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지진 구호 앞세워 이스라엘과 밀착

아벨라르도 데 라 에스프리에야는 지진 구호를 명분으로 내세워 콜롬비아의 이스라엘 지지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으며, 여기에는 골란고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하는 조치까지 포함됐다.

콜롬비아의 아벨라르도 데 라 에스프리에야 대통령이 부인 아나 루시아 피네다(Ana Lucia Pineda)와 함께 2026812일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열린 지진 구호 활동 관련 브리핑에 참석하고 있다. 출처: 콜롬비아 대통령실

810일 아침, 콜롬비아 서부에서 규모 7.4의 강진이 발생했다. 최근 집계에 따르면 이 지진으로 약 300명이 숨지고 4,000명이 다쳤으며, 실종자는 수천 명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 이번 위기는 불과 며칠 전 취임한 극우 성향의 아벨라르도 데 라 에스프리에야(Abelardo de la Espriella) 신임 대통령에게 첫 시험대가 됐다. 지진이 발생한 지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아 콜롬비아인들이 무너진 건물 잔해 아래에 여전히 갇혀 있던 상황에서, 정부는 이스라엘이 골란고원에 대해 주권을 갖는다고 인정하는 장문의 성명을 발표했다. 골란고원은 이스라엘이 1967년부터 불법 점령해온 시리아 영토다. 이 성명으로 콜롬비아는 아랍 국가들과 외교적 위기를 맞았으며, 전 세계에서 미국에 이어 이스라엘의 골란고원 영유권 주장을 인정한 유일한 국가가 됐다.

콜롬비아 정부가 이런 발표를 한 시점을 두고 국내외에서 거센 비판을 받은 것은 당연했지만, 지진과 발표 시점이 겹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데 라 에스프리에야는 지진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스라엘과 관계를 강화하려 했지만, 재난 이후 새 정부가 취한 행보를 보면 이번 위기를 중동 국가인 이스라엘과의 전반적인 관계 개선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베네수엘라에서도 이와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스라엘은 치명적인 지진이 발생한 뒤 인도적 지원을 제공했고, 이를 계기로 한때 적대 관계였던 두 나라가 영사 관계를 복원했다.

콜롬비아가 이스라엘과 더욱 밀착하는 모습은 특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데 라 에스프리에야의 전임자인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 시절까지만 해도 콜롬비아는 세계적인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이끄는 국가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는 중남미 지역에서 나타나는 더 큰 흐름의 일부다. 극우 정부들은 집권하면 이스라엘에 대한 충성을 과시하거나 곧바로 이스라엘 지도부에 관계 개선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재난 외교

810일 발생한 지진은 진앙인 초코를 비롯해 바예델카우카, 리사랄다, 킨디오, 칼다스주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전기가 끊기고 건물이 무너졌으며 인명 피해도 계속 늘고 있다. 혼란에 대처하느라 분주했던 정부는 국가 자원을 동원했지만, 초기 재난 구호 활동의 상당 부분은 지역 주민들에게 의존했다. 지진 발생 후 첫 72시간은 잔해에 갇힌 생존자의 목숨을 구하는 데 결정적인 시간으로 여긴다. 그런데도 정부가 해외 구조팀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이기까지 꼬박 사흘이 걸렸다. 마침내 국제 지원을 수용했을 때조차 미국, 에콰도르, 엘살바도르, 이스라엘 등 우파 우방국하고만 협력했다.

마지막에 언급한 이스라엘이 의외로 보일 수도 있지만, 중남미에서 이스라엘이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수십 년 동안 자연재해가 발생한 나라에 인도적 지원과 구조팀을 보내왔다.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이스라엘 방위군(IDF)과 국제구호단체 이스라에이드(IsraAID)가 지진 피해를 입은 페루, 멕시코, 아이티에 파견됐으며, 2019년 댐 붕괴 사고가 발생한 브라질에도 구조 인력을 보냈다.

이러한 지원은 일종의 재난 외교로 기능한다. 이스라엘이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는 팔레스타인인을 상대로 인도적 지원을 전쟁의 무기로 이용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 같은 재난 지원을 통해 과거 자국에 비판적이었던 정부가 있는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개선하려 한다.

이웃 국가 베네수엘라에서는 두 차례의 파괴적인 지진이 발생한 뒤 이스라엘이 지원에 나서면서 양국이 영사 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시몬 로드리게스(Simón Rodríguez)가 최근 NACLA에 보도했듯, 양국은 이스라엘의 구조 활동을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시절 단절된 외교 관계를 다시 시작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명시적으로 규정했다. 델시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은 일찌감치 이번 지원을 계기로 우리와 외교 관계가 없는 국가들과 새로운 길과 문을 열 수 있기를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 구조팀이 폐허와 관계를 재건하고 있다며 감사를 표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구조 활동에 참여한 인도주의 단체들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계속 벌이고 있는 집단학살을 정당화하고 이후 이를 지속시키는 데에도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로드리게스가 지적했듯, 초정통파 테러 조직 출신 인사가 1990년대에 설립한 비정부기구 자카(ZAKA)는 지진 발생 직후 현장에 투입됐다. 이스라엘 국내외에서 긴급 대응과 구조 활동을 전문으로 하는 이 단체는 107일 공격 이후 미국 언론이 집단학살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한 여러 허위 주장에 핵심적인 출처 역할을 했다. 여기에는 참수된 아기들이라는 이야기도 포함됐다. 자카의 중남미 책임자 요세프 가르몬(Yosef Garmon)은 과거 가자지구의 폐허에서 스페인어로 말하며 기독교 시온주의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자신의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카라카스에서는 대학생들을 만났으며, 학생들이 그와 함께 어색하게 암 이스라엘 하이(Am Yisrael Chai·이스라엘 민족은 살아 있다)”를 외치는 모습도 촬영했다.

자카는 이스라엘과 베네수엘라가 영사 관계를 공식 복원한다는 발표를 환영했다. 또한 자카는 자신들의 구호 활동이 관계 복원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며 그 성과의 일부를 자신들의 공으로 돌렸다.

콜롬비아에서 되풀이되는 베네수엘라식 전략

가르몬은 지진이 발생하기 몇 시간 전 이미 보고타에 도착해 콜롬비아에 머물고 있었다. 810일 아침 지진이 발생한 직후에는 콜롬비아 현지에서 이스라엘 방송과 인터뷰했다. 그보다 며칠 전에는 과거 자신이 랍비로 활동했던 칼리(Cali)를 찾아 데 라 에스프리에야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

데 라 에스프리에야는 이스라엘과의 관계 개선을 최우선 과제 가운데 하나로 삼았다. 취임 전부터 주이스라엘 콜롬비아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라말라에 대사관을 개설하려던 계획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기드온 사르(Gideon Sa’ar) 이스라엘 외무장관과 만났다. 양국 경제위원회를 신설하고 10월에는 콜롬비아 대표단이 이스라엘을 공식 방문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콜롬비아는 지진 대응을 명분으로 내세워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으며, 여기에는 골란고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하는 조치도 포함됐다. 더욱 실질적인 조치도 있었다. 정부는 자연재해로 사람들의 관심이 다른 곳에 쏠린 틈을 이용해 콜롬비아산 석탄의 이스라엘 수출을 금지했던 두 건의 법령을 폐지했다. 정부가 제안한 법안에 의견을 제출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한 닷새간의 기간은 지진 바로 다음 날 시작됐다. 온 국민의 관심이 지진 피해에 집중된 시점이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러한 조치를 크게 환영했다. 지진 다음 날인 811일 네타냐후는 영상을 올려 콜롬비아가 골란고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영유권 주장을 인정한 데 감사를 표했다. 그는 국민이 골란고원과 함께하듯오늘날에는 국민이 콜롬비아와 함께한다고 말했다. 그 다음 날에는 데 라 에스프리에야의 요청을 받아들여 공식 인도주의 지원단을 콜롬비아에 파견하라고 지시했다.

이스라엘은 미국, 에콰도르, 엘살바도르와 함께 구조팀 파견을 허가받은 몇 안 되는 국가 가운데 하나였다. 콜롬비아 정부는 이념적 고려가 작용했다는 주장을 부인하면서 이들 구조팀만이 국제 규정을 준수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절실하게 필요한 지원조차 우파 우방국에서만 받으려 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813일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이 자국의 전문 수색·구조팀이 콜롬비아 입국을 거부당했다고 밝히면서, 정부가 구호 활동을 정치화했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이스라엘의 공식 구호단은 이미 칼리와 페레이라 등 피해 도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카(ZAKA)의 구조 작업을 지원하게 된다. 베네수엘라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스라엘인들은 콜롬비아 시민들이 자신들을 따뜻하게 맞아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벌써 언론에 전하고 있다. 데 라 에스프리에야의 취임식에도 참석했던 한 이스라엘 기업인은 지진이 발생한 뒤 콜롬비아인들이 자신에게 다가와 축복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두고 증오와는 정반대였다고 말했다.

콜롬비아 우파 정치인들도 자카와 같은 이스라엘 단체를 공개적으로 치켜세우면서 이들이 보유한 놀라운 기술력과 재난 복구에 필수적인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지원이 여전히 위험한 상황에서 생명을 구하는 데 꼭 필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아직도 건물 잔해 아래에 사람들이 갇혀 있고, 생존자를 찾아낼 수 있는 시간은 사실상 거의 다 지나갔다. 마찬가지로 많은 콜롬비아인이 이스라엘의 뛰어난 기술력을 믿는 데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갈수록 절박해지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반응일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콜롬비아 정부가 멕시코 수색·구조대처럼 해외 구조팀의 지원을 거부한 것은 불필요한 희생을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특히 멕시코 구조대는 지진 이후 구조 활동에서 훨씬 풍부한 경험을 갖추고 있다.

콜롬비아 정부가 이스라엘 관련 사안에 쏟은 관심은 정작 자국의 구조 활동을 조율하는 모습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중남미 전역에서 나타나는 흐름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 시절 콜롬비아는 이스라엘이 저지른 집단학살 범죄에 책임을 묻는 데 앞장선 국가였다. 페트로는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이스라엘에 석탄을 수출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팔레스타인을 공개적으로 강력하게 옹호한 탓에 트럼프 행정부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때 페트로가 미국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그의 미국 비자까지 취소했다.

페트로는 중남미의 어느 지도자보다 강경하게 나섰지만,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비판한 지도자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볼리비아, 칠레, 온두라스 지도자들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이스라엘에 책임을 물을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결성한 헤이그 그룹(Hague Group) 같은 조직에서 자주 힘을 합쳤다. 중남미는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의 최전선에 섰다. 지도자들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낸 것뿐만 아니라 학생들은 팔레스타인 연대 농성 캠프를 이끌었고, 노동조합은 이스라엘 제품을 보이콧하기 위한 새로운 방식의 운동을 펼쳤다. 원주민 단체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겪는 고난에서 자신들이 벌여온 투쟁과 닮은 모습을 발견했다.

그럼에도 지난 1년 동안 우파가 잇따라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새로 집권한 지도자들이 친팔레스타인 정책을 빠르게 되돌렸기 때문이다. 지난 1년 사이 새로 대통령에 당선된 볼리비아의 로드리고 파스(Rodrigo Paz), 칠레의 극우 정치인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José Antonio Kast), 온두라스의 나스리 아스푸라(Nasry Asfura)는 취임 후 이스라엘과 관계를 복원하거나 적극적으로 강화했다. 공교롭게도 아스푸라는 팔레스타인계 출신이다.

그보다 1년 전, 국제사회에서 갈수록 고립되던 이스라엘 정부는 중남미로 눈을 돌렸고, 이제 그 노력이 성과를 거두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기드온 사르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2026년을 이스라엘의 중남미의 해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그는 우방국 외무장관들과 만나고 직접 중남미를 방문하면서 그 구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에서는 자연재해 구호 활동이 이스라엘 정부가 현지 주민들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통로가 됐다. 동시에 이들 정부는 국민 대다수가 강하게 비판하는 국가인 이스라엘과 관계를 개선하면서도, 재난 구호를 내세워 이를 정당화할 수 있게 됐다.

해외 원조 활동을 외교의 연장선으로 활용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일이다. 그러나 인도주의적 목적보다 정치적 목적을 앞세운 원조는 다른 문제다. 콜롬비아 정부가 자국과 정치적으로 뜻을 같이하지 않는 국가들의 구조 활동을 거부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스라엘 역시 인도적 구호를 지정학적 목표를 달성하고 자원에 접근할 수단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런 행태는 결국 우파 지도자들이 외교적 협력보다 이해득실을 따지는 거래 중심의 관계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출처Colombia and Israel’s Cynical Disaster Diplomacy

[번역] 이꽃맘

덧붙이는 말

게이브 레빈드리진(Gabe Levine-Drizin)은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주로 중남미 정치와 사회운동, 미국과 중남미의 관계를 다루는 인물이다. 특히 진보 성향의 중남미 전문 매체 NACLA(North American Congress on Latin America)에 글을 기고한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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