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미국 정부의 차입 비용이 급격히 상승했다. 채권시장의 변동성이 커진 것은 자본이 부채에 의존해 지출을 확대해 온 국가에 제동을 걸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긴축의 대가는 노동자들이 치르게 될 것이다.
케빈 워시(Kevin Warsh)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취임 선서를 했다. 출처: 백악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경제정책은 미국 국채의 세계시장이 어떤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거의 확고부동해 보이는 믿음을 토대로 삼아왔다. 이런 믿음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막대한 재정적자를 무기한 이어갈 수 있었고, 군사비가 1조 달러에 육박하는 상황에서도 부유층을 대상으로 대규모 감세를 단행할 수 있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경제위기를 억제할 사실상 무제한의 화력을 갖고 있다는 생각 역시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했다. 그러나 최근 몇 주 사이 이런 전제는 상당히 불안정해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미국이라는 국가조차 자본의 규율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어쩌면 더 중요하게는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실제로 행동에 나설 의지가 있는지를 둘러싼 의구심이 확산하면서 미국 정부의 차입 비용이 급격히 상승했다. 지난주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상징적인 경계선인 5%를 넘어 2007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계속해서 큰 목소리로 금리 인하를 요구했지만, 연준은 금리를 올리는 것 외에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판단했고 앞으로 추가 인상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러한 조치는 중앙은행의 ‘독립성’ 시대가 끝났다는 주장이 얼마나 근시안적인지를 드러냈다. 실제로 연준이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통화 긴축을 단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는 단순히 제도적 규칙이나 정치문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의 구조적 필요에서 나온다. 트럼프의 정책이 이러한 제약에 부딪히면서 연준을 자신의 의지에 복종시키려던 그의 시도도 무너졌다.
페트로달러의 쇠퇴?
많은 사람은 이러한 상황을 미국 제국이 붕괴하는 또 하나의 단계로 해석할 것이다. 이란이 석유 대금을 위안화로 받겠다고 위협하자 ‘페트로달러’ 체제가 곧 종말을 맞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특히 브릭스가 주도해 온 ‘탈달러화’ 움직임이 마침내 결실을 맺는다는 식의 해석이 흔하다. 그러나 미국 제국이 ‘탄화수소-달러 복합체’를 토대로 유지된다는 생각은 신화에 불과하다.
달러의 지위는 특정 상품의 가격을 달러로 표시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신용 시스템에서 달러가 담당하는 역할과 미국 경제의 힘에서 나온다. 공식 외환보유액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줄어들었지만, 미국으로 대규모 민간투자 자금이 계속 유입되면서 달러 수요를 뒷받침해 왔다. 더욱이 달러가 신용시장의 중심축 역할을 한다는 것은 기업과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가 달러 표시 채무와 자산에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뜻이다. 세계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데 부채는 화석에너지만큼 중요하며, 어쩌면 그보다 더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
물론 금리 인상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데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다. 1979년 신자유주의 시대의 문을 강압적으로 열어젖힌 ‘볼커 쇼크(Volcker Shock)’처럼, 경기침체를 일으킬 정도로 금리를 극단적으로 올리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금리를 올린다고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리는 것도 아니고, 지금 경제 전반으로 파급되고 있는 유가 급등세를 되돌릴 수도 없다. 통화정책으로 트럼프의 혼란스러운 관세 정책을 되돌릴 수도 없다. 이 관세 역시 상당한 물가 상승 압력을 만들어냈다.
오히려 연준이 통화 긴축을 시행해야 하는 이유는 여전히 달러에 깊이 의존하는 세계 금융 시스템의 안정을 지키기 위해서다. 막대한 재정적자를 메우려면 미국 정부가 국채 발행을 계속 늘려야 하는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지 않았다면 연준이 시장에 규율을 강제할 만큼 충분한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둘러싼 의구심이 커지면서 국채 매도세가 더욱 심해질 위험이 있었다. 달러가 세계 화폐의 역할을 하는 만큼 미국 국채시장의 혼란은 세계 경제 전체의 신용시장과 자금조달시장, 자산시장으로 파급될 수밖에 없다.
세계 자본주의를 위해 통화 긴축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좌파 일부가 상정해 온 친노동자적 케인스주의 대안이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보여준다. 연준이 친노동자적인 저금리 정책과 친기업적인 고금리 정책 사이에서 단순한 양자택일을 해야 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금리 인상이 노동자들에게 실제 비용을 안긴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반대로 연준이 계속 완화적인 정책을 유지했다면 미국의 장기금리는 더 높아졌을 가능성이 크고, 그 결과 차입 비용이 상승하는 동시에 국채시장에 더 큰 압박이 가해졌을 것이다. 또한 심각한 국채시장 위기가 발생하거나, 연준이 미국 국채의 지배적인 매수자가 되는 ‘파멸의 악순환’이 형성된다고 해서 노동자들에게 좋은 일이 될 리도 없다. 현재의 계급 역학을 감안하면 안정을 회복하는 비용은 의심할 여지 없이 노동자들이 떠안게 될 것이다.
누가 대가를 치르는가?
채권시장의 변동성은 미국 정부의 방만한 재정 운용에 자본이 제동을 거는 과정이다. 이제 문제는 긴축의 대가를 누가 치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오늘날 문제는 노동계급의 규율 부족이 아니다. 자본을 위한 감세와 막대한 군사비 지출에 전쟁과 관세 정책까지 결합한 거시경제 체제 자체가 문제다. 트럼프는 메디케이드, 식료품 지원, 기타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대폭 삭감해 재정의 구멍을 일부 메우려 했지만, 이런 삭감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인플레이션과 이자 비용 상승, 국채시장 변동성이 정책 운용의 여지를 좁히면서 이러한 우선순위들은 갈수록 서로 충돌하고 있다. 자본에 더 높은 세금을 부과하고 재정 우선순위를 바꿔 조정 비용을 더 많이 부담시키거나, 아니면 노동자들이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실업, 추가적인 사회복지 축소가 뒤섞인 형태로 그 비용을 떠안게 될 것이다.
이 문제는 단순히 생계비 부담의 위기에 그치지 않는다. 경제에 조정을 강요하는 바로 그 압력은 인류의 생존이 걸린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할 능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탈탄소화를 이루려면 에너지와 주택, 교통, 사회기반시설에 장기간에 걸쳐 막대한 투자를 해야 하지만, 공공재정에 가해지는 압력이 커질수록 이런 투자는 훨씬 더 어려워진다. 순이자 지출은 이제 군사비를 넘어 연간 1조 달러를 초과했고, 부채와 차입 비용이 증가하면서 앞으로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국가가 투자를 대대적으로 확대하지 않고 생태 위기에 대응하는 상황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증세와 예산 우선순위 조정, 부채의 화폐화를 통해 이러한 사업에 착수할 여지를 마련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자본이 이 모든 조치에 격렬하게 저항할 것이라는 점, 더구나 녹색 전환에 필요한 국가 계획의 확대에는 더욱 강하게 반발할 것이라는 점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이루려면 노동계급이 자본과 제국에 맞설 힘을 키워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더 광범위한 경기침체를 막고 가계의 차입 비용을 낮게 유지하기 위해 국채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이 시급하다. 그러나 현재의 혼란은 미국 정부조차 금융시장이 설정한 한계 때문에 정책 운용의 여지가 얼마나 심하게 제약받는지를 보여준다.
이번 사태는 마르크스주의 국가이론가 랠프 밀리밴드(Ralph Miliband)와 니코스 풀란차스(Nicos Poulantzas)가 오래전에 제시한 교훈을 다시 확인시켜준다. 자본주의 국가는 실제로 자율성을 갖지만, 그 자율성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다. 사회주의자들은 더 나은 통화정책을 선택하는 것만으로 이러한 현실에서 비롯되는 모순을 피할 수 없다. 사회주의자가 선거를 통해 집권한다고 해서 국가를 단순히 자신의 도구처럼 사용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진정한 과제는 자본주의의 제약을 받는 국가 안에서 활동하는 동시에, 그 제약 자체를 바꿀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다. 결코 만만한 과제가 아니다.
[출처] Treasury Market Volatility Is Capital Disciplining the State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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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마허(Stephen Maher)는 뉴욕주립대학교 코틀랜드 경제학과 조교수이자 <소셜리스트 레지스터>(Socialist Register)의 공동 편집자다. 스콧 아콴노(Scott Aquanno)는 온타리오 공과대학교 정치학과 조교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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