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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바빴던 3월 초에 아이들에게서 받은 글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난 집에서 엄마다.’, ‘아버지께서 한 달에 두 번 오신다.’
작년에 담임을 맡으셨던 선생님께 물어 보니 형편이 어려운 듯 했다.
어머니가 안 계시고 근래 들어서 아버지께서 돈벌이를 위해 타지에 나가 계시는 듯 했다.
토요일에 가정방문을 가기 전에 황사를 핑계 삼아 함께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서 이야기를 캐물었지만 별다른 말이 없었다.
집에 들어서면서 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방 안 가득히 더케더케 쌓인 먼지와 거미줄, 지저분한 위생환경, 난방도 안 되는 컴컴한 방….
그 곳에서 6학년과 4학년인 두 형제가 겨울을 났단다. 아이에게 놀란 모습을 안 들키려고 얼른 “방이 이게 뭐냐, 청소 좀 하지” 타박하듯 둘러대며 같이 청소를 했다.
빨래를 시켜놓고는 집에 와서 반찬거리를 챙기고 마트에 가서 필요한 것 몇 가지를 샀다.
그날 밤 아내에게 물었다. “내가 그동안 너무 편하게 선생했나?”
이야기만 들었던 일을 교직 8년차인 지금 경험하고 있다. 다음날은 아내와 함께 갔는데, 아이의 얼굴에 불편해 하는 것이 보였다.
막막했다. 어찌해야하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고 해야 하는 건 뭔지, 이틀정도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내와 고민을 나누고, 함께 근무하는 조합원선생님 몇 분과 의논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가닥을 잡아갔다.
동사무소, 시청에 가서 아이들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있는지 알아보았지만 별 소득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 아이들은 식료품 쿠폰 몇 장 외에는 받는 혜택이 없었다.
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다음주에 오신다고 했다. 일요일 저녁 찬거리 몇 가지를 들고 갔더니 아이의 아버지가 계셨다. 아버지께 생활보호대상자 신청을 꼭 하시라고 부탁드렸다. 얼마 되지 않는 빚 때문에 신용불량자로 내몰린 사정이 안타까웠다.
며칠 전 그 집으로 세탁기와 밥솥이 배달되었다. 같이 근무하는 선생님께서 어디서 구했다기에 아이의 아버지께 양해를 구하고 보내드렸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선생님께서 사서 보내셨단다. 날 부끄럽게 만든 그 선생님은 내가 타박만 하던 작년 분회장님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