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의 민주대연합 제안과 12월 4일 시국회의
12월 4일 민생민주국민회의(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사회당이 참가하여 ‘경제 민생위기 극복을 위한 정당 시민사회단체 각계인사 연석회의’(이하 시국회의)가 개최되었다. 시국회의는 현재를 “극심한 경제위기와 혹독한 민생고로 인한 비상 상황”으로 규정하고, 모임의 취지를 “이명박 정권이 ‘강부자’ 정책을 즉시 중단하고, 민생 살리기와 대다수 국민들인 서민층에 집중 지원하는 정책으로 대전환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한나라당을 제외한 5개 정당은 이명박과 한나라당에 대항하는 모든 세력이 모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이명박’을 기치로 하는 세력결집은 지난 10월 25일 민생민주국민회의(준)가 출범하면서 가시화되었다. 출범선언문에서 “이명박 정권에 비판적인 모든 세력과 국민을 결집해야 한다”고 밝힌 민생민주국민회의(준)은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진로를 모색하는 과정에 참여연대, 한국진보연대, 민주노총이 주도하여 제안하고 결성한 연대기구다. 시민단체와 한국진보연대, 민주노총은 민생민주국민회의(준) 결성 준비 단계에서 처음에는 정당 배제를 주장했다. 그러나 사회진보연대를 비롯하여 노동자의 힘, 진보신당, 다함께, 전빈련 등이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대중투쟁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지 정당이라는 조직형식을 참여 기준으로 할 수 없다’는 비판을 하자, 민생민주국민회의(준) 주도 세력은 야당을 참관 단체로 하자고 입장을 수정했다. 그 과정에서 민주당의 참여문제가 부각되며 쟁점이 되었다. 사회진보연대는 민생민주국민회의(준) 주도 세력이 이명박 정권의 등장과 경제위기라는 현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자유주의 세력과 단절하지 못한 상태에서 목표가 모호한 상층연대체가 추진되고 있다고 비판하고 불참을 결정했다. 결국 출범 후 열린 11월 12일 2차 운영위원회에서 민주당이 뚜렷한 참가의사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민주당 참여문제는 논의하지 않고,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의 참가를 확정짓게 된다.
그러나 민생민주국민회의(준) 주요 참가단체인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는 11월 4일 국회 연설에서 “이명박 정부의 미국식 시장만능주의 정책과 신자유주의 정책을 반대하는 모든 세력이 모여 경제비상국민회의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민생민주국민회의(준)는 11월 5일 각계각층이 함께하는 행사를 제안했고, 11월 12일 민주당을 포함한 제 정당, 전국 시민사회단체, 각계 원로와 논의한 결과 시국회의 개최가 결정되었다. 한편 11월 27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주노동당 지도부를 만나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이 굳건하게 손을 잡고, 시민사회단체 등과 손을 잡고, 광범위한 민주연합을 결성해 역주행을 저지하는 투쟁을 한다면 반드시 성공한다”며 민주대연합 구성을 설파했다. 바로 다음날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민주노총을 방문하여 “다른 야당, 시민사회단체, 민주노총과도 힘을 합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12월 4일 각 정당 시민사회단체 각계인사가 모여 시국회의를 개최하고 ‘경제 민생위기 극복을 위한 3대 방향 10대 정책대안’을 발표한 것이다.
민주대연합과 민중운동재편
이번 시국회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구체적인 제안 이후에 급속히 진전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가볍지 않다. 이명박의 집권으로 권력을 빼앗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민주당 일각은 민주당을 중심으로 시민단체를 결속하고 여기에 민중운동까지 포섭하거나 재편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시국회의에 대한 논란을 추적하며 그 실체를 밝혀보자.
민생민주국민회의(준)에 참가하는 시민단체 중 일부는 시국회의가 한시적 정책연대라고 주장하면서 민주당을 압박 견인하는 것이 시국회의의 주요 목표라고 주장한다. 민생민주국민회의(준)의 공식적 입장을 대표하는 이러한 견해는 시국회의를 주도한 민생민주국민회의(준) 주요 관계자들의 발언과 행보에서 드러난다. 민생민주국민회의(준) 정책담당 사무국장은 시국회의가 “한시적인 민생대책 연합을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한나라당 연합’이나 ‘민주연합’ 등 정치연합은 아니지만 ‘정책연대’라는 것이다(한겨레신문, 12월 5일). 12월 8일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감세안을 합의하자 민생민주국민회의(준) 관계자들은 민주당 정세균 대표를 항의방문하고 민주당이 이러한 행보를 지속하면 “국민회의는 민주당과 협력 관계에 있어 중대 결단을 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한편 민주대연합 추진 흐름은 민주당 내 개혁 성향 모임인 <민주연대>가 12월 2일 공식 출범하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 민주연대는 김근태 전 의원을 중심으로 한 민생평화국민연대가 주축을 이뤘고, 여기에 천정배 의원이 이끈 민생모임이 가세해 현직 의원 17명과 전직 의원 35명이 참여한 당내 최대 비주류 모임이다. 창립선언문에서 “‘민주연대’는 국민대다수의 생존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평화를 반드시 사수하기 위해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촛불세력, 시민사회단체들의 광범위한 민생민주대연합을 제안하며 이러한 일이 성사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할 것이다”고 밝혔다. 반이명박 전선으로 결집을 요청하며 그들 스스로가 민주당을 ‘야당다운 야당’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국회의의 바람과 달리 민주당 정세균 지도부가 한나라당과 2009년 예산안을 합의하고 별다른 싸움을 하지 못하자 민주연대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12월 16일 민주연대 이종걸, 최규성 공동대표 등이 민주노동당을 방문하여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와 회동을 했다. 회담 결과 양측은 앞으로 이명박의 반민주, 반민생 악법저지를 위해 공동 대응할 것을 발표했다.
시국회의를 주도한 민생민주국민회의(준) 관계자들이 민주당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고, 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 뿐만 아니라 민주당 내 세력과의 동의 지반 속에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과의 연대가 일시적이거나 한시적인 것일 뿐일까? 민생민주국민회의(준) 주요 관계자 발언을 보면 한시적 정책연대를 뛰어넘는 민주대연합 결성을 시도하는 것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민주당 일각만이 아님이 분명하다. 김민영 민생민주국민회의(준) 공동정책위원장(참여연대 사무처장)은 “4일 출범한 경제 민생 위기극복 시국회의에 참여한 정당, 시민사회단체, 각계인사들을 지속적으로 묶어세울 수 있는 연대의 틀을 어떻게 마련하는가”를 고민하고 있다(한겨레신문, 12월 7일). 김민영 위원장은 12월 12일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진보 개혁 세력이 비전을 제시해야 변화가 가능하다면서, 반이명박 반한나라당을 기치로 정치 세력 재편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이 2010년 지방선거에서 지역구 배분을 통한 지방선거 공조가 가능하도록 시민단체가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진보연대,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시나리오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며, 최소한 하나의 가능한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민생민주국민회의(준) 결성과 시국회의 개최를 주도한 그들은 민주당과의 공조를 주요한 당면 과제이자 중장기적 전략으로 사고하고 있다.
한편 올해 초 민주노동당 분당을 주도한 세력은 그 명분으로 민주노동당이 자유주의 세력과의 철저하게 단절하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명박 시대에 민주노동당이 비판적 지지나 민주대연합의 행보를 보일 것이라고 분석하고 자신들은 독자적인 새로운 진보정당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민주당이 참가한 시국회의에 진보신당이 이름을 올리자 당원들 사이에서 논란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진보신당은 시국회의가 “일회적 정치행사”임을 강조하고, 정치연합이나 상설 연대기구와 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했다. 현재는 반이명박 전선과 반신자유주의 전선이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반이명박 전선의 내용이 무엇이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보신당은 시국회의 ‘3대 방향’에서 거국민생내각을 삭제한 것을 큰 성과로 자평하고, 자신들이 반신자유주의 연대를 강조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민주당의 시각에서 보면 시민단체와의 안정적인 조직기구 구성은 오히려 부담스러운 일이고, 시국회의 같은 일회적 이벤트를 통해 대외적 정당성을 획득하고 시민단체를 정치적으로 견인하는 것이 훨씬 간편한 일이다.
민주대연합 시도, 왜 계속되는가
자유주의 세력의 무능과 실패를 딛고 등장한 이명박 정권은 신자유주의 위기관리 측면에서 이전 정권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자유주의 세력이 시민운동이나 노동자운동을 동원하고 거버넌스 기구에 형식적으로 참여시켜 자신의 정당성을 보장 받았다면, 이명박 정권은 이들을 배제시키고 새로운 기술관료층에 의존하여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단지 이들을 배제시킬 뿐만 아니라 도덕성 문제를 제기하며 새로운 기득권 집단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이것이 그들이 반이명박 전선을 중심으로 한 민주대연합을 제기하는 배경이다. 첫째 이전에는 정부의 주요 정책 상담자이자 집행자로서 입지를 구축한 시민단체가 철저히 배제되었다. 둘째 허구적 코포라티즘을 추구하며 정권과의 협상을 통해 제도적 안정성을 추구하던 노동자운동 내 일부 세력 또한 배제되었다. 셋째 이명박의 대결적 대북관으로 인해 이전 정부의 지원과 후견을 받던 통일운동 역시 소외받고 있다. 한편 지난 10년 집권 세력인 민주당은 83개의 의석이라는 초라한 위치로 전락했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 이후 한국 사회를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한 자유주의 세력과 연대할 수 있는가를 물을 수밖에 없다. 민주대연합을 사주한 김대중이 누구인가? IMF 위기를 활용해 정리해고제와 파견법을 도입하여 비정규직을 대량 발생시키고, 구조조정에 맞선 노동자 투쟁에 공권력을 투입해 탄압한 책임자다. 그는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초민족자본의 이해를 적극적으로 대변하고, 부동산과 신용카드 거품으로 한국 사회의 금융화를 주도했다. 노무현 정권은 한미 FTA를 추진하고, 비정규직 악법을 도입했다. 또 이라크 침략 전쟁에 파병하고, 미군기지 이전을 위해 평택 대추리에 군대를 투입했다. 민주당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집권한 자유주의 세력을 대표하는 정당이다. 민주당이 바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선봉에 섰고,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군홧발과 곤봉으로 탄압했다. 자유주의 세력은 신자유주의를 승인하고 재벌, 자본가,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기득권을 유지한다는 측면에서 이명박 정권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미 파괴적 효과를 낳고 있는 실물경제 위기는 민중운동에게 엄중한 과제를 제기한다. 민중운동이 허구적인 민주대연합에 사로잡혀있을 때가 아니다. 민주대연합이라는 미망 속에 김대중 노무현 정권 동안 ‘잃어버린 10년’을 반복할 것인가, 경제위기에 맞서는 투쟁 속에서 민중운동을 재건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