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교육민주화운동 20년사(22) <전국교사신문> 창간





지금 보고 있는 「교육희망」이 제490호다. 이 지령은 1987년 10월 1일 창간한 「전국교사신문」에서부터 헤아린 것이다. 며칠 전 창간 20주년 기념일을 맞이하여 역대 편집실장 황호영, 필자, 박성규, 김승만, 송영길, 정진후, 정은교 등과 현 편집실 기자들이 모여 조촐한 자축과 회고의 자리를 가졌다. 그동안 제호가 세 번, 편집실장이 열여섯 번 바뀌었다. 신문국장과 기자들도 여럿이 거쳐 갔다.



「전국교사신문」은 Y교협의 「교사신문」(86.8 창간~87.7, 7호로 종간)과 민교협의 「민족과 교육」(87.3창간~87.9, 7호로 종간)을 발전적으로 계승한 까닭에 전교협 중앙위원회의 결정으로 자연스럽게 전교협 창립 직후 창간되었다.



창간호는 ‘교육민주화를 향해 힘차게 전진하자’는 제하의 창간사에서 전교협의 당면 과제로 ‘6월 항쟁의 자주 민주 정신 계승’ ‘교육관계법 개정 서명운동과 교련탈퇴 운동 전개’,‘학교 교사회 조직 작업’, ‘입시교육이 아닌 새로운 교육 모색 실천’을 강조하고, 전교협이 ‘학생을 자주적, 주체적 인간으로 커가게 하고, 인간다운 교육환경을 조성하는데 앞장설 것’을 촉구했다.



초대 편집위원장을 지낸 황호영(현 전교조부위원장)의 회고담이다.

“창간호는 편집진도 갖추지 못하고 고광헌 선생(민교협 「교육과 실천」 편집인, 88년 한겨레신문 입사)과 둘이서 만들었다. 계룡산 동학산장에서 중앙위를 하고 꼭두새벽에 충남의 전 아무개 선생의 오토바이에 매달려 대전역까지 가서 급히 서울로 올라와 창간호 편집에 매달렸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서울 가는 기차가 끊겨 총알택시에 합승했는데, 도중에 기름이 떨어져 남자 3명이 내려 택시를 고개 마루까지 밀어 올려 주유소까지 굴러 갔던 어이없는 일도 있었다.”



“초기에는 친구(탁무권)의 인쇄소에서 찍었다. 컴퓨터로 사진 식자한 것을 출력해 오면 미리 로트링 펜으로 선을 그은(lay out) 편집 종이판에 풀과 가위로 ‘따 붙이는’ 방식이라 참 번거롭고 힘든 과정이었다. 걸핏하면 붙인 것이 떨어져 애를 먹었다. 월간 타블로이드판 8면 발행이라도 편집 날은 밤샘을 했다. 24시간 수업에 담임까지 하면서 신문을 만들었다.



수업 중에 판서를 해놓고 교실 벽에 기대어 졸기도 했다. 신문을 만드는 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1만부 가량 찍어 시·도 교협의 주문량을 일일이 헤아려서 (나중에는 대충 신문더미의 키를 재었다.) 포장하고 서울 서부역까지 싣고 가서 소화물로 부치는 것까지가 편집진의 일이었다.

당시 편집위원으로 임태경 이남재 이선엽 이성심 등이 같이 일한 기억이 난다. 이 때 벅찬 일을 감당하기 어려워 간사 2명을 월급 20만 원에 채용했다. 민교투 사건 해직교사 이장원(현 전교조 편집실장)과 서울교대 제적생 정명옥(현 서울성일초)이었다.



필력이 탁월한 이장원은 혼자서 기사의 2/3 이상을 써 내는 괴력을 보여 사람들을 놀래켰다. 황호영은 신문 발행의 책임자로서 격무에 시달리다 결국 폐결핵에 걸려 1년 만에 직책을 사임하고 학교도 2개월의 병가를 냈다.



이렇게 ‘사람 잡을’ 상황은 현직교사들로 편집진이 다소 보강되고 88년 5월에 태어난 「한겨레신문」(양평동 시절) 컴퓨터 편집기와 윤전기를 이용하면서 현저히 개선되었다. 필자가 편집장의 바통을 이어 15호부터 판형도 대판(4면)으로 바꾸었고, 16호부터는 월 2회 발행으로 발전했다. 무의미한 덩굴무늬가 있던 제호의 배경에는 홍선웅(미림여고 해직) 선생의 판화 ‘백두산 천지도’(교사와 학생들이 통일교육의 깃발을 들고 있음)를 깔았다. 이때부터 광고(주로 책)도 조금씩 실리기 시작했으나 거의 ‘돈이 안 되는’ 일이었다.



황호영의 회고가 계속된다. “매달 시·도 교사신문 편집책임자들과 회의를 하며 각 지역 사정을 교환하고 편집 방향을 논의했다. 한번은 <대구교사신문> 배창환 편집장이 전교협 신문 한 면에 ‘투쟁’이란 말이 열 번도 넘게 나왔다고 대중성 부족을 질타하던 기억이 난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전국교사신문」은 자주적인 교사운동의 매체로서 87년 6월 항쟁 이후 각 지역의 투쟁 열기를 교사 대중 속에 퍼뜨리는 큰 역할을 한 후 제21호(89년 6월 20일자)부터 「전교조신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김민곤·서울고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