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언론은 이중잣대와 검열, 기만적인 언어를 동원하고 이스라엘의 거짓말을 확대 재생산하며 팔레스타인인을 비인간화함으로써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집단학살을 가능하게 한다.
세상에 기쁨을(Joy to the World). 출처: Mr. Fish
서방 언론은 집단학살에 대한 대중의 동의를 만들어낸다. 이스라엘이 수십 년 동안 이어온 군사적 점령과 아파르트헤이트를 정상적인 것으로 포장한다.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노골적으로 위반해온 사실은 지워버린다. 이스라엘이 피해자라는 허구를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가자지구에서 활동하는 팔레스타인 언론인과 미디어 종사자들의 보도를 외면하고 깎아내리며 악마화한다. 이스라엘은 2023년 10월 7일부터 2025년 8월까지 이들 가운데 최소 220명을 살해했다. 서방 언론은 이스라엘의 가혹한 검열을 고분고분 받아들인다. 이스라엘이 외국 기자의 가자지구 취재를 허용하지 않아 전쟁범죄를 은폐하려 하는데도 미온적인 항의 서한을 보내는 데 그친다. 참수된 아기부터 10월 7일 이스라엘 여성들을 상대로 광범위한 성폭력이 벌어졌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거짓말을 확대 재생산해 진실을 흐린다.
가자지구에 관해 보도할 때 언론은 수동태 동사를 사용한다. 주어가 없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집단학살이 마치 신이 일으킨 일처럼 보인다. 지진이나 쓰나미와 다를 바 없는 자연재해처럼 묘사한다. ‘폭력의 악순환’이나 ‘충돌’ 같은 상투적이고 모호한 표현으로 현실을 왜곡하고 호도한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이렇게 경고했다. “사고가 언어를 타락시킨다면, 언어 역시 사고를 타락시킬 수 있다.”
팔레스타인인을 다루는 언론 보도에서는 ‘집단학살’, ‘잔혹행위’, ‘인종청소’, ‘점령지’ 같은 표현이 마법처럼 사라진다. 반면 팔레스타인인의 저항에는 으레 ‘야만적’, ‘잔혹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뉴욕타임스> 편집진은 기자들에게 팔레스타인인을 언급할 때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대량살육’, ‘난민촌’, ‘도살’, ‘학살’ 같은 표현을 피하라고 지시한다.
언론은 이스라엘이 먹여주는 내용을 고분고분 받아쓰고 되풀이한다. 융단폭격은 ‘정밀 공습’이 된다. 이스라엘이 기아를 무기로 사용하는 행위는 ‘식량 부족’이 된다. 어린이를 포함해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을 살해하는 행위는 ‘충돌’이 된다. 유대인 정착민들이 언덕 위에 세운 요새 같은 정착촌은 ‘주거 지역’이 된다. 기자나 의사를 재판도 없이 암살해도 그저 ‘사망했다’고 표현한다.
언론은 집단학살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라 부르며 ‘자기방어’라고 정당화한다. ‘이스라엘에게는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는 말을 주문처럼 되풀이한다. 이스라엘이 학교와 병원, 진료소, 구급차, 모스크, 교회 등 민간 시설을 파괴하면 ‘하마스 지휘본부’였다고 부르거나, 하마스가 ‘민간인을 인간방패로 이용하기 때문’에 공격했다고 설명한다. 정작 이스라엘군은 구금한 팔레스타인인을 묶은 뒤 부비트랩이 설치됐을 가능성이 있는 건물이나 터널에 이스라엘 병사보다 먼저 들어가도록 강요하는 방식으로 팔레스타인인을 인간방패로 상습적으로 이용한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인을 억류하면 군 복무자라 해도 ‘인질’이라고 부른다. 반면 이스라엘이 어린이를 포함한 팔레스타인인을 기소나 재판 없이 붙잡아 구금시설로 끌고 가고, 그곳에서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고문을 가해도 이들을 ‘수감자’라고 부른다.
이스라엘이 천막촌이나 병원을 미사일로 공격하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가 잘못 발사한 로켓 때문이라고 책임을 돌린다. 이스라엘이 공격 사실을 인정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인정하더라도 ‘비극적인 실수’라고 표현한다.
언론은 가자지구의 민간 기관에 ‘하마스가 운영하는’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이들이 발표하는 내용의 신빙성을 떨어뜨린다. <뉴욕타임스>는 가자지구 보건부의 발표를 전할 때마다 보건부가 “민간인과 전투원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설명을 상습적으로 덧붙이며 수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한 현실을 가린다.
그 결과 언론 역사상 가장 기괴하게 뒤틀린 문장들이 탄생했다. 2023년 11월 5일 <뉴욕타임스>는 다음과 같은 제목을 달았다. “가자 주민들이 공습이었다고 말하는 폭발로 인구 밀집 지역에서 다수의 사상자 발생.”
나는 ‘팔레스타인 언론인에 대한 배신’이라는 칼럼에서 이렇게 물었다. “<미들 이스트 아이>의 기자 모하메드 살라마(Mohamed Salama)와 아흐메드 아부 아지즈(Ahmed Abu Aziz), <로이터> 사진기자 후삼 알마스리(Hussam al-Masri), 그리고 <AP통신>을 비롯한 여러 언론사와 일했던 프리랜서 모아즈 아부 타하(Moaz Abu Taha)와 마리암 다가(Mariam Dagga)가 나세르 의료단지에서 ‘더블 탭’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을 때 서방 통신사들은 어떻게 대응했는가? ‘더블 탭’은 첫 번째 공격으로 발생한 사상자를 구조하러 온 응급구조대원들까지 살해하기 위해 두 번째 공격을 가하는 방식이다.”
<AP통신>은 이렇게 보도했다. “이스라엘군, 가자 병원 공습은 하마스 카메라로 추정되는 장비를 겨냥했다고 밝혀.”
CNN도 이렇게 전했다. “이스라엘군, 병원 공습은 하마스 카메라를 겨냥한 것이었다고 주장.”
그러나 그 카메라는 로이터 소유였다. 로이터는 자사가 병원에서 촬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스라엘이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나는 다시 물었다.“8월 10일 알시파 병원 인근 언론인 천막에서 <알자지라> 특파원 아나스 알샤리프(Anas Al Sharif)를 비롯한 기자 네 명이 목숨을 잃었을 때 서방 언론은 이를 어떻게 보도했는가?”
<로이터>는 다음과 같은 제목을 달았다. “이스라엘, 하마스 지도자라고 주장한 알자지라 기자 살해.” 알샤리프는 2024년 퓰리처상을 받은 로이터 취재팀의 일원이었는데도 그랬다.
독일 신문 <빌트>는 1면에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기자로 위장한 테러리스트, 가자에서 사망.”
아살 라드(Assal Rad)는 ‘팔레스타인이라고 말하지 마라: 언론은 어떻게 집단학살에 대한 동의를 만들어냈는가’에서 이렇게 쓴다. “언론이 벌이는 언어적 곡예는 단어의 뜻 자체를 새롭게 정의해 아무런 의미도 없게 만드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주류 언론은 이스라엘이 휴전 협정을 반복해서 위반했음에도 이를 ‘위반’이라는 언어로 표현하지 않았다. 대신 이스라엘의 공격을 합리화하고 이스라엘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놓은 주장을 비판 없이 되풀이하는 기존의 보도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휴전’ 중에도 팔레스타인인들이 계속 목숨을 잃고 구호물자가 필요한 수준은 물론 합의한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서방 언론은 이러한 노골적인 위반 행위를 ‘불안정한 휴전’을 시험하는 ‘시험대’나 ‘도전’으로 묘사했다. 국제앰네스티 같은 주요 인권단체가 집단학살이 실제로 끝나지 않았다고 경고했지만, 기존 언론은 여전히 이를 ‘불안정한 휴전’이 이어지는 전쟁으로 규정했다.”
말은 중요하다. 말은 행동을 정당화한다. 집단학살이 존재하지 않고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자신을 방어하고 있는 것이라면 미국과 이스라엘의 유럽 동맹국들은 수백억 달러 규모의 군사원조를 제공할 권리가 생긴다. 10월 7일 하마스가 시작한 전쟁이라고 규정하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초토화하고 주민들을 대량 학살한 일도 하마스의 공격이 초래한 안타까운 결과라며 유감을 표하는 데 그칠 수 있다.
오웰이 지적했듯이 이러한 언어의 타락은 변호할 수 없는 것을 변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인도에 대한 영국의 지배 지속, 러시아의 숙청과 강제 이주,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일 같은 것들도 분명 변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려면 대부분의 사람이 차마 직면하기 어려울 정도로 잔혹한 논리를 펼쳐야 하고, 정당이 공언하는 목표와도 맞지 않는 주장을 해야 한다. 따라서 정치 언어는 대부분 완곡어법과 논점 선취, 그저 흐릿하고 모호한 표현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다. 아무런 방어 능력도 없는 마을을 공중에서 폭격하고, 주민들을 들판으로 내쫓고, 가축을 기관총으로 쏘고, 소이탄으로 오두막을 불태운다. 이를 ‘평정’이라고 부른다. 수백만 농민의 농장을 빼앗고, 그들이 들고 갈 수 있는 것만 챙겨 길 위를 터벅터벅 걷게 만든다. 이를 ‘주민 이전’ 또는 ‘국경 조정’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을 재판도 없이 수년간 감옥에 가두거나, 뒤통수에 총을 쏘거나, 북극권의 벌목 수용소로 보내 괴혈병으로 죽게 만든다. 이를 ‘불순분자 제거’라고 부른다.
애덤 존슨(Adam Johnson)은 ⟪집단학살을 파는 법: 가자 파괴에 공모한 언론⟫에서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CNN, 폴리티코, 액시오스, USA 투데이, AP통신 기사 1만2천여 건과 CNN·MSNBC에서 방송한 TV 보도 5천여 건을 분석했다.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쓴 이 책은 집단학살을 정당화해 온 ‘진보’ 언론을 통렬하게 고발한다.
CNN과 뉴욕타임스는 편집자와 기자들에게 이스라엘군의 확인과 GPS 좌표를 확보한 뒤에야 공격 주체가 이스라엘이라고 보도할 수 있다고 지시했다. 존슨은 CNN 내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다.
“뉴스룸에 있든 현장에 있든 우리는 공격 현장의 위치를 확인하고, 그 좌표를 이스라엘 측에 보내 입장을 요청하기 전까지는 이스라엘의 소행이라고 보도할 수 없었다. 그 전까지는 무조건 ‘폭발’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사실상 충족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높은 기준을 적용받았다.”
존슨이 자신의 책을 설명하는 인터뷰는 일렉트로닉 인티파다(The Electronic Intifada)에서 볼 수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취재하는 CNN 기자들은 방송 전에 기사를 예루살렘 지국에 보내 검토받아야 한다. CNN 예루살렘 지국은 이스라엘에 있는 다른 모든 언론사 지국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군 검열 당국이 부과한 제한을 따라야 한다.
CNN을 비롯한 기존 언론에 출연할 수 있는 극소수의 팔레스타인인에게는 대개 방송에 나가기도 전에 하마스를 “규탄하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이스라엘을 조금이라도 비판하는 출연자에게는 이스라엘이 “존재할 권리가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시오니즘과 아파르트헤이트, 인종청소, 집단학살, 그리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100년 동안 벌여온 전쟁을 규탄하느냐고 묻는 사람은 없다. 팔레스타인인에게 자신을 방어할 권리가 있는지도 묻지 않는다. 국제법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인에게는 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포함해 자신을 방어할 권리가 있다.
로버트 피스크(Robert Fisk)가 지적했듯이 길들여진 언론인과 언론사는 “권력의 언어에 갇힌 포로”다. 이들은 권력이 만든 공식 용어를 충실하게 앵무새처럼 되풀이한다. 그 결과 이들은 단순한 선전가를 넘어 집단학살의 공범이 된다.
대학 캠퍼스에서 시위하는 학생들을 비롯해 집단학살에 항의하는 사람들은 ‘하마스 지지자’, ‘반유대주의자’라는 비난을 받는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유대인이다. 기자들은 캠퍼스의 힐렐 센터에 주로 모여 있는 시오니스트 학생들을 찾아가 시위 때문에 “신변의 위협을 느낀다”는 주장을 받아쓴다. 반면 언론은 반무슬림 편견이 확산되는 현실이나 학생 시위대가 받는 탄압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학생들은 경찰의 폭력에 시달렸고 3천 명이 구금되거나 체포됐다. 정학과 근신, 퇴학 처분을 받고 졸업장을 받지 못하기도 했으며, 시위에 동조한 교수들은 해고당했다.
“강에서 바다까지, 팔레스타인은 자유로워질 것이다(From the river to the sea, Palestine will be free)”를 비롯해 팔레스타인 해방을 요구하는 구호와 팔레스타인 국기까지 범죄의 대상으로 삼았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유대인의 목숨은 중요하다. 팔레스타인인의 목숨은 중요하지 않다.
역사학자 라시드 할리디(Rashid Khalidi)는 로빈 앤더슨(Robin Anderson)의 ⟪공모의 렌즈: 이스라엘의 가자 집단학살을 다룬 미국 언론⟫(The Complicit Lens: US Media Coverage of Israel’s Genocide in Gaza) 서문에서 이렇게 쓴다.
“유엔 기구와 명망 있는 인권감시단체, 의학 학술지, 전문 의료진이 작성한 보고서는 일반적으로 주류 언론에서 존중받으며 비중 있게 다뤄진다.
그러나 이번 전쟁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런 자료를 인용하기라도 하면, 이스라엘의 수많은 전문 선전가와 미국 내 수많은 이스라엘 옹호자들이 이 기관과 개인을 향해 쏟아내는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에도 똑같은 비중을 부여한다.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비판하는 사람에게 하마스 지지자나 테러 동조자라는 낙인을 찍는 것 외에도, 이들이 비방을 위해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반유대주의라는 치명적인 혐의를 조직적이고 터무니없이 남용하는 것이다.”
주류 언론의 독자와 시청자들이 대거 이탈해 이스라엘 로비나 미국 정부, 기업의 필터를 거치지 않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으로 옮겨가는 현상은 기존 언론이 얼마나 파산 상태에 이르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등장한 것이 ‘플랫폼사이드(platformicide)’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엑스, 유튜브, 틱톡 같은 거대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알고리즘과 섀도 밴, 라이브 스트리밍 제한, 계정 폐쇄 등을 동원해 팔레스타인 관련 보도의 도달 범위를 대폭 줄이는 행위를 뜻한다.
이러한 검열은 집단학살의 참상을 대중의 눈에서 감추려는 조직적인 노력의 일부다.
서방 언론은 10월 7일을 끊임없이 언급함으로써 집단학살을 역사적 맥락에서 떼어놓는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19년 동안 봉쇄해 온 사실은 외면한다. 서방 언론은 10월 7일 공격을 ‘아무런 도발 없이 벌어진 공격’으로 묘사한다. 이스라엘이 2008~2009년 겨울 가자지구에서 무장하지 않은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한 일도, 2012년과 2014년 가자지구를 공격한 일도, 2018~2019년 ‘귀환 대행진(Great March of Return)’ 시위대를 공격한 일도 외면한다.
1948년 나크바(Nakba)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당시 유럽에서 온 시오니스트들은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의 78% 이상을 장악하고 팔레스타인인 75만 명을 폭력적으로 추방했으며, 팔레스타인 마을 530곳 이상을 파괴하고 팔레스타인인 1만5천 명을 살해했다. 1948년 고향에서 쫓겨난 사람 가운데 70%는 가자지구로 내몰렸다.
시오니즘 프로젝트는 사람들이 역사를 잊도록 만드는 것을 전제로 한다.
앤더슨은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쓴다. “언론이 하마스를 양심의 가책도 없이 아기들을 즐겁게 고문하고 사지를 절단하며 참수하는 잔혹한 테러집단으로 규정하고 나자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언론은 그저 이스라엘이 저질러온 폭력의 역사를 보도하지 않았다. 그 결과 기성 언론은 팔레스타인인들이 매일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는지도 보도하지 않았다.”
현재 가자지구에 휴전이 시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허구다. 이른바 휴전이 발효된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 최소 1,286명을 살해하고 4,257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그러나 서방 언론은 이 ‘휴전’을 핑계로 가자지구에 등을 돌렸다. 이러한 집단학살 부정은 처음부터 언론 보도의 특징이었다. 이는 이스라엘의 범죄뿐 아니라 가자지구의 모든 팔레스타인인을 인종청소하겠다는 이스라엘의 공언까지 가린다. 사실상 국제법을 무력화하고 언론이라는 직업 자체를 조롱거리로 만든다.
마지막 인종청소가 벌어지는 순간에도 서방 언론은 틀림없이 이스라엘의 선동·선전과 완곡어법, 상투적인 표현을 계속해서 우리에게 쏟아부을 것이다.
서방 언론은 마지막 순간까지 집단학살을 정당화할 것이다.
[출처] How the Media Sells Genocide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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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헤지스(Chris Hedges)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널리스트로, 15년 동안 뉴욕타임스의 해외 특파원으로 근무하며 중동 지국장과 발칸 지국장을 역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