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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중등교협 초대회장을 지낸 오장은 선생(신일고)의 증언이다.
“81년 2월 Y연맹 이창식 간사(현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장)를 통해 YMCA연맹 청소년사업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받아 강문규 연맹총무(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 등과 ‘학교교육과 청소년 대책을 협의하는 중등기독교사들의 모임’을 논의했어요. 일본Y연맹기독고교교사회를 모델로 했지요. 제가 이 간사, 백우현 선생(상명사대부여중)과 같이 그 단체의 10주년 행사에도 참석했답니다. 준비과정에 대구 이재원, 광주 고진형 선생을 만났고, 우리 학교 참한 신정식, 이수호 선생을 모셨지요. 제가 이 선생을 고생길로 이끈 셈이지요, 허허.”
창립 초기 조직의 실질 중심은 이창식과 교사 유상덕(서초중)이었다. 유신시대 도시산업선교회에서 노동운동을 하며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엄혹한 시기에 YMCA와 같은 합법공간에서 교사조직을 만드는 것도 운동적 의의가 있다는 데 의기투합했다. 제3세계와 달리 취학율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학교교육이 지닌 운동적 의미를 인식하고 교직에 나온 유상덕은 Y를 '우산'으로 여겼고, 교사 의사 약사 등 전문직 조직을 통해 Y의 개혁을 모색하던 이 간사는 교사운동의 ‘플랫폼’으로 Y를 활용하는 것을 양해했다.
그 해 8월 의정부 다락원에서 31명이 모여 주비위를 띄웠다. 거기서 3월 발령투쟁(제2화)을 이끌었던 송상헌은 유상덕의 소개로 사례발표를 하고 이후 핵심 활동가로 선다. 하반기 조직 작업을 거친 후, 82년 1월 5일 같은 장소에서 역사적인
Y교협은 83년부터 5공 정권의 눈엣가시가 되어 전국에서 많은 회원들이 구속, 파면, 해임, 정직, 감봉 등 갖은 징계를 당한다. 교육관료은 ‘Y교사’는 곧 문제교사로 보았다. 83년 <상록회사건>, 85년 <민중교육사건>, 86년 <교육민주화선언>과 사립교사투쟁 지원, 민주교육실천협의회 창립 등 거친 비바람 속에 YMCA의 ‘우산’도 별로 소용이 없었던 셈이다.
그러나 찢어진 우산 속에서도 주체역량은 꾸준히 성장했다. 투쟁의 밑바탕에는 치열한 연구와 교육선전 사업이 있었다. 연차 연구 주제는 83년 ‘역사와 교육’, 84년 ‘교육과 교육권’, 85년 ‘인간화 교육’, 86년 ‘교육민주화’로 이어졌다. 이러한 연구 성과와 활동내용을 담은 <회보>(나중에 <민주교육>으로 제호 변경)와 교육연구지인 <상록>을 발행, 조직과 교육사업의 발판으로 삼았다. 부산 <실천교육>, 광주 <全人>, 춘천 <교육풍토>도 지역 회지로 발간되었다.
86년 8월 2일에는 80년대 교사운동 최초의 전국적인 선전매체 <교사신문>을 발행했다. 20대 후반 청년 교사들의 치열하고 헌신적인 활동으로 82년 1월 광주에서 시작하여 5년 간 서울 평택 성남 인천 마산 목포 홍성 진주 춘천 부산 대전 거창 해남 여수 대구 안동 울산 충무 순천 전주 등 전국에 21개 지방 Y교사회가 조직되었다. 이는 87년 6월 항쟁 직후 전국교사협의회가 단기간 일거에 조직되는 토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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