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분회결성으로 학교단위에서 투쟁전선이 격화되고

교육민주화운동 20년사 <37>조직 건설기에 나타난 혼선과 오류

결성대회 직후 윤영규 위원장이 피신한 가운데 중앙지도부는 민주당사(마포구 공덕 로타리 소재) 점거·단식농성 전술을 채택한다.



정권의 총체적 탄압에 자력으로 대처할 조직적 채비가 안 되어 있는 상황에서 여소야대 국면의 정치권에 기대어 여론을 유리하게 환기하는 한편, 향후 투쟁 대책 수립을 위한 시간과 공간 확보가 필요했던 까닭이다.







고육지책이었다. 윤 위원장은 이 전술에 반대했다. 투쟁 경험이 많은 윤 위원장은 운동진영이 흔히 택하는 단식농성투쟁의 허전한 결말을 잘 알고 있었다. 더욱이 구속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학교에서 수업을 하다가 당당히 잡혀가겠다는 절절한 심정을 피력했다. 그것이 여론 환기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도 있었다. 일부 젊은 실무진들은 위원장을 압박했다. 해직과 구속, 그리고 광주항쟁에서 사선을 넘기도 한 윤위원장을 ‘얼굴 마담’ 정도로 보는 시각이 노출되기도 했다.



윤 위원장은 단농 전술을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지도력을 확보했다. 농성해제 결정권을 손에 쥔 것이다. 농성 돌입 기자회견에서 지도부는 지부 지회 분회 결성 방침을 발표하고 당국에는 ◇연행 구속교사 석방 ◇교직원 노동3권 보장 ◇정원식 문교부장관 퇴진을 요구했다.



6월 5일까지 8일간 지속된 이 투쟁에는 본부 집행부와 수배령이 떨어진 지부준비위원장 등 27명이 참여했다. 전교조가 당사를 점거하자 민주당 김영삼 총재는 30일 기자회견에서 “단체행동권을 뺀 교원의 노동2권 보장 법제화, 전교조에 대한 형사적 해결 방법 반대” 입장을 밝혀 농성단에 힘을 실었다.



6월 1일 본부는 노동부에 노조설립신고를 했으나 이틀 후 우편으로 되돌아 와 험난한 앞날을 예견하게 하였다. 농성을 해제한 주요 지도부는 몸을 회복하기도 전에 병원에서 또는 지역에서 구속 수감된다.



한편 전국 15개 지부 준비위와 160개 지회준비위가 농성체제를 구축한 가운데 지도부의 지침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조합원들은 분회 결성에 돌입한다. 강원 홍천 명덕국교(분회장 이혁종)와 광주 대성여고(조상희)에서 5월30일 최초로 분회를 결성했고 광주 송원학원연합(김성채). 광주 경신여중고(전정), 서울 유성전공(최성영), 구로고(김승만), 광주 동아여중고(윤한조), 전북 영생고(이희성), 군산 제일고(최강주), 달성 동국고(정희철), 포항 세명고(오하수), 전남 여수 구봉중(정장수)으로 이어졌다.



당시 조직방침은 본부-지부-지회-분회를 위에서 아래로 순차적으로 건설해 나가는 것이었다. 전선을 예각화하여 소수 지도부가 탄압을 온몸으로 안고 나가면서 국민 여론의 지지와 대중의 분노를 모아 단위학교 조직을 건설한다는 그림이 있었다. 그러나 비상한 투쟁 상황은 명료한 계획 수립과 체계적인 지침 공유를 어렵게 했다. 그 결과 지부 지회 결성을 전후하여 6월28일까지 우후죽순처럼 전국에서 495개나 분회가 결성되었다. 투쟁전선은 급격하게 학교단위로 내려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분회결성을 저지하라는 정권의 지침에 따라 분회 결성을 막기 위해 나선 교장, 교감의 작태는 다양했다. 노골적으로 분회결성식장에 드러눕거나(구로고, 영등포고) 식장에 난입하여 분회원들을 폭행하고(서울 영림중), 학부모를 동원하여 조합원의 수업을 방해하거나(서울 대림여중), 교사 파면을 교육청에 요구하기도 했으며(서울 난곡중), 심지어 휴교조치를 한 경우(명덕국)도 있었다.



학부모들에게 술을 먹여 전교조 교사들을 공격하게 하거나(강원 동해 안흥고, 경북 영일 비학국, 의성 점곡중) ‘교조 결성 단호 배격’이라고 쓴 대자보를 목에 걸고 애처롭게(?) 시위를 하는 교장(영등포여고), 분회 결성 축하 떡을 받고 실신한 교장(서울 고척중)도 있었다. 교장들 중에는 아예 같이 근무하던 교사들을 경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전국교사신문> 마지막 호(6월5일자)는 1면 머리에 “학교마다 분회! 분회! 분회!”라는 제목을 뽑아 분회 결성을 독려했다. 전대미문의 탄압 속에 주요 지도부가 구속된 상황에서 나타난 이러한 혼선은 결과적으로 조직의 토대를 위기에 빠트린 오류(전술적 좌편향)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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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농성 , 윤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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