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연대-상층 협상이 아니라 전국적인 반신자유주의 대중투쟁전선을 구축하자
민주노총 집행부는 정치적인 환경변화(여소야대, 정권교체)를 통해 민주노조운동의 전성기를 맞이하겠다고 한다. 민주노총은 내년 노조법 전면개정을 위한 정치 총파업을 결정했지만, 구체적인 대중투쟁 계획은 세우지 않고 야당과의 정치협상, 야권연대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2011년 민주노총은 수많은 대중 집회를 개최했지만 조합원을 주체화시키고 투쟁동력을 형성하기 위한 구상 없이 1회성 동원 집회만을 지속했다. 잦은 동원에도 불구하고 집회판은 언제나 야당 정치인들의 연설회장이 되기 일쑤였다. 반MB 반한나라당 야권연대를 통한 상층 협상에만 주력했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의 단결과 투쟁이 아닌 반MB 반한나라당 야권연대를 제1의 과제로 삼고 진행한 민주당과의 정책협의는 노동악법 개정 및 비정규직 문제해결, 한미FTA 비준저지 투쟁 등 매 현안에서 원칙 없는 양보와 후퇴를 반복했다. 형식적으로 합의한 내용조차 지켜지지 않았다. 민주노총이 자체의 투쟁동력과 진보민중진영의 역량에 근거하여 투쟁을 이끌지 못하면 정치적 계산법에 따라 언제라도 소외될 수 있다. 특히나 한국노총이 민주통합당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한국노총을 내세워 노동계를 분할하고 민주노총을 고립시킬 수 있다.
우리는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정권과 자본의 폭압적 탄압을 뚫고 전노협을 건설했던 당당한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또 1996~1997년 노동법 개악에 맞선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을 기억해야 한다. 1996~1997년 당시 노동자들은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국민회의 국회의원 1백 명이 막지 못한 김영삼 정부의 노동법과 안기부법 날치기를 철회시켰다. 2012년 총선, 대선투쟁에서 가장 우선적인 정치적 목표는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대중투쟁을 통해 노동자 민중운동, 진보운동의 단결과 연대를 확대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무원칙한 야권연대’ 선거방침으로 현장 조합원들을 신자유주의세력인 민주통합당-주류 시민운동의 들러리로 동원한다면 투쟁은 사라지고 좀 더 영향력 있는 정당에 대한 로비와 상층 협상에 의존하는 경향이 늘어날 것이다. 현재 선언에 그치고 있는 2012년 총파업 투쟁을 실질적으로 조직하기 위해 상반기부터 구체적인 현장, 지역의 조직화 계획과 투쟁계획이 촘촘히 설계되어야 한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을 저버린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계획은 철회되어야 한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진보정당이 위기라며 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의 통합을 묵인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의 지지율은 12월 5일 출범 후 10% 넘게 올랐다가 연말 여론조사에선 1~3%대, 최근 신년 여론조사에서는 4.5%를 보였다. 반면 민주통합당(지지율 33%)은 통합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지지율이 연속 2주 한나라당(30.6%)에 앞섰다. 민주노동당은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통해 높은 지지율을 확보하고 민주(통합)당과의 반MB 야권연대를 통해 원내 교섭단체 수준의 국회의원을 배출하겠다고 했으나, 통합진보당은 존재감마저 상실하고 있다.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으로 진보정당이 자신의 정체성을 약화시킬수록 대중적인 차원에서 민주통합당과의 차별점이 없어지고 현실적으로 영향력이 큰 민주통합당의 지지율만 높여줄 것이다. 결과적으로 민주노총 집행부와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의도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보수정당(한나라당)과 자유주의 정당으로, 양당 체계가 굳어지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2012년 1월 13일 통합진보당이 출범과 함께 밝힌 5대 비전은 ①나라의 주권 확립 ②복지국가 건설 ③한반도 평화와 통일 ④생태주의 사회 지향 ⑤한국정치의 변혁이다. 5대 비전만 보면 민주통합당과의 뚜렷한 차별성이 없다. 민주노동당이 당내 지분 55%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지향은 5대 비전에 없다. 뿐만 아니라 당명에서도 ‘노동’이라는 단어가 사라져 버렸다. 왜 없냐는 질문에 통합진보당은 5대 비전 중 두 번째 ‘복지국가 건설’ 속에 ‘일하는 사람의 권리, 노동자의 권리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가겠습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노동을 복지의 하위 개념으로 인식하고,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노동정책을 생각하는 것은 ‘노동 유연화(비정규직 확대)를 추진하면서 복지정책으로 보완하겠다’는 신자유주의 정책과 다르지 않다.
최근 민주노총 내부에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여부를 두고 첨예한 갈등과 논란이 있다. 그러나 진보정당 통합 사업이 본격화됐던 2011년 내내 상층 차원의 논의만 잠시 있었을 뿐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토론과 의견수렴과정은 없었다. 잇따른 문제제기에 전조직적 토론을 진행하기로 하였으나 2012년 12월 28일 공문을 발송하여 한 달 만(연말 연초, 설 연휴 등 포함)에 지역별 토론결과를 보고서로 취합하기로 해 현장의 다양한 의견과 문제제기가 충분히 수렴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민주노총 내부를 갈등과 분열로 내몰 수 있는 중대한 사안임에도 대의원대회 안건통과를 위한 형식적 토론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노총의 정치방침 결정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전략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2000년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결정하기까지도 3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조직적 총의를 모으지 못하고 일방의 의사를 관철한다면 조직적 힘이 모아질리 없다. 과거 민주노동당에 대한 정치방침을 결정할 때 일부 이견이 존재했지만 ‘만장일치’를 이끌어 냈던 이유도 조직적 힘을 모으기 위한 것이었다.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은 “정치방침으로 민주노총이 분열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이란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집행부는 “민주노총이 분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관철하려고만 한다. 이것은 민주노총의 단결을 위한 길이 아니라 특정 정파의 패권일 뿐이다. 이는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의 무기인 민주노총마저 갈등과 분열로 몰아넣을 것이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예컨대 지난 1999년 8월 민주노총 15차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한 정치방침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부르주아 보수정당이 아닌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의 대의에 입각하여 활동하는 제 정치조직에 민주노총 조직원이 참여하여 정치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민주노총은 제 정치조직과의 관계에서 대중조직 고유의 상대적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제 정치조직과 연대, 지지, 지원을 강화하되 구체적인 내용은 조직의 결정에 의한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가 아니라 진보적이고 계급적인 노동자 정치활동을 보장하는 방침을 다시 수립해야 한다. 향후 민주노총의 대중적 투쟁력을 만들면서, 실패한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을 근본적으로 평가하고 새롭게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전략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민주노조 운동의 정체성을 무너뜨릴 국가보조금 확대
이번 대의원대회에는 “건물(사무실, 교육연수원, 복지관, 상담소), 토지 등의 부동산 및 그 유지에 따른 비용을 받을 수 있다.(민주노총 2001년 22차 대대 결정 사항)”는 기존의 민주노총 방침에 추가하여 “미조직 비정규직 사업에 한해 사용할 수 있다”는 국가 재정 활용에 대한 민주노총 방침 안건이 상정된다.
국가 보조금 수령 문제는 정권과 자본의 탄압에 맞서 노동해방과 평등사회 건설을 위해 투쟁하는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에서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국고보조금을 받아야 한다는 측의 입장은 단순 명료하다. 재정은 없는데 미조직 비정규직 사업을 해야 하니 국고보조 받자, 국민 세금이기 때문에 받는 것이 문제될 것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첫째, 노동조합의 재정적, 정치적 자주성의 중요성은 오랜 민주노조운동의 투쟁 역사를 통해 확인되어 왔다. 정권과 자본은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강력한 탄압을 펼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조합 간부에 대한 개별적 매수나 노조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매개로 회유책을 펴기도 했다.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굴지의 대공장 노동조합이 무력화된 배경에는 자금력을 이용한 자본의 매수가 광범하게 이루어졌다. 임금 투쟁, 단협 투쟁의 결과로 전체 노동자에게 지불하는 비용에 비해 일부 간부를 매수하는 비용은 수천, 수억을 준다하더라도 자본에는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2005년 이수호 집행부 당시 강승규 수석부위원장 비리 사건은, 노조 간부가 열악한 택시조합원의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투쟁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억제하면서, 그 대가로 사업자들에게 이득을 취한 사건이었다. 이는 민주노총조차 자본의 매수전략에 안전한 곳이 아님을 다시금 확인시켜 준 사건이다. ‘국민 세금이기 때문에 받는 것이 문제될 것 없다’는 논리가 허용될 경우, 인건비와 일반사업비 등 모든 영역이 허물어지며 사실상 ‘한국노총 어용화의 전철’을 밟게 될 공산이 커질 수밖에 없다. ▲둘째, 보다 원칙적인 차원에서 볼 때,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통해 잉여가치를 생산하고, 잉여가치에 대한 관리 처분권을 자본이 독점하고 그 일부를 국가가 재분배하는 것인데, 민주노조 운동이 사회변혁을 통해 잉여가치 전체에 대한 관리처분권을 가지려 하지 않고 쥐꼬리만한 재정에 목을 매는 행태는 운동의 원칙과 전략 차원에서도 동의하기 어렵다. ▲셋째, 민주노총의 핵심 사업인 미조직 비정규 사업을 국가 재정에 의존한다는 것은 해당 사업을 국가(지자체)에 보고해야 할 의무가 발생한다는 형식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 상황에 따라 미조직 비정규 사업 자체가 좌초될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실질적 차원에서도 큰 문제가 된다. 정부나 지자체 재정을 지원받아 진행하는 미조직 비정규 사업은 자본가와 정부 및 지자체의 간섭으로 사업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고, 있다 하더라도 그 사업방향은 민주적이고 전투적인 민주노조 운동은 아닐 것이다. 민주노총에서 그간 미조직-비정규 사업을 가로막았던 핵심 문제는 ‘재정’이 아니라 조직의 의지와 조합원들의 충분한 합의를 조직하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국가재정을 받으면 비정규사업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인식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넷째, 정부나 지자체 재정을 통한 사업은 관료적인 조합간부만을 양산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업 성과는 별로 없고, 그 사업방향이 모호한 채 보조금이 주로 관련 간부의 임금으로 지불될 때, 그 간부의 행태는 불을 보듯 뻔하다. 한국노총 노조간부와 비슷하게 될 것이다. 민주노총이 정부나 지자체 보조금을 더 받아내자는 발상을 하게 된 배경에는 한국노총과의 조직경쟁도 작용한 듯한데, 한국노총과의 조직경쟁이 노조운동의 발전으로 귀결되지 않고 노조관료 숫자 키우기 경쟁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다섯째, 지금은 “공공성과 사회성에 비추어 보더라도 국가재정을 활용하여 진행하는 것이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는 미조직 비정규 사업비에 한한다고 하나 그 범위가 시간이 지나면서 확대되지 말란 법이 없어 보인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충분한 안전장치를 도입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민주노총의 자주성을 심각히 위배했다고 판단될 시’ 등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중집의 사전승인 절차나 집행심의 절차 역시 형식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2001년 대의원대회 결정의 범위를 지금 허물고 있는 것으로도 충분히 증명되고 있다. 이렇게 정부나 지자체 재정 의존도를 높여간다면 앞으로는 더 이상 자주성을 얘기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될 우려가 크다. ▲마지막으로, 현재 민주노총은 2010년 타임오프제 도입과 2011년 복수노조 시행의 효과로 어용노조 설립, 노조 탄압, 중견규모 노조들의 이탈 등으로 의무금 납부비율도 현저히 낮아진 상태다. 그 결과 집행예산이 부족하고, 각종 소송비나 일부 임원 및 사무총국 활동가들에게 임금이 체불되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런 어려운 상황을 조합원들과 공유하고 현장에서부터 민주노총의 자주적 재정확보를 결의하도록 계획을 마련하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국가에 손을 벌려 미조직 비정규직 사업과 같은 핵심 사업을 추진한다는 발상은 민주노조 운동의 상식과 원칙에서 어긋나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단결과 혁신, 투쟁력의 강화가 현 시기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지금의 정세를 정확히 직시해야 한다. 민주노총 집행부와 통합진보당 지도부는 민주통합당으로의 정권교체를 진보적 정권교체(진보집권)로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 몇몇 진보인사들이 들어갔다면, 신자유주의 정책의 강력한 집행자였던 이들 정부가 진보적 정권이 될 수 있었다는 허황된 주장과도 같다. 우리는 민주통합당과의 연합을 통한 집권을 ‘진보적 정권교체’로 인정할 수 없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당선 직후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핵심 요직을 선뜻 통합진보당에 내어줄 가능성도 낮다. 설사 그렇게 정권이 교체되어 통합진보당 출신이 장관 한 두 자리를 한다고 해도 득보다는 실이 크다. 다음 정권에서도 유럽 재정위기를 필두로 세계경제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수출을 중심으로 하는 재벌 기업들은 생산 감소를 이유로 노동자들을 구조조정할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거부할 생각이 없는 집권세력은 현행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터져 나오는 대중의 불만을 막을 것이다. 결국 통합진보당은 소수 세력으로서 집권세력 내부에서 권한은 거의 없지만, 민주통합당-주류 시민운동의 반노동자적 정책의 책임은 함께 져야 할 것이다. 나아가 경제위기 하에 체제유지를 위해 노동자 투쟁을 탄압할 수도 있다. 민주통합당 당선의 들러리로 전락한 민주노총은 노동자민중운동의 분열과 갈등만 키우고 결국은 민주통합당에게 팽 당하거나 노동자 민중운동의 적이 될 수도 있다. 민주통합당과의 공동정부 수립이라는 불투명한 미래에 기대하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우선 정권을 바꾸고 보자”는 얘기는 “이명박, 한나라당 체제 보다는 낫지 않겠냐?”는 막연한 기대일 뿐이다. 설사 민주통합당의 집권이 한나라당의 재집권보다 상대적으로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한다손 치더라도 민주통합당의 인사들 자체가 한미FTA 체결과 비정규직 양산법을 만든 당사자들이고, 기업들의 정치후원을 받아 활동하는 정당인들이다. 선거 때마다 ‘앞에서는 친서민, 뒤에서는 친재벌’하는 신자유주의 정당의 당선을 위해 민주노총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을 저버릴 수는 없다. 말뿐이 아니라 실제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노동자 민중의 힘을 길러야 하고,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계급적 원칙, 변혁적 원칙이 밑바탕 되어야 한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특정 정파와 특정 노선의 대변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한국사회 변혁의 유력한 무기인 민주노총을 갈등과 분열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현재 그 어떤 정치방침보다도 민주노총의 단결과 혁신, 투쟁력의 강화가 현 시기 가장 중요한 원칙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