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은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국제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선진국과 개도국이 협조할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1999년에 만들어졌다. 그전까지 국제경제 이슈는 주로 서방 선진국들의 모임인 G7 회의에서 논의되었지만 아시아 외환위기를 계기로 신흥시장 경제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이다. G20에는 G7에 참가하는 미국, 일본, 독일,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캐나다 외에 EU가 참가하며, 신흥개도국으로 한국,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아르헨티나, 호주, 인도네시아, 멕시코, 사우디아라비아, 남아공, 터키가 포함된다. G20 회의에는 이들 각국의 재무부장관과 중앙은행장, 그리고 세계은행 총재와 IMF 총재가 참석한다. G20 참가국의 국내총생산(GDP)을 합친 액수는 전 세계 GDP의 90%, 통상 규모는 80%, 인구는 3분의 2를 차지한다.
G20 정상회의가 열리기 전부터 미국, 유럽연합, 일본, 중국 등의 이해관계가 팽팽하게 대립했다. 유럽연합은 11월 7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비공식 EU 정상회의에서 ①신용평가기관의 등록과 감시, ②국제회계기준의 통합, ③모든 금융 분야에 규제와 감독 적용, ④금융기관의 과다한 리스크 부담 방지를 위한 지침 책정, ⑤국제통화기금(IMF)의 기능 확대를 G20 정상회의에 제출할 다섯 가지 개혁 원칙으로 합의했다. 특히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미국 주도의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제금융질서 구축 의지를 강하게 밝혔다. 그는 헤지펀드와 신용평가기관에 대한 좀 더 강한 규제, 조세피난처에 대한 새 법규 마련, 국제통화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했다. 또 이를 위해 중국, 인도 등을 포함해 G8을 확대하고, 나아가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IMF에 대해서 보다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했다.
하지만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는 금융위기는 국제적이지만 감독 체계는 여전히 지역적이고 국가적이라며, 국제금융기구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보다는 현재의 금융 감시체제를 개편하고 IMF와 금융안정화포럼(FSF, 국제금융 관련 감독제도와 감독역량의 취약점을 규명하고, 금융 감독기관들의 정보교환 및 협력 강화에 대한 조사 연구를 담당하는 기관으로 1999년 창립함)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EU의 합의안은 프랑스와 영국의 입장이 조율된 것이다.
반면 미국은 새로운 금융제도보다 기존 금융질서 안에서 시장의 투명성을 확대하고 IMF의 기능을 조정, 강화하는 방식의 제도 개선을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의 방만한 규제완화가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이라는 유럽 국가들의 비판에 반발했다. 신흥시장에서 미국으로 환류된 거액의 자금이 저금리와 맞물리면서 방만한 대출로 이어진 것이 이번 금융위기의 원인이라면서 금융규제 강화와 국제금융기구 개편에 난색을 표한 것이다. 한편 일본은 IMF에 대한 1,000억 달러 자금지원 방안 등을 제안하며 위기 극복에 일본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중국도 IMF와 세계은행 개혁에 관해 개도국의 지위와 발언권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G20 정상회의 결과
이번 정상회의는 애초부터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었다. 일부는 G20 정상회의를 새로운 브레튼우즈를 위한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G20 정상회의는 준비기간이 한 달여에 불과했고, 그나마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불참을 결정해 기대가 반감되었다. 따라서 IMF 체제의 개편 등 중요한 사안에 대한 결정은 4월 2일 런던에서 열릴 차기 정상회의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11월 15일 채택된 공동성명은 5개의 공동원칙과 47개의 중단기 실천과제를 합의했다. 금융시장 개혁을 위한 다섯 가지 공동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투명성 및 책임성 강화. 복잡한 금융상품 및 금융기관들에 대한 공시를 강화하고, 과도한 위험추구를 방지하기 위한 인센티브 제도를 개선한다. 둘째 금융 규제ㆍ감독 개선. 모든 금융시장, 금융상품 및 금융기관을 규제 대상으로 포함하는 한편, 금융시장의 건전성 및 리스크 관리기능을 제고한다. 셋째 금융시장의 신뢰성 제고. 투자자와 소비자를 보호하고, 금융시장 참가자들의 이해상충과 시장조작 행위를 방지하고 정보공유를 강화한다. 넷째 국제협력 강화. 규제당국 국가차원의 개별 금융시장 간 협력을 강화하고 국경 간 자본거래에 대한 협력 기능을 강화한다. 최우선적으로 위기 방지, 관리, 해소를 위해 협력을 강화한다. 다섯째 국제금융기구 개혁. IMF,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의 합법성과 효율성 제고를 위해 신흥개도국의 발언권과 대표성을 확대한다. 금융안정포럼(FSF)의 회원을 신흥개도국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시급히 확대한다. IMF가 확대된 금융안정화포럼 및 다른 기구들과 긴밀한 협조하며 위기대응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47개의 중단기 실천과제는 다섯 가지 금융개혁 원칙을 이행하기 위한 포괄적인 행동계획이다. 그중 28개 단기과제는 2009년 3월말까지 즉시 시행하고, 19개 중기 과제는 추가적인 시간을 가지고 논의될 전망이다. 이 실천과제는 G20 재무부 장관들이 구체적인 이행방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 중 2008~2010년 G20 의장국인 브라질, 영국, 한국이 실무 작업을 주도하게 되었다.
한편 각국 정상들은 시장경제 원칙이 존중될 경우에만 개혁이 성공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금융규제는 개선하되, 경제성장에 장애가 되거나 자본흐름을 위축시킬 수 있는 과도한 규제는 배제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호무역주의를 경계하고, ▲올해 안에 WTO 도하라운드(DDA)의 성공적 타결을 위해 노력하고, ▲향후 12개월 내에 어떠한 형태의 무역 및 투자 장벽 신설을 금지하고, ▲개도국 지원을 위한 밀레니엄개발목표(MDGs)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모호한 원칙 속에서 드러난 금융 권력의 힘
공동선언에 집약되어 있는 이번 회의의 성과는 크지 않다. 5개 원칙은 매우 모호하고 일반적인 내용을 담았을 뿐이고, 중요한 실천과제는 대부분 미뤄졌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집행될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회의결과가 원칙적인 수준에서 경제회복과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국제적인 공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합의하는 수준에 그친 것이다.
성과가 부진한 이유는 첫째, 세계 금융위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미국의 대통령 부시가 최악의 레임덕에 빠졌기 때문이다. 부시는 후임자 오바마와 어떠한 실질적인 행동계획에 대해서도 합의할 수 없었다. 둘째, 회의가 너무 급박하게 준비되었고, 각국의 의견차가 컸다. 공동원칙은 사실상 유럽과 미국의 분열을 드러낸 것이다.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가 이끌고 있는 유럽은 국경을 뛰어넘는 새로운 국제금융기구 설립을 통한 새로운 국제금융질서를 요구하고 있다. 사르코지나 유럽은 새로운 국제금융기구를 G20의 핵심 과제로 올리고 싶어 한다.
반대로 미국은 우선 각 국가의 규제기구를 강화하고, 여기에 더해 새로운 초민족적 협력과 조정을 추가하자는 생각이다. 이미 존재하는 국가적 규제체제를 인정하고, 그것을 강화해서 이제까지 규제되지 않던 새로운 금융상품과 기관을 포괄하자는 것이다. 미국은 이러한 시스템이 정치적으로 통제가능하고 포괄적인 최선의 도구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 기반이 각국 중앙정부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의 이면에는 세계 금융 산업의 중심지로서 미국과 영국 금융 부문의 경쟁력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G20 회의는 미국과 유럽 입장 사이의 차이를 축소하기 위한 토론을 회피했다. 몇 가지 분열 지점이 회의에서 드러났다. 유럽은 빠르고, 광범위하고, 강력한 규제를 빨리 추진하기를 원했으나, 미국은 시간을 가지고 더 조정된 정책 개입을 원했다. 합의된 다섯 가지 기본원칙은 영국의 입장에 가장 가까운 것이었지만, 아직 확실한 것은 없다. 한편 G20 회의에서 각국 정부들은 자신의 국민이나 세계 시민에게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자국의 금융 로비 세력에게 더 큰 관심을 기울였다. 이러한 문제들과 차이 때문에 오바마의 새로운 미국 행정부가 자신의 입장을 정식화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세계 사회운동과 국제노총의 요구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세계로의 변화를 추구하는 세계 사회운동은 국제금융질서 재편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기 위한 요구를 발전시키고 있다. 대표적으로 주빌리사우스가 주축이 되어 아탁 등 115개 국가 890개 조직이 서명해 10월 29일 발표된 <국제금융체계 개혁을 위한 “세계 정상회의” 성명>은 현 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 G20을 넘어서는 민주적인 참여와 토론이 필수적임을 강조했다(http://www.choike.org/bw2/ 참고). 따라서 그들은 G20이 아니라, 국제 금융․화폐 질서 개혁을 위한 유엔 주최 국제회의가 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유엔의 회의는 ①세계 모든 정부가 참여하고, ②시민사회, 시민조직, 사회운동 등의 대표자가 참여하고, ③현재 위기로 큰 영향을 받는 지역들이 협의하기 위한 분명한 시간표와 절차를 마련하고, ④포괄적인 범위로 모든 문제와 기구들을 다루고, ⑤투명성이 보장되어 제안서와 결과 문서의 초고가 공개되고 토론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들은 두 번째 성명서에서 개혁의 내용으로 다음을 강조했다. ①지속가능하고 평등한 발전을 위한 국가적, 지역적 실물경제 강화하고, 금융 제도는 이것을 위해 개편되어야 한다. ②신자유주의와 시장 근본주의와 단절해야 한다. ③세계은행, IMF, WTO의 권력을 억제하고 세계적, 지역적, 국가적 경제 거버넌스 기구의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 ④각국 정부는 노동자, 소농, 소비자의 이해와 환경을 보호하고, 미래 금융위기를 예방하는 민주적으로 결정되고 감시되는 새로운 국제규제기구를 만드는 작업을 당장 시작해야 한다. 이 과정에 유엔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한편 네덜란드에 기반을 두고 있는 초민족연구소(TNI)는 11월 19일 발표한
또 실물경제의 위기를 막고, 금융 불안정을 근본적으로 치유하기 위해서 더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방안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제안했다. ①세계적 기업이나 부유한 개인들이 자국의 세금을 피하기 위한 도피처를 제공하는 조세피난처를 폐쇄해야 한다. ②어느 국가도 파산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약속해야 한다. ③IMF의 실패한 이데올로기가 세계금융위기의 첫 번째 원인이기 때문에 IMF의 지위를 거부해야 한다. ④남반부 국가들과 NGO와 다른 시민사회 부분이 새로운 국제금융 질서에 관한 모든 토론에 참여해야 한다. ⑤국가 간 금융거래에 토빈세와 같은 세금을 부과해 구제금융에 사용하고, 금융 투기를 억제하고, 세계적 금융거래의 회전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⑥위험한 새로운 금융상품과 기구에 규제를 가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국가가 금융상품이 시장에 판매되기 전에 위험평가를 해서 인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⑦도하라운드에서 아직까지 결정되지 않는 금융서비스협상을 중단해야 한다. 금융서비스에 대한 규제를 없애려는 이러한 협상은 G20에서 국제 금융부문에 대한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려는 시도와 완전히 모순적이다. ⑧국가적, 세계적 규제 당국에서 활동하는 모든 로비스트를 공개해야 한다. ⑨금융기관의 최고 경영자에게 지급되는 보수의 액수를 제한해야 하고, 특히 매우 위험한 행위를 장려하는 보수를 금지해야 한다. ⑩새로운 국제금융기구에 관한 토론에 국제 금융기구가 아니라 유엔과 유엔 부설기구들이 참가해야 한다.
초민족연구소는 현재 세계가 금융세계화 내부의 위기가 아니라 금융세계화 자체의 위기를 겪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모든 해법은 이러한 사실에 기초해야만 한다. 적어도 경제질서 재건에 대한 국제회의는 세계경제의 통합적인 개혁과 재편을 요구해야 한다. 그것에는 금융, 무역, 투자, 생산, 기업의 행동강령, 노동기준, 구조적 위기, 환경규제가 포함되어야 한다.
국제노총(ITUC)은 G20 정상회의에 맞춰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 20개국 노동조합 지도자 회의(호주노총, 미국노총, 영국노총 등이 참가. 한국에서는 민주노총이 아니라 한국노총이 참가함)에서 세계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글로벌 유니언(Global Unions) 워싱턴 선언>을 채택했다(http://www.ituc-csi.org/spip.php?article2523 참고). 국제노총은 G20 정상회의에 참가하는 국가들을 포함해서 모든 국가들이 다음과 같은 일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첫째, 실물경제의 회복을 위한 계획에 착수해야 한다. 세계 자본시장을 안정화하고, 경제 침제에서 빨리 벗어나고, 세계적 불황의 위험을 막고, 양질의 일자리를 위해서 실물경제 회복 계획이 착수되어야 한다. 정부는 단기적으로는 수요를 진작하고, 중기적으로는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기반시설에 대한 투자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 대안 에너지 개발과 에너지 절약과 보존을 통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녹색 뉴딜”로 나아가야 한다. 세금과 재정지출 수단은 중하위 소득계급의 구매력을 높이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최저개발국가들(LDCs)이 밀레니엄개발목표(MDGs)를 달성하기 위해서 개발원조 예산을 UN의 목표인 GDP의 0.7%에 맞춰야 한다.
둘째, 지금과 같은 금융위기가 다시 발생 하지 않도록 국제 금융시장을 규제해야 한다. 다음과 같은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①중앙은행의 공적 책임성, ②경기 대응적인 자산 요건과 은행에 대한 공적 감독, ③헤지펀드와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 ④최고경영자 보수와 기업이윤 분배에 대한 개혁과 통제, ⑤신용평가기관 개혁, ⑥역외 조세피난처의 폐쇄, ⑦국제 금융거래에 대한 과세, ⑧약탈적 대출과 공격적인 대출정책에 대한 적절한 소비자 보호, ⑨적극적 공공주택 정책과 공동체에 기반을 둔 공공 금융서비스 정책, ⑩새로운 시스템을 위해 각각에 적절한 규제기구 설립.
셋째, 새로운 세계경제 거버넌스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거버넌스는 현 위기에 책임이 있는 자본흐름과 성장의 불균형에 주목하고 지금과 같은 금융시장이나 통화시스템을 넘어서야 한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경제적 안정을 위해서 유엔을 만들고 국제노동기구(ILO)의 기능을 강화한 것처럼, 이번 위기 이후의 새로운 안정을 위해서는 반드시 세계경제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각국 정부들은 필요한 구조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그러나 이 토론이 은행가들과 재무부 관료들에 의해서 폐쇄적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노동조합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넷째, 분배정의의 위기에 대항해 싸워야 한다. 새로운 경제 거버넌스 체계는 현재 악화되고 있는 분배정의의 위기에 주목해야 한다. 세계 경제의 지역 간, 국가 간, 자본과 노동 간, 고소득자와 저소득자 간, 부자와 빈민 간, 남성과 여성 간에 더 균형 잡힌 성장이 보장되어야 한다.
한편 내년 1월 27일부터 2월 1일까지 브라질 벨렝에서 열리는 2009년 세계사회포럼에서 국제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이 주요 이슈로 다루어 질 예정이다. 아탁 네트워크는 금융위기에 대한 세계적인 대응과 세계적 재분배를 위한 세계적 공공재를, 제3세계외채탕감위원회는 새로운 외채위기, 생태부채, 식량위기와 금융위기, 위기와 대안, 브레튼우즈 시스템에 대한 대안을, 노동과세계화네트워크는 현재의 위기가 금융위기 이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위기대응을 위한 노동조합의 공동 전략 마련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새로운 워싱턴 컨센서스가 되지 않으려면
1944년 브레튼우즈 협정 당시의 미국은 세계 금의 70%를 가지고 있었고, 세계 GDP 50%를 차지했다. 대공황과 2차 대전으로 국제무역과 세계경제가 완전히 붕괴된 상태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새로운 자본주의 헤게모니 국가 미국은 이전 헤게모니 국가 영국과 함께 국제화폐제도와 국제금융제도를 정돈했다. 하지만 현재 쇠퇴하는 미국의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다. 질서 있는 퇴각이나 정비가 쉽지 않다. 60년 전과 달리 이윤율이 하락추세이고 새로운 축적체계가 가시적이지 않다.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체제 대안이나 강력하면서 급진적인 사회운동이 존재하지 않는다. 케인즈주의라는 경제이론의 대안도 없다. 따라서 60년 전과 같은 방식으로 화폐, 금융 제도를 완전히 쇄신하는 새로운 국제금융질서가 만들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실제로 이번 G20에서 자국 금융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려는 미국과 영국의 의도가 관철되었으며, 자유무역 이데올로기가 강조되고, 금융자본의 책임을 분명히 묻지 않았다. 오히려 IMF를 강화하고, WTO 기준을 준수하고, 나아가 도하개발아젠다(DDA)를 올해 내로 타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위기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지연된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 질 것이다. G20 정상회의 결과는 국제 사회운동의 요구와 달리 매우 폐쇄적이고, 미약했으며, 어떤 부분은 오히려 퇴행적이었다. 공동선언은 현 위기를 발생시킨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금융자본의 책임을 분명히 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오히려 자유시장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따라서 이를 두고 새로운 브레튼우즈를 위한 한 걸음이 아니라, 새로운 워싱턴 컨센서스를 위한 한 걸음이었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세계 사회운동은 공통적으로 금융에 대한 통제와 새로운 국제금융질서에 대한 민주적 참여와 토론을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대안을 현실화시킬 것인가’이다. 어떤 운동은 모든 국가가 참가하는 유엔 주최 회의에서 진일보한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이를 압박하는 전술을 펴고, 다른 운동은 보다 근본적인 사회운동의 활성화를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 구체적인 경로와 방안에 대해서는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노동자운동의 대응이 중요할 수 있는데, 국제노총의 <워싱턴 선언>은 캠페인 이외에 구체적인 활동 프로그램을 마련하지 못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에 주목하고 국제 사회운동과 호흡을 같이하면서도, 우선 국내에서 어떻게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의 대안을 마련하고 싸울 것인지에 착목한다. 그 시작은 노동자의 단결을 도모할 수 있는 요구 투쟁과 금융위기의 본질을 공격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 투쟁의 결합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