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란드, 한국 민주당의 꿈인가?

2019년 6월 13일, 덴마크 기상연구소 과학자 올센은 그린란드 해빙에 설치된 기상 모니터링 도구를 회수하던 중 눈썰매를 잠시 멈춰 세웠다. 평상시 6월과는 판이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끌고 나온 눈썰매가 무색하게, 빙하가 속절없이 녹아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지구에서 두 번째로 큰 그린란드 빙하의 약 40%가 녹아내렸다. 6월부터 빙하가 녹긴 하지만 유례없는 패턴이었다. 덴마크 기상연구소 과학자가 그날 깜짝 놀라 찍은 사진이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그레타 툰베리를 비롯해 수많은 이들이 기후위기의 경종을 울리는 장면이라며 근심의 말풍선을 띄웠다.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아름다울진대, 수면 아래 서글픔이 잔뜩 웅크린 풍경이었다. 

그런데 같은 해 8월, 대통령 첫 임기를 수행하던 트럼프가 갑자기 그린란드를 매입하겠다고 선언했다. 국제 안보를 위해 그린란드를 통제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기는 1951년 덴마크와 군사방위조약을 맺고 툴레공군기지를 세운 이래, 그린란드는 러시아를 견제하는 최북단의 지정학적 요충지로 기능해 온 터였다. 

거기에다 그린란드에 대한 미국의 팽창주의적 야욕은 꽤 오래된 이력을 지니고 있다. 1867년 앤드루 존슨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매입하려다 실패했고, 1946년에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1억 달러를 제시하며 매입을 시도했다가 좌초된 바 있다. 

오랜 세월 그린란드는 미국과 유럽인들에게 세계의 끝을 상징하는 동시에 신비와 풍요의 땅으로 미화되어 왔다. 끊임없이 정복과 식민주의에 대한 욕망을 자극해 온 것이다. 그런 이유로 트럼프의 매입 계획은 별반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부동산 갑부 출신이어서 또 땅따먹기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조롱마저 가해졌다. 

하지만 트럼프의 야망을 과거의 매입 시도들과 구별 짓는 특별한 사태가 존재한다. 기후위기가 바로 그것이다. 과거와 달리 그린란드가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고 있는 것이다. 거대하고 창백한 빙하의 땅이 녹는다는 건 누군가에는 긴급의 기후비상사태를 의미하지만, 이윤 축적에만 골몰하는 글로벌 자본주의 입장에서는 이익을 극대화할 절호의 기회를 의미할 것이다. 

먼저 기민하게 이를 포착한 것은 미 국방부였다. 이미 2014년 보고서에서 기후변화가 테러에 준하는 '위협 승수'라고 주장하며 미 군대의 존재론적 위상을 제고할 것을 요구한 터다. 북극이 녹아 유럽과 북미를 잇는 최단 항로가 열리면 중국, 러시아와 치열한 각축이 벌어질 것이라 전망하고 미국의 선제적 개입을 주문했다. 자원과 패권의 선점을 위해 미국이 먼저 북극을 군사적으로 요새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2018년 1월 중국은 북극에 인프라를 건설하는 '북극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선언했다. 곧이어 그린란드에 연구소와 위성기지국 건설, 공항 개조 등을 제안하며 박차를 가했다. 또 중국 기업들이 광물 탐사에 나섰다. 그런데 이 행보는 그린란드 선주민 정부에 의한 요청이기도 했다. 그린란드 선주민의 다수는 환경 보전에 관심을 가진 반면에, 관리들은 개발에 초점을 맞춘 터였다. 중국 투자를 견인하고 광물 개발을 하는 것이 덴마크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길이라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2019년 6월, 덴마크가 미국과의 동맹을 이유로 중국의 개발 계획을 거절했다. 그러자 바로 뒤이어 트럼프가 득달같이 그린란드를 사들이겠다고 발표했던 것이다. 

요컨대 2019년, 거대한 북극 섬이 녹아내리던 그해, 중국과 미국이 자원 경쟁과 지정학적 이점을 놓고 한껏 신경전을 펼친 것이다. 

그린란드에 쇄도하는 억만장자들

바로 여기까지가 2019년에 그린란드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당시 트럼프의 매입 제안은 덴마크에 의해 거부되었고 세계적인 조롱감이 되었다. '그린란드는 팔 수 없다'는 문구가 바이럴 밈으로 떠오르는가 하면, 북극곰이 미국 비행기를 기관총으로 쏘는 밈이 인기를 모았다. 중국 역시 그린란드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2025년 또다시 그린란드에 선전포고가 떨어졌다. 트럼프가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그린란드를 점령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심지어 무력 사용도 마다하지 않을 거라고 엄포를 놓는다. 2019년과는 딴판이다. 그 기세가 자못 진지하고 매섭다. 심지어 부통령 제이디 밴스가 그린란드에 날아가 멱살을 흔들 듯 덴마크를 협박했다.  

파나마, 캐나다, 멕시코 북부를 영토에 편입하고 심지어 가자 지구를 관광지로 개발하겠다며 이제 고립주의자의 가면을 벗어던진 채 팽창주의적 야욕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이 뻔뻔한 부동산 제국주의자가 가장 앞서 군침을 흘리는 게 하필 왜 그린란드일까? 복수심 때문일까? 그린란드가 그토록 중요한 이유가 뭘까? 6년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우선, 모두가 예상하다시피 그린란드의 천연자원 때문이다. 5만 6천여 명의 선주민이 거주하는 덴마크 자치령의 그린란드. 이 광대한 얼음 땅 밑에는 석유와 광물이 매장되어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세계의 미개발 석유 매장량 대부분이 북극에 매장되어 있고, 그린란드 북동부 지역에만 314억 배럴이 잠들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그린란드에는 막대한 필수 광물이 묻혀 있다. 배터리에 사용되는 리튬, 흑연, 구리뿐 아니라 전기자동차와 풍력 터빈에 가용되는 희토류 원소 등. 2023년 유럽위원회 조사 결과, 중요 원자재 34개 중 25개가 그린란드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루비와 다이아몬드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시 말해, 섬의 80%를 뒤덮고 있던 빙하가 녹는다는 것은 더 많은 자원이 드러난다는 걸 의미한다. 채굴과 운송 비용의 감소를 의미한다. 수 세기에서 수천 년 동안 얼음에 묻혀 있던 땅의 맨 살갗이 벗겨지고 메탄을 뿜어내면서 지구시스템에 충격을 가하는 순간에도 돈을 벌기 위해 장사꾼들이 그린란드에 쇄도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억만장자들이 가장 발 빠르게 그린란드에 달려왔다. 제프 베조스, 빌 게이츠, , 샘 알트만, 마크 주커버그, 마이클 블룸버그, 마크 앤드리슨 등 이름도 쟁쟁한 IT업계 억만장자들이 투자한 광물 탐사 기업 코볼드 메탈스(Kobold Metals)가 그 주인공인데, 2022년부터 인공지능과 헬리콥터 등 최첨단 장비로 그린란드 서해안을 탐색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니켈과 코발트, 또는 구리 매장지를 맹렬히 찾는 중이다. 이 금속 자원들은 모두 전기자동차와 인공지능에 들어가게 된다. 코볼드 메탈스는 실리콘 밸리에 본사를 둔 광물 탐사 스타트업 기업으로서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현재, 그린란드에서 아프리카 잠비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금속 자원들을 샅샅이 뒤지는 중이다. 

한편 크리티컬 메탈스(Critical Metals)라는 광업 기업은 2026년부터 그린란드에서 채굴을 시작할 계획이다. 미국 상무장관 하워드 루트닉이 소유한 금융사 캔터 피츠제럴드가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상무장관으로 지명된 후에 크리티컬 메탈스의 지분을 정리하겠다고 주장했지만, 종국적으로 그린란드에 대한 관세 및 무역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트럼프 정부와 기술 자본이 맺고 있는 커넥션의 단면을 정확히 예시한다. 

주지하는 것처럼 트럼프 정부가 그린란드를 탐내는 첫 번째 이유는 전기자동차 배터리와 데이터 센터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금속들 때문이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OpenAI, NVIDIA, Microsoft, Oracle 등 AI 유명 기업들의 자금 지원을 받아 미국 전역에 데이터 센터를 건설하는 5천억 달러 규모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중국과 AI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포부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금속을 저렴하게 추출할 배후지가 필요하다. 그곳이 바로 그린란드다. 

생각해 보라. 현재 중국은 세계 해상 철광석 공급량의 거의 4분의 3, 리튬 수요의 60%, 구리 수요의 80%, 니켈 수요의 75%를 독차지한다. 지구 광물 교역망의 절대 왕좌에 앉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전기자동차와 인공지능 때문에 2040년까지 구리 수요는 50% 이상 늘어나고, 코발트와 니켈은 2배, 리튬은 무려 9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는 실정이다. 

예를 들면 AI의 전력 1메가와트(MW)당 27톤의 구리가 사용되는데, 2050년까지 AI 전용 데이터 센터의 구리 수요가 6배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전체 구리 수요의 9%다. 그만큼 데이터 센터 건설에는 막대한 금속 자원이 가용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와 미국 IT 자본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가 가동되기 위해서는 중국의 교역망에서 벗어난 매장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2024년 대선 직전, 광산 기관 투자자들이 트럼프 미디어 주식을 자그마치 3억 1,400만 달러어치를 구입해 트럼프를 활짝 웃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의 2024년 선거운동에 제프 베조스 등 앞서 거론한 IT 억만장자들, 화석연료 기업, 그리고 암호화폐 거물들이 최소 2억 4,300만 달러를 기부했다. 말하자면 빅 테크, 화석연료, 그리고 암호화폐가 트럼프와의 거래를 위해 미 행정부를 통째로 사버린 것이다. 

단적으로, 최대 암호화폐 슈퍼팩인 페어셰이크(Fairshake)는 지난 선거 기간에 1억 9,500만 달러를 지출했으며, 이 중 최소 1억 4,800만 달러가 트럼프와 공화당에 흘러 들어갔다. 또 대통령 취임 기금에 1,000만 달러를 추가로 입금했다. 암호화폐 세력은 막대한 돈을 쏟아내며 왜 트럼프를 지지하는 걸까?

우선 그린란드와 관련해서만 본다면, 추운 기후, 그리고 물과 토지 같은 자연조건 때문에 비트코인 채굴 작업에 용이하다. 암호화폐 갑부들은 누누이 " 데이터 센터를 운영하기에 세계 최고의 장소"로 그린란드를 뽑아왔다. 이미 일부 암호화폐 스타트업은 그린란드 부동산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전부일까? 빅 테크 자본과 암호화폐 세력이 트럼프 호주머니에 뒷돈을 찔러주고 그린란드를 얻으려는 이유가 단지 광물 채굴과 데이터 센터 때문만일까? 혹시 다른 심층의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라면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앞서 거론한 그린란드의 자연조건과 기후위기가 그린란드 식민화 프로젝트의 토대를 이룬다면, 이제부터 이야기할 자유지상주의자들의 '네트워크 국가' 이론은 이 여정의 상부구조를 구성한다. 아울러 이 이데올로기는 오늘날 심화되는 극우의 준동과 세계의 우경화의 안내 책자와도 같다. 

자유 도시와 무정부 자본주의

우선 드라이든 브라운(Dryden Brown)이라는 전직 서퍼 출신이 공동 창업한 암호화폐 스타트업 '프락시스(Praxis)'를 주목하자. '서구 문명 복원'을 목표로 내걸고 있는 프락시스는 새로운 도시 건설을 위해 무려 5억 2,500만 달러 이상의 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목표는 네트워크 국가다. 암호화폐, AI, 그리고 온갖 기술적 상상으로 구성되는 디지털 거버넌스 형태를 추구한다. 

네트워크 국가란 사회적-환경적 규제, 그리고 중앙 정부와 세금 규제에서 벗어나 급진적인 민영화와 혁신 개발에 주력하려는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유토피아다. 프락시스의 경우, 애초에는 '지중해 어딘가'에 네트워크 도시를 건설하려고 했지만, 2019년 트럼프가 그린란드 매수 계획을 내놓자 그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급기야 2024년에는 드라이든 브라운이 그린란드 수도 누크를 방문했고, 그린란드를 '진정한 개척지'로 묘사하며 화성에서 감행할 '테라포밍'의 완벽한 실험 장소라고 추켜세웠다. 

프락시스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사람이 피터 틸(Peter Thiel)이다. 페이팔의 창업자 중 한 명인 그는 2016년 트럼프를 지지한 최초의 실리콘 밸리 엘리트 중 한 명이었다. 오늘날 미국 자유지상주의와 급진 우파의 사상적 배경을 이해하려면 그의 이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가 투자하는 벤처 캐피털 기업인 프로노모스 캐피털(Pronomos Capital)은 앞서 거론한 프락시스 같은 자유 도시 실험에 대한 투자 허브로 자리 잡고 있다. 

바다에 떠다니는 무국적 유토피아 도시를 건설하려는 '시스테딩(Seasteading)' 운동의 선구자인 피터 틸은 9.11 테러를 계몽주의의 실패로 간주하며 서구 사회에 새로운 정치 체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더 이상 자유와 민주주의가 양립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는 그의 말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결별을 요청하는 억만장자의 문장으로 자주 인용된다. 2016년 뉴욕매거진에서는 " 민주주의에 반대하고 권위주의적 정부 형태를 옹호"하는 정치 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급기야 무정부 자본주의를 위해 권위주의를 요청하고 나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피터 틸의 영향력은 부통령 제이디 밴스의 정치 이력만 봐도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 2017년 틸은 밴스를 자신의 글로벌 투자 회사에 영입한 후 정치적 입지를 키워줬다. 2022년에는 오하이오 주 상원의원 선거에 1,500만 달러를 쏟아부으며 밴스의 승리를 도왔고 나중에는 트럼프에게 부통령으로 추천했다. 말하자면 단시간에 젊은 극우 정치인을 키웠고 트럼프를 압박해 부통령 자리까지 꿰찬 것이다. 그런가 하면, 덴마크 대사로 내정된 켄 하워리(Ken Howery)는 피터 틸, 일론 머스크와 함께 '페이팔 마피아'에 속해 있는 대표적인 기술 자유주의자로서, 규제 없는 자유 도시에 대한 이념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와 같이 피터 틸, 일론 머스크, 마크 앤드리슨, 부통령 제이디 밴스에 이르기까지 기술 자유지상주의자들이 트럼프 행정부를 촘촘히 장악하고 있다. 그들은 '민주주의 없는 자본주의'를 최선의 체제라고 믿는다. 정부와 민주적 통제는 가차 없이 축소되어야 하고,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법정화폐 대신 암호화폐가 기본 통화가 되어야 하며, 사유재산과 시장에 기반한 개인들의 영리 추구가 어떤 규제도 없이 펼쳐지는 세계, 바로 그것이 그들이 만들려는 세계다. 세금도 없고, 규제도 없고, 민주적 통제도 없는 무정부 자본주의 세계. 

예를 들어 그들 사이에 인기를 얻는 '암흑 계몽주의(Dark Enlightenment)'에 따르면, 이미 민주주의는 실패했고 자본주의를 제대로 건사하기 위해서는 독재자나 군주가 이끄는 우파 권위주의로 이행할 필요가 있다. 그를 위해서는 국가 단위가 아니라 수백, 혹은 수천 개의 자유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그들이 현실화한 온두라스의 '프로스페라(Prospera)'처럼, 세계 그 어느 곳이든 자유 도시를 만들어 자본과 개인 능력의 무한한 성장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사막이 되었든, 그린란드처럼 혹독한 얼음의 땅이 되었든, 바다가 되었든, 심지어 우주가 되었든 구멍을 팔 수 있다면 그 어느 곳이든 상관없다. 그 자유 도시는 AI, 암호화폐, 소형 원자로, 고속철도 등으로 운영되며, 선거 제도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거주자들은 기존에 정부가 제공하는 필수 서비스 대신, 기업이 제공하는 주택과 보건-의료 등의 서비스를 구매하면 된다. 즉, 삶의 완벽한 사유화다. 

⟪크랙업 캐피털리즘⟫의 저자 퀸 슬로보디언에 의하면, 홍콩에서부터 두바이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항구에서부터 사막 도시에 이르기까지, 시장급진주의자들이 세계 도처에 구축한 '민주주의가 없는 공간'은 최신에 등장한 것이 아니라 19세기 말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확대된 것들이다. 거추장스러운 민주적 규제를 일소하고 시장과 개인만이 투명하게 빛나는 세계를 구축하려는 욕망이 자본주의에 뿌리 깊이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와 과두 세력

그리고 우리는 이 대목에서 신자유주의를 소환해야만 한다. 신자유주의의 기원이랄 수 있는 1947년의 '몽펠르랭협회'가 사회주의에 대한 공포와 반격의 차원에서 형성된 것이라면, 1980년대 대서양 양안에서 신자유주의의 휘장을 열어젖힌 대처와 레이건은 대략 30년 동안 구축되었던 완전고용과 복지 체계를 공격하고, 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무력화한 반격의 기수들이었다. 1981년 취임사에서 로널드 레이건은 자유지상주의의 구호를 외쳤다. "정부는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 정부가 문제다." 대처는 복지 체제를 저주하며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사회 같은 건 없다!"

사회도 없고 정부도 없고, 따라서 공공성도 없는 세계. 오로지 시장과 축적의 자유만을 갈망하는 체제가 신자유주의다. 그러다 2007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신자유주의가 처참하게 실패했지만, 이를 대체할 만한 대안적인 체제가 등장하지 못했다.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미국의 민주당에 이르기까지 중도 좌파들 대부분은 오히려 궁지에 몰린 신자유주의를 구원하기 위해 감세와 긴축을 자진했고, 그 덕에 스스로 지지 세력을 잃어버리며 와해되는 신세로 전락했다.

어쩌면 오늘날 전 세계를 강타한 극우의 준동은 시장의 불안, 지정학적 혼돈, 정체성의 불안, 기후위기로 점철된 복합 위기의 늪에 빠진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해 권위주의를 소환하는 과정이라고 보는 게 타당한 것 같다. 유럽에서 미국까지, 인도의 힌두 파시즘에서 엘살바도르 감옥까지, 심지어 한국에 이르기까지 고용 불안, 사회와 공공성의 부재, 과두 세력의 성장 등 신자유주의가 실패한 자리를 따라 신파시즘과 권위주의라는 독버섯이 번성하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이윤을 증식하기 위해 그나마 남아 있는 민주적 장치와 규제들을 모두 제거하고 토지를 비롯한 재생산 구조를 남김없이 사유화해야 하는데, 그걸 가능하게 하기 위해 강력한 권위, 즉 헌법과 국제법마저 찢어버릴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손쉽게 시민 저항을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야만 아르헨티나의 극우 대통령 밀레이처럼 전기톱으로 공공서비스를 썰어버리고, 트럼프와 일론 머스크처럼 거의 뼈를 해체하듯이 연방 정부를 수술대 위에서 마음대로 분해하고 축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미국의 IT 억만장자들 상당수가 민주당을 지지했다. 인터넷 자유와 기술 혁신 찬양 같은 자유주의 이상이 민주당 이념과 부합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인터넷과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기술 자본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경쟁이 가열되면서 민주당이 가하던 최소한의 규제마저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버니 샌더스가 지적한 것처럼 통제되지 못한 IT 억만장자들이 점점 덩치를 키워 '빅 테크 과두제'를 형성했고, 트럼프를 앞세워 탈규제와 탈과세, 그리고 정부 지원을 사유화해 무한한 축적을 가동하려고 드는 것이다.

피터 틸을 비롯한 자유지상주의자들과 암호화폐 세력은 재기를 꿈꾸던 트럼프에게 돈과 언어를 빌려주며 꼼꼼하게 트럼프 2기를 설계했다. 2023년 3월, 트럼프는 이미 앞서 자유 도시 건설을 촉구했었다. 연방 정부 토지를 풀어 10개의 새로운 도시를 짓자는 이야기였는데, 거의 자유지상주의자들의 문건을 그대로 읽는 수준이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에 다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 것입니다. 이 자유 도시들은 개척지를 다시 열고, 미국인의 상상력에 불을 지피고....."

결국 이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지만 대신, 재선에 성공하자마자 곧바로 그린란드를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재단에 바치기 위해 전쟁을 불사하겠노라 선언했던 것이다. 세금이 없는 곳, 규제가 없는 곳, 심지어 조세도 회피할 수 있는 역외 공간. 무한한 성장이 가능한 곳, 그린란드로 가자!

그러나 19세기 자유주의가 그랬듯, 오늘날 자유지상주의의 자유는 철저히 식민주의에 기반해 있다. 19세기 서구 자유주의는 잔인한 노예제와 식민 지배가 없었다면 아예 성립 자체가 불가능한 체제였다. 마찬가지로 피터 틸에게 그린란드는 자유의 공간이 될 수 있지만, 그린란드 선주민에게는 자유의 축소에 불과하다. 자유주의의 '자유'란 이렇듯 누군가의 자유를 제한한다. 게다가 인공지능이 됐든 클라우드가 됐든 물질 세계를 벗어나는 것처럼 가정하는 그들의 '자유'란 하찮은 허상에 불과하다. 

가령, 기후위기로 인해 철철 녹아내리는 그린란드, 그에 따라 영구동토가 녹아내리면서 메탄가스가 뿜어져 나와 지구를 더 불태울지도 모를 그린란드에서 금속을 채굴하고, 암호화폐를 채굴하고, 또 데이터 센터를 구축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지난 2020~2021년간 전 세계 암호화폐 채굴로 인해 190개의 가스 화력 발전소 운영에 필적하는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아프리카 농촌 지역 3억 명의 물 사용량보다 더 많은 물을 소비했다. 비트코인 거래 한 건당 중형차 한 대가 1,600~2,600km를 질주하는 것과 같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또 데이터 센터 붐으로 2030년까지 약 25억 톤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정도면 전 세계 전체 항공 산업의 배출량에 필적한다. 또 무분별하게 금속과 희토류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하고 환경오염을 야기하며, 심지어 해당 지역 선주민들의 삶을 파괴하는 이 지독한 실재 세계의 고통의 무게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토록 실재적이고 물질적인 세계에서 벗어나는 자유가 어떻게 성립 가능하다는 말인가? 

요약하면, 빅 테크 억만장자와 암호화폐 세력이 꿈꾸는 자유 도시란 이 유한한 지구 행성을 무한하게 오염시키고 불평등을 야기하며 축조하려는 그들만의 파라다이스다. 규제되지 않는 자본이 권력을 사유화하다 못해 미쳐 날뛰면서 지구 곳곳에 구멍을 파고 민주주의가 없는 자본주의를 구축하기 위해 테라포밍을 시도하는 것이다. 타락한 자본주의의 최종본이자 우익 정치의 최종 종착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저 눈을 돌려 그린란드를 보면 된다. 

민주당은 무엇을 원하는가?

여기에 더해 어쩔 수 없이 그린란드를 보며 한국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먼저 자유를 노래 부르다 계엄을 일으키고 파면이 된 파렴치한 자유지상주의자가 떠오른다.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를 옆구리에 낀 채 민주주의를 제거하려던 그 어리석은 내란수괴. 

그 다음, 조기 대선 상황에서 인공지능에 기반한 '성장'을 노래하는 민주당이 보인다. 스스로를 보수라고 칭하며 감세며, 금투세며 온갖 규제를 낮추는 데 용을 쓰는 민주당. 윤석열을 끌어내리는 광장에서 가장 많은 목소리를 냈던 여성에 대해 함구령을 내리고, 남태령에서부터 광화문까지 누구보다 광장에서 더 많이 깃발을 흔들었던 성소수자와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도 또다시 나중에를 말하는 민주당이 보인다. 거기에다 증세와 복지 이야기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저렇게 계속 부자와 자본을 위해 세금을 낮추고 자꾸 민주적 통제를 제거하면 과두 세력에 더 많은 권력을 주는 것인데 괜찮은 건가? 저렇게 가난한 자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면 계속 극우들이 창궐할 텐데 괜찮은 건가? 아니, 다시 극우 괴물이 등장하면 그걸 빌미 삼아 정권을 잡을 테니 오히려 좋은 건가. 

누가 봐도 지금의 한국 민주당은 실패한 신자유주의를 등에 짊어지고 우경화의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민주주의가 축소된 자본주의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기후-생태 위기가 가속되는 이 절체의 세계에서 그린란드를 먹어 치우려는 저 어리석은 과두제 세력처럼 성장, 성장, 무한한 성장을 노래할 뿐이다. 얼마나 애석하고 참담한 일인가. 한국의 양당 정치란 '쿠데타가 존재하는 자본주의 vs 쿠데타가 없는 자본주의' 중 양자택일이니 말이다. 

필연적으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내란 이후 우리는 어떤 세계를 구성하려고 하는가? 민주주의가 없는 자본주의 세계인가, 아니면 자본을 통제하는 민주주의 사회인가? 또는 기득권과 과두 세력을 제압하고 평등의 가치를 확장하는 민주주의를 만들고 있는가?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며 지난 몇 달 동안 광장의 계절을 경유해 온 우리에게 당면한 가장 본연의 질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 질문을 충분히 벼리지 못하면 언제든 폭주하는 과두제 괴물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때마침, 그린란드는 이 질문을 위한 긴요한 나침반을 제공한다. 민주주의가 없는 세계가 궁금한가? 저기, 그린란드를 보라.

덧붙이는 말

이송희일은 영화 연출이 주업이지만, 칼럼도 쓰고 책도 쓰고 강의도 나간다. 동분서주 오지랖을 떠는 것 같아도 결국엔 이야기꾼이 되고 싶은 백수 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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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AI 민주당 트럼프 광물 그린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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