학자로 불평등과 경제정의 문제를 연구한다. 룩셈부르크 소득연구센터(LIS)의 선임 학자이며 뉴욕시립대학교(CUNY) 대학원의 객원석좌교수다. 세계은행(World Bank) 연구소 수석 경제학자로 활동한 바 있으며, 메릴랜드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