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배달라이더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플랫폼 노동자성 인정 첫 판결

서울고등법원이 배달라이더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로 인정했다. 플랫폼사가 업무위탁계약 형식으로 라이더와 계약했더라도, 실제로는 앱과 관리자 지시를 통해 배달 업무를 통제했다면 노동자로 봐야 한다는 판단이다.

서울고법 제38-1민사부는 지난 3일 배달 플랫폼사 소속 라이더가 제기한 해고 무효 및 임금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고 회사의 2021년 12월 6일 자 계약 해지 통보가 무효인 해고라고 판단하고, 해고 기간 임금 상당액 지급을 명령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쟁점은 배달라이더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인지였다. 원고는 2021년 5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피고 회사 지점에 소속돼 배달 업무를 수행했다. 회사와 체결한 계약 명칭은 ‘배송대행 업무위탁 계약’이었지만, 원고는 회사가 정한 앱에 접속해 주문을 수락하고 배달을 수행했다.

재판부는 계약 형식보다 실제 노무제공 관계를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플랫폼 노동의 경우 온라인 플랫폼 알고리즘과 복수의 사업 참여자가 업무 배분과 수행 방식에 관여하는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봤다. 이는 대법원이 지난해 타다 사건에서 제시한 플랫폼 노동자성 판단 법리를 따른 것이다.

법원은 피고 회사 사업의 실질을 단순 중개가 아니라 ‘상품 배달 서비스’ 구축·운영으로 봤다. 라이더는 이 서비스의 핵심 인력이며, 독립사업자로서 고객을 직접 찾는 것이 아니라 회사 앱을 통해서만 주문을 수락하고 배달을 수행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업무 통제도 근로자성 판단의 핵심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배달요금, 할증, 수수료, 페널티 등 보수 산정 기준이 회사가 정한 구조에 따라 결정됐고, 라이더가 이를 바꾸거나 조정할 수 없었다고 봤다. 또 관리자용 프로그램을 통해 라이더 위치와 배달 현황이 실시간으로 조회됐고, 관리자가 배차 취소, 묶음배달 상한 조정, 출근 독려 등을 할 수 있었던 점도 회사의 지휘·감독으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원하는 시간에 앱에 접속해 일할 수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독립사업자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앱에 접속해 근무하는 동안에는 회사가 정한 규칙과 시스템 아래에서 배달 업무를 수행했고, 보수를 목적으로 회사의 지휘·감독을 받는 종속적 관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법원은 회사의 계약 해지 통보를 해고로 봤다. 회사가 해고 사유와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했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해고 절차를 위반한 무효 해고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회사가 원고에게 미지급 임금과 복직일까지 월 293만3158원 비율의 임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는 이번 판결을 “배달노동자에 대해 근로자성을 인정한 첫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지부는 “배달노동자는 플랫폼사에 종속된 상태로 일하고 있음에도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며 “이번 판결로 하청사에서 근무 중인 상당수 배달노동자도 근로자 지위를 다투며 권리를 쟁취할 가능성이 열렸다”고 밝혔다.

라이더유니온지부는 법원이 플랫폼 노동의 구조적 종속성을 짚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지부는 “배달노동자는 업무 개시 여부를 선택할 수는 있으나, 업무가 시작된 이후에는 전적으로 플랫폼사가 정한 규칙에 따라 근무해야 한다”며 “플랫폼사는 근로자로 고용할 경우 증가하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업무위탁계약이라는 형식을 활용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공공운수노조도 성명을 내고 “플랫폼을 통해 노동한다는 이유로 사용자가 부담해야 할 사회보험, 연차, 퇴직금 등 근로기준법상 의무를 면탈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 판결”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정부가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권리 보장에서 법원 판결에 후행해 왔다며 노동자 추정제도 도입과 적극적인 근로감독을 요구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이번 판결은 플랫폼 노동자성 논쟁의 무게중심을 ‘계약 형식’에서 ‘실질적 통제’로 옮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회사가 직접 출근부를 작성하지 않더라도 앱 접속, 배차 알고리즘, 위치 추적, 페널티, 보수 산정 기준을 통해 노동 과정을 통제했다면 근로기준법상 사용자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나온 셈이다.

다만 판결은 모든 배달라이더가 곧바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법원은 원고가 일한 구체적 방식, 회사의 관리 구조, 앱과 관리자 프로그램을 통한 통제 정도를 종합해 판단했다. 그럼에도 배민·쿠팡 등 플랫폼 배달 하청 구조에서 출퇴근 관리, 근무지역 지정, 목표 물량 관리가 이뤄지는 경우 유사한 노동자성 다툼이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최저임금위원회 논의에도 파장이 예상된다. 라이더유니온지부는 최근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건당 최저임금 적용 논의가 부결된 것을 두고 “대한민국 법원의 판단과 국제노동기구 협약 등 여러 면에서 법리와 시대의 상식에 뒤떨어진 결정임이 드러났다”며 재논의를 요구했다. 공공운수노조 역시 도급제 최저임금 적용을 적극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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