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유출에 신음하는 모로코

[INTERNATIONAL2]


“모든 재능있는 북아프리카의 기술자들에게 프랑스에서의 탄탄한 직업 경험을 제공하겠다.”

프랑스의 한 기업이 북아프리카 현지에서 인재 영입을 하면서 내건 문구다.

자국에서 실시되는 불어시험과 서류, 면접을 거쳐 영입된 모로코 청년들이 프랑스로 가는 티켓을 거머쥔다.

1. 사회의 인프라와 미래를 위협하는 글로벌 인재 쟁탈전

아프리카 북단에서 서쪽으로 길게 뻗어있는, 우리에게는 아프리카인들이 스페인으로 가는 출발지로 더 익숙한 모로코가 요즘 IT 인력 등 인재 유출 방지에 고심하고 있다. 이는 모로코 경제에도 IT 기술이 중요함을 방증한다. 이 분야의 국내 수요는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점점 늘어나는데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인력양성이 제대로 되지 않는 교육의 문제도 있지만 어렵게 양성한 청년들의 해외 이주가 인력 부족 문제를 더 심화시키고 있다.

모로코의 경우 현재 매년 600~800명 정도의 기술자와 300~500명 정도의 의사가 해외로 이주한다고 한다. 매년 1,400명 정도의 의사가 배출되는데 그중 절반 정도가 프랑스, 캐나다 등 불어권 국가나 다른 유럽 국가로 이주할 정도다. 2011년 1월 카사블랑카 의약학대학 졸업반 학생 251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조사에 따르면 이들 중 70.1%가 학업을 마친 후 모로코를 떠날 것이라고 답했다. 2021년에 발표된 한 보고서에 따르면 7천 명 이상의 의사들이 2년 내에 모로코를 떠날 것이라고도 했다. 2018년에는 그 숫자가 603명이었다는 점에서 최근 모로코 의사들의 상황이 나빠졌고, 역으로 선진국들의 구애는 더 커졌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렇게 의사들의 유출이 심해지면 자국 내 의료여건이 악화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모로코는 3만 명의 의사, 그리고 6만 명의 간호사 및 다른 보건의료 인력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1 보건의료인들만이 아니다. 건축설계사, 빅데이터 전문가, 개발자 등 고등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직종의 모로코인들이 조국을 등지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되는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발전국으로의 이주가 본인과 가족들에게 더 나은 조건을 제공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또한 1인당 GDP가 8,143달러로 프랑스의 1/5에 불과한 나라의 청년 인재가 느끼는 박탈감과 선망은 충분히 이해될 만한 것이다. 이들의 선택에는 가고자 하는 나라와의 지리적, 역사적 관계가 영향을 미치지만 인재를 끌어들이려는 유럽 및 북미의 이민정책도 한몫한다. 프랑스의 경우 체류증 발급을 보다 쉽게 하는 ‘프렌치 테크 비자’ 제도가 모로코,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 인재 유치를 가속화시켰다.

2. 인재를 빼앗기는 나라

‘관리직(cadre)’에 해당하는 이들을 자국에 붙잡아 둘 수 있는 능력을 측정하는 2022년 조사 ‘인적 자원 경쟁력(Global Talent Competitiveness)’의 결과는 ‘두뇌유출(brain drain)’ 현상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매년 시행되는 이 조사에서 모로코는 조사 대상 134개 국가 중 96위로 알제리(98위)와 함께 하위권에 머물렀다. 중동 국가들에 비해서도 낮은 순위라 프랑스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 지역의 두뇌유출 현상이 특히 심각하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 조사가 다룬 세부 항목 중 ‘두뇌유치(brain gain)’, 즉 외국으로부터 인재를 들여오는 정도를 묻는 항목에선 조사 대상 국가 133개 나라 중 최하위인 공동 130위를 기록했다. 자료 제공을 하지 않은 결과이기는 하지만 119위의 튀니지, 107위의 알제리와 함께 프랑스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 3국이 인재 유출 현상이 심각함을 보여줬다. 한국은 59위였다. 역으로 ‘두뇌유지(brain retention)’, 즉 인재를 자국에 묶어두는 정도를 묻는 항목에서 모로코는 84위를 기록해 113위의 튀니지나 117위의 알제리보다는 선전했다. 직전 2021년에는 95위였다. 참고로 한국은 이 항목에서 25위였다. 모로코는 이 조사의 전 항목 평균에서 133개국 중 96위였다.2

모로코의 인구는 약 3,700만으로, 이 나라 출신 5백만 명 이상이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 5천만 인구에 약 730만이 재외동포인 이 분야 최상위권인 한국과 유사한 비율이다. 그리고 전 세계적인 경향이지만 이제는 모로코인의 국제이주에서도 숙련노동자와 전문직 종사자들의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파리 근교의 르노나 푸조 자동차 공장에 고용된 고전적인 이주민 형상은 흐릿해지고 유학생, 의사, 기술자와 같은 보다 숙련도나 기술 수준이 높은 이들이 선배들을 대체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우수 외국인재, 일본에서는 고도인재로 지칭되는, 전문성을 갖춘 외국인력에 대한 수요는 꾸준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급 인력을 필요로 하는 산업구조와 그에 부응하는 인력을 공급하기 어려운 인구구조 간 괴리를 겪는 발전국의 사정 때문이다. 문제는 국가 간의 산업구조가 판이해 각국이 필요로 하는 인재가 상당히 달랐던 과거와 달리 현재의 세계는 저발전국이라도 첨단기술에 대한 수요가 적지 않아 자국에서도 IT나 AI 기술자들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중동이나 아프리카를 떠나는 전문인력이 잉여 노동력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러한 인력 교환은 상호보완적인 것이 아니다. 물론 대학이나 연구소, 관련 기업이 부족해 일자리를 찾기 힘들거나 임금이 낮은 측면이 있지만 자국 역시 의료 인력이 부족하고 과학기술 영역의 발전이 절실하다. 인재를 데려가는 강대국들이 이러한 현지 사정이나 해당 국가의 미래에 대해 생각할 리 없다.

두뇌유출의 긍정적인 면도 있다. 송금을 통해 출신 국가에 재정적으로 기여하며, 출신 국가의 인적 자원을 풍부하게 하고 선진 기술을 이전하는 역할을 한다. 양국 간의 인적 연결망을 형성하고 문화 교류의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유출’이라는 용어 자체가 그렇듯이 실제 현실은 부정적인 면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다루는 모로코의 경우에도 두뇌유출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가져오고 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 동안 8천 명의 모로코인 의사들이 프랑스로 떠났고 적지 않은 의사들이 캐나다, 독일 등을 선택했다. 의료 분야 하나만 해도 두뇌 유출은 모로코 GDP를 0.1~0.25% 낮추는 결과를 낳았다고 한다. 이는 과거 사우디아라비아, 독일 등지로의 이주가 당시 한국경제의 고성장에 기여했던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교포들의 송금이 주는 긍정적인 기능보다 인재 유출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훨씬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이다. 경제적인 면보다 그 영향이 더 명확하게 나타나는 것은 사회적인 측면이다. 회수되지 못하는 국가의 교육투자 비용, 재정수입 손실, 의료나 교육 분야 등에서의 인력 부족에 따른 손실 등 사회 전반에 큰 타격을 가져오고 있다.


3. 두뇌유출이라는 유령의 귀환

두뇌유출은 우리에게 익숙한 요인들이 낳은 현상이다. 경제위기와 발전의 실패, 그리고 이를 빌미로 강요된 국제금융기구의 구조조정, 그리고 이 구조조정이 다시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그 결과 임금과 구매력이 하락하고, 게다가 자국 통화의 가치가 하락하고 그래서 심한 인플레를 겪게 되고, 세계화로 인해 자국시장이 개방되면서 기존 산업과 일자리가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물론 두뇌유출의 문제는 이제 저발전국이나 개발도상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이 글에서 다루는 모로코에서 인재를 빼가는 프랑스조차 매년 수만 명의 고급 인력이 더 나은 조건을 찾아 나선다.

우리는 국제이주에 우호적인 시각에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현실은 보다 복잡하다. 두뇌유출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인재 영입, 인력 수급 등의 용어와 달리 인재 감소를 걱정하는 이민 송출국의 입장이 반영된 개념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거의 입에 올리지 않는다. 세계화와 개방화를 배경으로 시대착오적인 개념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점점 더 많은 나라들이 경제적, 정치·군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떠나는 이들을 응원하게 됐고, 이들의 이동은 용기 있는 선택이고 환영받아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현재 유럽 등 이민자들을 많이 받아들이는 국가가 펼치는 이민정책의 주된 경향 중 하나는 ‘유용한 이민’이다. 이 접근방식 역시 두뇌유출이라는 문제의식을 무디게 하는 데 일조했다. 쓰임새가 큰 이들을 찾고 역으로 사회에 부담이 되는 이들의 유입을 꺼리는 것은 납득할 수 있는 정책으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한국 등 세계 각지로 청년을 떠나보내는 중국 조선동포 사회의 붕괴에 대한 우려와 같이 경고음이 들리기도 했다. 꽤나 잘 사는 한국의 경우에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공학도들이 학업을 마친 후 귀환하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이같은 사례는 ‘유용한 이민’이라는 관념이 우리를 포함해 어떤 사회에는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민정책에는 ‘선택된 이민’이라는 용어도 사용된다. 이에 대비되는 개념은 ‘일반적인 이민’이다. 후자에선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국가의 필요가 아니라 이주민 자신의 필요에 의해 이동하는 것이고, 수용국은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이들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다. 미숙련 노동자나 결혼이민자의 이주도 해당 직종이나 선진국 가정의 수요에 따라 이뤄지는 ‘선택된’ 이민이다. 그리고 그 숫자도, 유입 과정도 이들을 선택한 나라의 철저한 관리를 받는다. 가족합류 이민이나 난민 정도가 보다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받아들이는 이민의 형태일 텐데 그래서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고 쉽게 받아주지 않는다. 어쨌든 일반 이민보다도 선택된 형태의 이민이 선진국들이 시행하는 이민정책의 기조가 된 지 오래됐고, 이주민을 받아들인 역사가 일천한 한국도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이 추세를 따르고 있다.

‘유출’이라는 일상에서 잘 쓰이지 않는 단어를 접하니 문화재 유출, 비밀 유출 등의 표현이 떠오른다.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선택보다 외부로부터 빼내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영어로도 두뇌를 ‘유출(drain)’한다는 것은 이러한 의미를 가진다. 제국주의 시대가 떠오른다. 쌀이나 광물자원부터 노예, 쿨리(선대제 계약노동자), 제국주의 전쟁에 동원됐던 용병에 이르기까지 물적, 인적 자원을 도적질한 역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때만큼 강제적이고 폭력적이지는 않지만 고국을 떠나게 만드는 현재 자본주의 체제의 모습을 생각하면 다르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현지에서 인재를 입도선매하는 강대국 기업들의 모습은 노예상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이 이뤄지는 공간이 아프리카일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아프리카에선 3세기 넘게 2천만 명 이상의 청년들이 노예로 유출됐다. 이로 인해 아프리카가 겪은 발전 동력의 상실은 전문인재의 유출로 신음하는 지금 모로코의 모습이기도 하다.

한국도 인구감소에 대한 대응책의 일환으로 국제이주민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으로의 이주를 원하는 이들의 사정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인력 수급을 위한 것인 만큼 이들에 대한 한국 사회의 수요가 이민정책의 가장 중요한 고려 요인일 것이다. 유학생이 학업을 마친 후 한국에 남아있게 하는 방안, 한국에서의 노동경험을 통해 숙련된 이주민에게 반영구적인 체류를 허용해 활용하는 방안, 아예 현행 외국인력 도입 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해 전문성을 갖춘 인력에게 유리한 조건을 제공함으로써 한국에 오게 하는 방안도 강구되고 있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미등록외국인의 수를 줄이고 농축산업 분야의 경우처럼 미숙련노동자들을 초단기적으로 활용한다거나 돌봄 분야와 같이 서비스노동자들을 낮은 임금을 주고 고용하는 등의 정반대의 경향이 존재한다. 한쪽에선 그때그때 쓰고 버리는 성격이 더 강해지는 것이다. 노동력이 필요해 도입했는데 온 것은 노동력만이 아니라 인간이었다는 말이 있다. 인간에게서 그 일부인 노동 능력을 떼어내어 그것만 수입하고 그것에 대해서만 보상을 해서는 안 된다. ‘상품’이 되어선 안 되는 인간 상품의 특성 때문이다. 노동력의 가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는, 즉 노동력과 노예 사이 어디쯤 되는, 산업연수생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한 적이 있는 이주민의 형태가 한국의 인재 영입정책 그늘에 존재하고 있다.

4. 당사자주의와 연대라는 대안

어떤 아쉬움도 없이 자신이 태어나 살고 있는 나라를 떠나는 사람은 없다. 오직 물질적인 조건에 좌우되는 그런 냉혹하고 계산적인 인간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신이 살던 곳에서 살 수 있다면 웬만하면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모든 인간에게 적용될 수 있다. 아무리 못사는 아프리카나 남아시아의 사람들도 어느 정도의 여건만 갖춰지면 고국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인간의 삶에는 경제적 요인 이외에도 중요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떠나는 것은 그럴만한 사정이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다른 나라로 가는 이들의 선택은 매우 무거운 결정이며 생존의 위협에 놓인 이들이 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다. 따라서 보다 좋은 조건에 있는 이들에 해당되는 두뇌유출 현상에 대해서도 국익 차원의 논의 못지않게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한다. 한국인들이 그들의 출신 국가의 국익이나 발전까지 사고하는 것은 매우 낯선 일일 테다. 유럽 국가들의 이민정책에 대한 비판 중 하나는 소위 ‘황금의 30년’ 시대에 존재했던 제3세계와의 연대라는 관점이 부재하다는 지적이다. 이제 우리도 이민문제를 논의할 때, 단순한 경제적 논리 또는 국익을 넘어 이주민들의 출신 국가와의 연대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우리는 점점 더 국경 없는 세상으로 가고 있다. 그래서 사람의 이동은 이 시대에 부합하는 현상으로 인정돼야 한다. 이동의 자유, 국가나 민족의 틀을 넘어서는 것은 이 시대의 가치이다. 다만 진보라고 볼 수 있는 이 과정이 야만의 모습을 띠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동의 자유가 인적 자원의 일방적이고 비가역적인 유출이 아니라 순환의 형태를 띠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선진국에 체류하면서 경험을 쌓고 다시 본국에 돌아와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다. 유학, 기술연수와 같은 용어들이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점점 더 귀환을 어렵게 하고 있다. 따라서 유출을 방지하는 보호장치와 함께 귀환을 용이하게 하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각주>
1) https://www.lopinion.ma/Fuite-des-cerveaux-Exode-des-futurs-medecins-a-l-etranger_a30675.html, 2023년 5월 21일 검색
2) Bruno Lanvin & Felipe Monteiro(Ed), The Global Talent Competitiveness Index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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