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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일 서울시경은 서울 모든 중·고교를 불법 수색하고 학교 주변 검문검색을 실시했다. 학교마다 감시가 강화되는 가운데 ‘Y교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교장 교감의 일지에 기록된다. 전국적으로 Y교사들에 대한 교협 탈퇴 압박이 갈수록 심해졌다.
이런 분위기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도덕교사 조용진(신월중) 해임 사건이다. 그는 7월 9일 「진실이 왜곡되는 교육현장에 대한 나의 입장」제하의 성명서를 발표하여 부당한 탄압을 생생히 폭로했다. 교장 교감은 수업내용, 시험문제 등 일체를 문제 삼았다.
4·19에 강명희 학생의 시를 읽은 것, 시사문제를 다룬 것, 자유좌석제, 토론식 대화식 수업, 반장의 구령 인사 폐지, 교사의 용의복장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세인들의 입에 가장 널리 오르내린 것은 시험문제에 등장한 ‘도둑을 잡아가는 경찰관과 가짜 경찰관을 잡아가는 사복형사’ 그림(사진 참조)이었다. 이것은 1983년 출판되어 ‘낙양의 지가를 올린’『철학에세이』(조성오, 동녘, 당시 저자 익명)에 등장하는 삽화다. ‘겉모양과 달리 속뜻은 기본적으로 같음(현상과 본질의 상대적 독립 존재)를 깨우치’기 위해 출제한 것을 당국은 ‘민중봉기를 유도하는 반국가적인 의식화 교육’으로 몰아쳤다. 교육관료들의 무식함도 작용했으리라. 서울시교위가 도교의 황제방중술을 담은『소녀경』이라는 책을 중고생 필독서 목록에 담아 세인의 조롱거리가 되던 시절이었다.
조 교사는 이러한 상황을 7월 17일 민교협이 주최한 「민주교육탄압저지대회」(명동성당 사도회관)에서 낱낱이 폭로하여 400여 참석 교사들의 공분을 일으켰다. 조교사는 서울시교육감 최열곤과 토론을 해보자고 면담을 요청했으나 회피하고 해임의 칼을 휘둘렀다. 6월 30일 목포여상에서 사학민주화 투쟁으로 해임된 문희경 선생에 이은 대탄압의 서곡인 셈이었다. 단식농성에 들어간 조 교사가 8월 21일 서울 도덕 윤리 교사 1200명이 참석한 연수회(남산 국립극장)에 가서 「도덕·윤리 선생님께 알립니다」제하의 호소문을 뿌리자 700여 명의 교사가 연수를 거부하고 퇴장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관제연수에 대한 거부 정서도 결합되었다. 강원도 영어교사들도 8월 23일 ‘올림픽 접대용 영어 시험’을 거부하고 300여 명이 퇴장하였다. 이로 인해 장학사가 직위해제 되고 원영만 조경오 신승근 교사가 벽지 전보 등의 조치를 당한다.
신임교사 정영훈(서울 원당국)은 이러한 탄압을 일기 형식으로 생생히 기록하였다. 1학기 말 펴낸 학급문집 트집 잡기에서 시작한 교장 교감의 치졸한 탄압은 학생들의 이승만 대통령 묘소 참배 항의 발언을 문제 삼아 결국 그 해 12월 발령 8개월 만에 ‘교직부적합자’로 규정되어 교단에서 쫓겨난다.
탄압이 극심하던 충남에서도 해임 위협을 당하던 이순덕 교사(서면중)는 8월 26일「교육민주화를 염원하는 나의 양심선언」을 발표, 부당징계에 끝까지 맞서 싸울 것을 결의하였으나 직후에 말기암을 발견, 두 개의 전선에서 힘겹게 투쟁하던 중 87년 1월 3일 사망하여 동지들의 큰 슬픔이 되었다.
전남도교위는 부당징계에 항의하는 윤영규(나주중 감봉 1월, Y교협 회장) 김경옥(해남 마산중 감봉 1월) 주진평(해남 계곡중 감봉 3월) 교사를 8월 30일 각각 고흥군 백양중, 완도군 신지서중, 여천군 연암중으로 전격 전보하였다.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빌미로 경찰은 9월 2일 세 교사를 덜컥 구속해 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