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출신 공모 교장이 지난 해 9월 취임한 충남 홍성군에 있는 홍동중학교. 이 학교는 전체 교사 11명 가운데 10명이 전교조 소속 교사다. ‘진로, 인성, 생태, 학력이 조화로운 푸른 꿈 교육.’ 올해 이 학교가 내세운 교육목표다. 윤근혁기자 |
‘속 좁은 얘기’로 한 중학교 방문기를 시작해보자.
“한두 개 공립학교에 교장, 교사들을 노조원들만으로 배치해야 한다. 그리고 희망 학부모만 자식을 교원노조원들에게 배우도록 해야 한다.”
2001년 11월 29일, 사립학교법 개정 움직임으로 화가 잔뜩 난 조용기 당시 사학법인협의회 회장이 이 단체 총회에서 한 말이다. 그의 속마음은 <조선일보> 누리집에서 쉽사리 볼 수 있는 다음과 같은 류의 댓글과 비슷했을 것이다.
“전교조, 자기들끼리 학교 만들어라. 그러면 금방 망할 것이다.”
조 회장의 발언이 있은 지 7년. 전교조 소속 교원들이 주도하는 학교들이 줄줄이 생겨나고 있다. 대표격인 학교가 바로 경기 광주시에 있는 남한산초등학교다. 이 학교는 일부 세력의 희망(?)과는 달리, 정부와 보수신문도 전국 학교개혁의 모범으로 인정하는 곳이 됐다.
다음은 전교조 비판기사로만 보면 <조선일보>에 뒤쳐지지 않는 <동아일보>가 지난 해 6월 5일치에 쓴 기사다. 제목은 ‘희망이 싹트는 교실, 남한산초등학교’였다.
“안순억 교무부장과 뜻있는 교사들이 의기투합해 남한산초교로 옮겨왔다. 이때부터 ‘작은 학교’의 교육혁명이 시작됐다.”
물론 안 교사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교사가 전교조 소속이지만 이 신문은 이를 기사에 담지 않았다. 남한산초의 성공을 발판 삼아 작은학교교육연대라는 단체로 묶인 부산 금성초교, 경북 상주남부초교, 경기 계수초교, 충남 거산초교, 전북 삼우초교. 이 학교 상당수는 전교조 교사들의 힘과 땀이 베인 곳이다.
홍동중에는 교장과 교사‘울타리’가 없다
전교조 출신 공모 교장이 지난 해 9월 취임한 충남 홍성군에 있는 홍동중학교. 이 학교는 전체 교사 11명 가운데 10명이 전교조 소속 교사다.
지난 27일 오후 2시 30분, 울타리가 없는 이 학교에 들어섰다. 황호영 부위원장 등 전교조 본부 임원 3명과 함께였다. 뒤에서는 늘푸른 소나무숲이 감싸주고 앞에서는 너른 들판이 눈길을 확 트이게 했다.
‘진로, 인성, 생태, 학력이 조화로운 푸른 꿈 교육.’ 올해 이 학교가 내세운 교육목표다.
이 학교 책임자는 ‘책가방없는 날’ 전도사로 교육계에 알려진 이정로 교장(55)이다.
이 교장은 부임 직후, 다음과 같은 인사말을 학교 누리집에 올렸다.
“학생은 공부하는 것이 즐겁고 교사는 가르치는 일이 행복하며 학부모와 지역사회는 참여하는 것이 보람있는 농어촌 중학교를 만들고자 합니다.”
이런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 교장이 먼저 찾은 곳은 교실이었다. 그는 지난 해 일주일에 두 시간씩 1학년 두 개반을 돌며 직접 가르쳤다. 과목은 ‘진로와 직업’이었다. 올해 4월부터는 학부모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3학년 학생들에게도 같은 과목을 가르칠 예정이다.
학생 예닐곱명에게 물어봤다. “새로 오신 이정로 교장선생님 수업 잘 하시니?”하고. 돌아온 대답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조언을 많이 하시는 분이에요.”, “친절하고 재미있어요.”, “무섭지가 않아요.”
대개의 교장과 교감 사회에서 무언의 약속은 ‘수업 하지 않기’다. 이는 어느새 불문율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 교장은 “학생들은 수업을 하지 않는 사람을 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잘라말했다. “교단에서 학생 가르치는 일을 놓지 않아야 교장 일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직접 수업하는 교장 “학생들은 수업 안하면 선생아니라고 생각”
이날 오후 4시 20분 학교 1층 왼편에 있는 도서관에 조대성 교감, 민병성 교무부장을 비롯하여 교사들이 모였다. 학교교육과정운영계획을 최종 결정하기 위해서다.
이 교장이 제안을 하면 교사들이 반대 의견을 내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서로 의견이 다를 경우 논의를 집중한 뒤, 합의점을 찾았다. 지시와 순종, 아니면 반항이 연출되는 여느 학교의 교무회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지난 해 12월 말. 이 학교 교원 전체는 서울교육문화회관에 모인 바 있다. 학교교육과정을 평가하고 2008년 계획을 구상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날 저녁 8시에 시작한 회의가 다음날 새벽 1시 30분에나 끝났다고 한다. 이어 아침 5시 30분까지 술자리를 한 뒤, 오전에는 뮤지컬을 함께 봤다. 정말로 힘든 일정을 소화한 셈이다.
이런 토론 과정을 거쳐 나온 것이 재량활동을 활용한 특성화 교과운영과 같은 것들이다. 일주일에 두시간씩 정규 수업시간에 1학년은 진로교육, 2학년은 생태체험, 3학년은 인성교육을 실시하기로 했다.
전체 학생이 참여해 체험학습을 벌이는 ‘잘먹고 잘살기’, ‘통일 이후 우리의 자세’, ‘전통 문화 속의 과학’ 등도 빼놓을 수 없는 통합교과 프로그램이다.
도서관도 학생들을 위해 오후 6시까지 문을 열어놓기로 했다. ‘1인 2특기 기르기’ 방과후 교실도 일주일에 4시간씩 마련하고 있다. 사물놀이, 기타, 합창, 컴퓨터, 영어회화 등을 가르치지만 학생들에겐 모두 공짜다. 한 기업의 지원을 끌어온 덕택이다.
오후 5시 40분, 학교 운동장에서는 공 차는 소리가 ‘펑펑‘ 났다. 주로 농민인 학부모와 농민의 자식인 학생이 편을 갈라 축구시합을 하고 있는 탓이다. 이 교장이 구상한 ‘학부모 참여’가 열매를 맺고 있는 움직임이었다.
이 학교 박신자 교사는 “공모제로 교장 선생님이 새로 오신 뒤 학교 일이 더 많아지긴 했다”면서도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을 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을 모든 교사들이 다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학교보다 수업을 더 해야 하고, 토론을 하느라 힘을 빼야 하고, 도서관 업무를 보느라 퇴근 시간이 늦어도 이 학교 교사들은 모두 동의하는 분위기다.
왜 그럴까. 교사들이 뜻을 모아 ‘존경스런 선배 평교사’를 ‘교장’으로 모셨기 때문이다. 정부가 내려꽂는 이른바 ‘낙하산 교장’이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교사들 뜻모아 교장 세우니 이렇게 잘 되는데...
이날 이 학교를 둘러본 황호영 전교조 부위원장은 “교사들이 결의해서 교장을 세우면 새학교 만들기는 구성원의 동의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룰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취재에 나선 기자는 나 말고도 한 명 더 있었다. 한 중앙일간지 교육팀장을 맡고 있는 기자다. 그는 이 학교를 취재한 뒤 다음처럼 소감을 말했다.
“훌륭한 교사라는 소리만 듣고 몇년 째 전국 학교를 찾아가 취재하는 일이 많았어요. 그런데 알고보니 열에 아홉은 전교조 교사인거에요. 전교조가 대안없이 투쟁만하는 단체로 인식되는 게 정말로 안타깝습니다.”


전교조 출신 공모 교장이 지난 해 9월 취임한 충남 홍성군에 있는 홍동중학교. 이 학교는 전체 교사 11명 가운데 10명이 전교조 소속 교사다. ‘진로, 인성, 생태, 학력이 조화로운 푸른 꿈 교육.’ 올해 이 학교가 내세운 교육목표다. 윤근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