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2일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 파동에 대한 유감을 표시하고 한미 FTA의 국회 비준을 촉구하는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에 앞선 5월 20일에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과의 추가 협의로 수전 슈워브 미 무역대표가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할 경우 한국 정부가 수입을 중단할 권리를 갖는다는 점을 명문화한 서한을 보내왔으며 이로써 검역주권을 회복했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자마자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청문회, 추가협의, 검역주권 명문화, 영수회담뿐 아니라 대통령 사과를 담은 담화문까지 발표했으니 한미 FTA 국회비준 거부할 명분 없다.”며 민주당을 공격하고 나섰다. 이로써 광우병 위험 쇠고기가 식탁에 오르는 것을 최소한이나마 제어하기 위한 기준마저도 스스로 포기한 채 한미 쇠고기협상을 기습적으로 타결했던 이명박 정부의 의도가 한미 FTA 국회비준을 마무리하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더불어서 지난 한 달 동안 진행해 온 국회 청문회, 미국과의 추가 협의는 물론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 발표 자체도 한미 FTA 국회비준을 밀어붙이기 위한 명분 쌓기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스스로 자인한 셈이다.
전국 곳곳에서 전 국민이 들고 나선 광우병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둘러싼 논란 과정에서 확인된 것은 민중의 우려와 분노가 이명박이 ‘소통’이라고 표현한 절차상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 청문회에서는 쇠고기 협상과 광우병 위험에 대한 의혹과 우려가 일소되기는커녕 이명박 정부가 미국 축산업계를 충실히 대변해서 쇠고기협상을 타결시켰으며 정부가 반복적으로 주장한 ‘과학적 기준’의 실체가 초민족 농ㆍ식품기업이 광우병 위험 논란에도 불구하고 쇠고기 수출과 이윤 창출을 지속하기 위한 장치였음이 폭로되었다. ‘검역주권 명문화’의 실상은 “모든 정부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20조 및 자유무역협정(WTO) 협정에 따라 건강 및 안전상의 위험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이미 국제적으로 합의된 원칙의 재확인일 뿐이었다. 여러 언론이 지적하듯 연령 제한이나 동물성 사료 규제 강화는 추가 협의에서 언급조차도 되지 않았을 뿐더러, 정부가 주장하는 ‘광우병 발생 시 수입중단’ 조차도 미국이 국민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고 인정할 때만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15일 연기했던 정부 고시를 20일 발표한 추가협의를 반영하여 실시하겠다고 했고, 이렇게 하면 검역주권과 안전성이 담보되는 것이라고 우기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그 누구도 식량의 안전성을 통제할 수 없는 현실과 민중의 건강을 포기해버린 정권에 대한 민중의 분노를 ‘불법시위’, ‘배후세력’따위의 협박으로 잠재우려고 하더니, 이제는 누가 보더라도 기만적인 말장난에 불과한 종잇조각을 들이 밀며 민중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낳은 광우병, 해결은 원인의 제거로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광우병을 둘러싼 논란 과정에서 확인된 것은 생태와 민중의 건강을 위협하면서 누구도 이를 통제할 수 없도록 만드는 자본주의적 식량 생산 체계와 무역 체계 전반이 민중의 건강을 위협하는 주범이라는 점이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광우병의 직접적 원인은 1970년대부터 영국과 서구 각국에서 반추동물인 소에게 효율성과 비용절감을 위해 먹이기 시작한 육골분 사료다. 1979년 영국의 대처/보수당 정부가 이끈 규제완화로 스크래피(양에게서 나타는 광우병 유사질환)에 걸린 양의 관련 성분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채 소에게 사료로 제공되면서 처음 발병된 것이다. 그리고 비육-도축-정육 과정의 통합을 기본 골격으로, 사료산업, 냉장ㆍ유통, 농업자금 대출까지도 카길을 비롯한 초민족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규모 목축 농민들이 일종의 도급 형태로 가장 위험 부담이 높은 한 두 부문을 떠맡는 형태의 미국 육류생산 체계도 1980년대 이후부터 광우병의 직접적 원인이 되는 육골분 사료가 확산되도록 했다. 도축업자들에게 매년 24억달러에 달하는 매출을 보장하는 동물 부산물 가공 산업 역시 초민족 농기업의 한 공정으로 통합되어 동물성 사료의 사용이 지속되도록 하는 요인이다. 이렇듯 랜더링 산업, 도축업자, 농업자본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광우병의 직접적인 원인은 여전히도 제거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적 기준에 따라 교역의 규칙을 세워야 한다’느니 ‘광우병의 발병 가능성, 감염 확률이 지극히 낮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은 음식을 통해 전염되고 아직 치료법이 없어서 걸리면 치사율 100%인 광우병의 위험에 대한 책임을 대다수 민중에게 돌리면서 초민족 농기업의 이윤을 극대화 하려는 기만에 불과하다. 결국 광우병 논란을 통해 드러난 문제는 대통령의 사과나 협상책임자의 해임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국제적인 농민운동이 주장해 온 식량 주권, 즉 “생태적인 방식으로 안전하고 문화적으로 적합한 식량을 생산하고 이를 민중이 누릴 권리, 민중이 고유한 식량과 농업 생산 체계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하는 식량주권을 쟁취하는 것이 바로 현재 광우병 논란으로 드러난 자본주의적 식량 생산 체계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다.
광우병에서 한미 FTA 반대로. 이명박 정부의 재벌 중심 세계화를 중단시키자
광우병 위험 미국 쇠고기 수입 재개 조치 뒤에는 바로 한미 FTA가 있다. 정부는 쇠고기 수입 재개와 한미 FTA 비준의 별개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미국 의회 내에서 ‘한국이 과학적인 근거도 없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거부하는 한 한미 FTA를 절대 비준할 수 없다’고 주장해 온 미국 민주당 출신 의원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로 한미 FTA 비준의 발판이 마련되었다고 했다. 그 이전에, 쇠고기 수입 규제 완화가 한미 FTA 협상 개시의 선결 조건이었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이명박은 쇠고기 파문에 대해 사과를 하겠다고 나선 대국민 담화 자리에서 오히려 ‘유가ㆍ식량ㆍ원자재 값의 상승과 미국발 금융위기 등의 상황에서 한미 FTA가 우리 경제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이므로 것은 ‘이념이나 정파를 떠난 국가적 과제인 한미 FTA 체결에 나설 것’을 강조했다.
이렇듯 민중의 건강을 포기하고서라도 한미 FTA를 조속히 발효시켜 재벌과 초민족 기업의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더욱 보장하겠다고 나선 이번 쇠고기 협상 타결은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는 경제 성장의 본질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2006년 4월 한미 FTA가 체결된 직후 ‘한미 FTA 협상에서 얻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비판에 대해 노무현 정부는 “모든 분야를 다 내주더라도 한미 FTA를 체결하기만 하면 그 자체로 이익이다.” “한미 FTA를 기회로 삼아 국내 산업을 철저하게 구조조정하고 신진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쟁력을 갖춘 재벌을 중심으로 금융화된 세계 경제에 더욱 깊숙이 편입하여 만성적인 경기 침체 상황을 극복하겠다는 것을 전략으로 삼았던 노무현 정부가, 이를 위해 글로벌 스탠더드를 한국사회에 도입하고 국내 산업을 철저하게 구조조정 함으로써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완성하기 위해 추진한 것이 바로 한미 FTA였다. 결국 광우병과 한미 FTA를 둘러싼 이명박 정부의 행보는 ‘무능한 노무현 정권이 말아먹은 경제를 살리겠다며 당선되었지만 결국 자신도 결국 노무현 정권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음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이미 이러한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이 노동자 민중의 이익과는 전혀 상관없는 국내 재벌과 초민족자본의 생존전략이며, 자본의 위기 극복을 위한 대가가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되는 과정이었음을 민중들은 충분히 경험했다. 이명박은 취임 초기부터 ‘비즈니스 프랜들리’ 운운하며 이러한 전략을 노골화해왔다. 결국 모든 것을 초월해서 한미 FTA를 시급히 체결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는 이명박의 호소는 민중이 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경제를 살리는 데 동참해야 한다는 케케묵은 이야기일 뿐 아니라 민중의 미래를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불안한 세계 경제에 내맡기겠다는 것이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 재개로 시작된 투쟁은 국익 논리에 눌리고 분야별 이해득실 논리로 분할된 한미 FTA 반대투쟁을 다시 한 번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더불어 민중의 미래를 포기하고 재벌만 살리겠다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반대 투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반 FTA - 반 이명박 전선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면 사회운동의 과제는 분명하다. 광우병 논란으로 불거진 민중의 불안과 공포가 확대되는 과정에 편승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을 제거하고 대안을 형성하기 위한 운동을 조직하는 데 나서야 한다. 몇몇 초민족 농기업이 식량 생산 전반을 장악한 가운데 농민들은 자연 재해나 병충해/질병으로 인한 위험 부담을 다 떠안으며 자기착취 당하고, 다수 민중은 식량의 안전성과 건강을 위협받고 있는 현실에 맞서 식량 생산 체계 전반에 대한 농민ㆍ노동자의 통제력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뿐만 아니라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재개를 몰고 온 한미 FTA가 이명박 정부가 경제 성장의 유일한 방안으로 내세우는 친재벌 정책과 궤를 같이 하는 것임을 인식하며 이에 맞서는 투쟁을 펼치는 것이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재개에 반대하며 재협상을 요구하는 촛불 시위가 네티즌 및 청소년을 주축으로 20여 일간 지속되었고 이는 농민대회, 운수노조의 하역 저지투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노동조합을 비롯한 다양한 운동은 이러한 흐름을 이어 반 이명박, 반 한미 FTA를 구호로 내걸고 투쟁을 더욱 확산하는 데 나서야 한다. 광우병 논란으로 드러난 이와 같은 문제가 야 3당의 공조 하에 추진되고 있는 정운천 장관 해임, 한미 간의 쇠고기 재협상으로 결코 끝날 수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