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교육민주화운동 20년사④
윤영규와 ‘삼봉조합’

3월 31일은 2005년에 급서한 전교조 초대 위원장 윤영규 선생의 기일이다. 우리 조직이 안팎으로 괄시를 당하는 요즈음, 10여 년 전 회갑 기념으로 펴낸 자서전을 새삼 펼쳐보며 그 어른을 만난다. 그립다.







선생은 돌아가시기 3년 전 대학시절부터 40여 년 동안 4번 구속, 5번 해직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 좁디좁은 집에 보관하던 자료 13000여 점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기증했다. 한국신학대 재학 중 찼던 4·19혁명 시기 ‘대학생 수습원’ 완장부터 1994년 고 김남주 시인의 추도식에서 낭독한 추도사 필사본까지 온전히 간직한 정신 앞에 숙연함을 느낀다.



“기록이 역사의 바탕이 됨을 일찍이 깨달은 분”이라는 사료관의 평가를 보면서 함부로 보내는 하루하루가 부끄럽다. 역사를 의식하며 사는 사람은 갈지 자 걸음을 걷지 않는다. 선생이 살아 생전 종종 인용하던 “멀리 보고 가는 길, 왔다는 날 있으리 !”라는 말씀의 의미가 더욱 분명하게 다가온다. 자서전 제목도 <멀리 보고 가는 길>.



곡절 많은 우리 현대사는 망각과 기억의 전장이다.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거나 덮어버리려던 세력이 총칼로 사람들의 입과 눈을 막고 가두고 기록하는 손가락을 자르려 들 때, 기억의 편에 서서 역사투쟁에 나섰던 사람들은 아름다웠다.



유신독재가 마지막 독기를 뿜어대던 1977년 광주에서는 4·19교원노조 이목 선생을 본받아‘광주교사조합’ 결성을 추동하던 30대 초반의 교사들이 있었다. 그 중심은 대동고 역사교사 박석무(다산학자, 현 단국대 이사장), 양성우 박행삼 윤광장 정규철 김준태 송문재 임추섭 정해숙 박형민 정해직 등 28명이 시차를 두고 결사했는데 모두 의협심이 대단했다고 한다.



윤영규 선생은 기독교라고 처음에는 빼놓았다가 나중에 모셨고, 선생을 포함, 9명이 계를 했는데 모임을 할 때마다 꼭 삼봉(화투놀이)을 쳤다. 걸리면 잘리던 시절이라 알리바이를 마련하기 위한 ‘잔꾀’였다. ‘삼봉조합’이라는 별칭이 여기서 나왔다. 삼봉조합원 중 7명이 5·18항쟁 관련으로 구속되어 고초를 당했고 광주지역 교사운동의 터전을 닦았다.



임추섭의 증언이다.

“박석무랑 양성우는 일찍 운동에 문리가 트인 사람들이여. 4·19 때 구속되어서 조대부고에서 학다리고로 전학간 양성우는 말이여, 74년 동아일보 광고탄압 때 한 달 봉급을 봉투째로 보내고 나한테 술 산다는 약속을 어겼다고 미안해 혀. 몇 달 후 광주 중앙여고에서 강제사직을 당했을 때 빨갱이로 몰았던 구교대 선생 일곱을 몰아내라고 학생들의 데모가 날마다 있었는디, 중앙여고가 반유신 학교여. 그 당시 나는 이사장(박인천 금호그룹 회장) 집에서 끝까지 농성을 해 결국 다 쫓아내 버렸지, 교장까지. 박석무는 엠네스티 운동에도 참여했는 디, 그 무신 목사 한국지부장을 몰아냈어. 사이비여, 부정에 불륜이었어, 목사가. 영국 본부와 연결해서, 삼봉조합 선생 서너 명이랑 서울에 가서 한승헌 변호사를 한국지부장으로 세우는 역할을 했단 말이시. 영규 성은 보기는 겁이 많아 보여도 대인의 풍모를 지녔어. 겁이 없어. 큰 돈을 잘 써. 어려운 동료들 돕는 디 말이여. 박석무는 대동고 강사 할 쩌그, 작은 아버지 댁 작은 방에 살았어. 장마에 똥물이 넘치던 방이여. 근디, 아는 금은방 사장 족보를 번역해주고 30만 원이 생겼는디 20만 원을 우리 운영비로 쓰라 나를 주고 사모님은 10만원만 갖다 줘. 81년 Y교협 만들 때, 서울에서 유상덕이 와서 나랑 영규 성 집에 갔지. 그 어른이 거기서 맘먹고 교사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선 거여.”



필자의 추억 하나. 87년 6월 항쟁 얼마 후 나와 황호영(현 부위원장)이 금남로 한 다방에서 선생을 만나 새 교사 조직의 지도중심이 되어 주십사 청을 드렸다. 김대중선생내광환영준비위원회집행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무전기로 상황을 통제하고 있었다. 박석무 등이 88년 총선을 향해 뛰고 있을 때다. 선생은 우리의 간곡한 청을 물리치지 않고 ‘따 놓은 당상’ 국회의원 감투를 버리고 고난의 십자가를 선택하셨다. 어린이를 위한 선생의 전기『감옥에 간 선생님』이 나왔다니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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