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교사들은 불편하다. 떨떠름하다. 아예 없애거나 2월로 옮기자는 논란이 일고 있기는 하다.
원래 <스승의 날>은 청소년적십자단(RCY)이 1964년 ‘불우한 퇴직교사 또는 질병에 걸린 교사를 위로하자는 차원에서’ 정한 날이다. 1973년 유신정권이 유사기념일 통폐합 차원에서 없앴다가 82년 전두환 정권이 부활시킨 정치적 곡절이 있는 날이다.
이런 까닭에 1980년대 교사들 중에는 새로 <교사의 날>을 만들 생각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당시 독재 권력으로부터 ‘강요된 침묵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젊은 교사들을 지배한 정서는 ‘참담함’과 ‘부끄러움’이어서 아이들이 달아주는 꽃송이와 쳐다보는 맑은 시선이 바늘처럼 가슴을 찌른다고 느꼈다.
<교사의 날>을 구체적으로 추진한 것은 Y중등교협이었다. Y교협은 86년 1월 4일 대의원회의(의정부 다락원)에서 연차 주제로 ‘교육민주화’를 정하고, 정치·사회 민주화 요구의 열풍이 뜨겁던 상반기에 집단 「선언」을 하기로 한다. 바로 「교육민주화선언」이다. 그리고 발표일인 5월 10일을 아예 <교사의 날>로 하기로 했다.
「선언」 당일 교사 450여 명에 교장, 교감, 장학사, 형사까지 운집한 서울집회(종로2가 YMCA 강당)에서 개회사를 한 이수호(서울 Y교사회장, 신일고)는 전날 발생한 한 여고생의 한강 투신자살 기사를 인용하면서 수많은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교육현실에서 교사들이 바로 ‘살인자’라고 통절히 자책했다. <스승의 날> 그들의 친구들이 우리에게 달아 주는 꽃을 무슨 염치로 받겠느냐, 옆구리 찔러 절 받느니 교사들이 제 직분을 반성하며 참교육을 다짐하는 날을 정하자고 제안하여 우레 같은 박수를 받았다.
이 날 학교 사례발표를 맡은 이여옥(봉천중)은 ‘병가도 어려운데, 강사료도 본인이 물어야 한다는 교장의 망발’과 보강수당도 주지 않는 학교, 교사의 발언권도 없는 직원회의와 교사의 적극적인 교육활동도 제지당하는 실태를 고발하면서 <스승의 날> 학생들이 달아주는 꽃을 슬그머니 떼는 동료들의 심정을 전했다.
이 날 「선언」은 서울(367명), 중부(춘천-23명), 영남(부산-박수로 채택), 호남(광주-87명) 등 네 곳에서 이루어졌다. 서명자 명단이 공개되면 탄압이 들어올 것을 염려해서 비공개로 했다. (서울에서는 중도 탈취를 염려, 검도유단자 김성근(영동중)이 품속에 숨겨 나갔다.) 선언이 발표되자 최열곤 서울시교육감은 주동자들을 징계하겠다고 서슬 퍼렇게 나섰다가 「선언」에 우호적인 여론에 밀려 빼었던 칼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전국에서 이어진 교사 선언과 실천대회 등, 교육민주화운동의 열기가 확산되자 정권은 여름방학을 즈음하여 대대적인 탄압에 들어갔다. 조작 사건으로 7명이 구속, 민주교육실천으로 20여 명이 파면 해임 정직 감봉 견책 등 징계의 백화점을 차린 듯했다. 탄압국면은 87년 6월까지 이어졌다.
그 바람에 <교사의 날>은 실종되었다가 88년 다시 부활되었다. 전국교사협의회는 88년 5월 10일 제3회 <교사의 날>을 공식 선포하고 교육주간 여러 지역교협에서 기념행사, 퇴임평교사 공로패 증정, 강연회, 공청회, 교과서 모의재판, 청소년문제 심포지움, 사학정상화 토론회, 문화, 체육 등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했다.
「전국교사신문」사설은 그 의미를 이렇게 정리했다. “이 날은 이 땅의 슬픈 교육희극에 엑스트라로 전락한 우리 교사들이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할 날, 진정 교사 본연의 길을 가고 있는가 점검하는 날, 이탈된 궤도를 수정하는 날이다. 단결하는 날이다. 흩어진 교육동지들이 모여 뜻 세워 나누는 날이다. 학생과 함께, 겨레와 함께. 이 날은 민족의 교사로 스스로 자리 매겨 갈 길을 가로 막으며 갈라놓는 사악한 무리들과 싸우는 날, 겨레의 살림살이를 위해 뭉쳐 싸우는 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