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옥수수 가격이 30%, 밀 가격은 146%나 인상되었다. 매일 가격 급등이 계속되고 있어 정확한 상승률을 계산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하지만 밀가루 값이 폭등한다고 쌀라면을 먹거나, 설렁탕에 사리를 빼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그것이 실용을 강조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비책이라도 어쩔 수 없다. 전세계적인 곡물 가격 폭등은 자본주의 농업의 위기가 발현하는 새로운 방식이기 때문이다.
자본에 종속된 농업ㆍ식량 시스템
문제의 구조적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 자본주의의 농업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자본주의적 발전의 영향으로 농가와 지역 공동체에서 수행되던 농업이 대부분이 외부의 생산 활동으로 대체되면서 농업도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지배를 받게 된다. 자본은 지역 공동체의 유기적 순환 속에 있던 농업 생산 과정을 종자, 농기계, 비료, 농약, 수확, 저장, 판매의 요소요소로 분해하고 각각에 개입한다.
자본은 역사적 계기 마다 농업의 각 부분을 포섭하고 산업화한다. 농기계, 비료, 농약은 양차세계대전 후 화학, 군수 산업의 재구조화 과정의 산물이다. 농업 생산은 자연적 환경과 리듬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포섭에 한계가 있는데, 자본은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이를 극복한다. 농업 생산과정에서 씨앗이자 수확물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종자의 산업화 과정은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자연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자본의 노력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종자의 산업화는 20세기 전반 멘델 유전학과 20세기 후반 생명공학의 발전, 제3세계 유전자원 약탈, 종자에 대한 특허권 보장, 국가의 농업연구 정책 변화 등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최근에는 농화학기업과 종자기업이 통합하고, 나아가 농식품 가공․무역기업까지 연합하여 농업과 먹거리 전반에 대한 초민족 자본의 지배가 강화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족농을 중심으로 농민층이 분해되고, 남아있는 소수의 농민은 자본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적인 농식품 시스템 속에서 위험이 높은 영농을 담당하는 도급 노동자화 되었다. 우리가 농산물에 지불하는 돈 1달러 중에 농민의 몫을 뜻하는 푸드 달러(Food Dollar)는 미국의 경우 1910년에 40센트 이상이던 것이 현재 7센트밖에 안 된다. 반면 농자재 자본의 몫이 20센트, 포장ㆍ유통 및 판매 부문의 몫이 70센트를 상회한다.
농업이 자본에 포섭되고 산업화된 농업 시스템이 확산되자, 농업은 먹거리 생산이 아니라 이윤 생산이라는 자본의 논리를 따르게 된다. 따라서 농업도 가격의 비교우위에 따라 국제적인 분업 체계 속에서 재배치된다. 미국, 호주 등 일부 국가가 세계의 곡물 공급을 담당하고, 남반구는 커피와 카카오 같은 선진국의 기호식품을 재배한다. 따라서 기후와 역사에 따라 지역에 고유한 먹거리 문화와 농경은 (자본주의) 경제발전이라는 목표에 따라 파괴되고, 식량의 자급도 불가능해진다. 이제 대부분의 농업이 생산과정에서 석유, 화학비료, 농약, 농기계에 의존하고 판매 과정에서는 세계시장에 의존한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진행되면서 WTO나 FTA를 통해서 각국의 농업시장이 무차별적으로 개방되었다. 비교우위를 확보하지 못한 지역의 농업은 몰락했지만, 세계적인 농업시장은 확대된 것이다. 따라서 세계 농산물 공급과 소비의 불안정은 더 커졌다. 핵심적인 곡물 생산 지역 한두 곳에서 작황이 나쁘거나, 해당 국가의 정책이 변할 경우 영향은 세계적이기 때문이다. 또 수입국은 곡물을 시카고선물시장과 같은 국제시장이나 카길 등의 초민족 자본을 통해서 구매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곡물 자체가 고수익을 기대하는 금융 투기의 대상이 된다.
곡물가 폭등의 정세적 원인 : 수요 증가, 바이오 연료, 투기
자본에 의한 농업의 지배와 세계시장에 의존하는 식량 수급이 구조적인 원인이라면, 최근의 수요 증가, 바이오 연료 개발, 국제투기는 정세적인 원인이다. 중국과 인도의 경제성장으로 경제 구조가 변하고 육식이 늘어나자 세계적인 곡물 수요가 늘어났다. 실제로 2006년부터 세계 곡물의 생산보다 소비가 더 많았는데, 올해에도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오 연료 생산이 증가하는 것도 곡물 부족을 부채질하고 있다. 바이오 연료가 지구온난화의 대책으로 제시되면서 미국과 브라질을 필두로 바이오 연료 연구와 생산이 각광받고 있다. 2007년 미국에서 생산되는 옥수수의 20%가 바이오 연료의 원료로 소비되었고, 2008년에는 25%에 이를 것이다. 하지만 연료 작물을 생산하기 위한 토지 개간과 영농 과정의 석유, 화학비료 고투입으로 실제로는 탄소를 더 배출하게 된다. 석유로 농사를 짓고, 농작물로 다시 석유를 만드는 꼴인데 그 과정에서 수익을 얻는 것은 바이오 연료를 가공하고 판매하는 소수의 자본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과 빈민들에게 돌아간다. 대형SUV 차량에 바이오 연료 100L를 채우기 위해서 200kg가량의 옥수수가 필요한데, 이것은 한 사람이 1년 동안 옥수수만 먹고 살 수 있는 양이다. 자동차가 옥수수를 먹고, 가난한 사람은 굶고, 이윤은 자본이 챙긴다.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부동산과 금융 자산에 대한 투기가 불안정하자 상대적으로 안전한 상품 투기에 자본이 몰리는 것도 곡물 가격 급등의 주요 원인이다. 곡물뿐만 아니라 원유, 구리, 철, 금 등 국제 상품시장에서 거래되는 대부분의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농업에 필요한 석유와 화학비료가 엄청나기 때문에 원유 가격이 상승하면 농업 생산비도 상승한다. 또 곡물은 생산량의 조절이 어렵고, 다른 상품으로 대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수요나 공급의 작은 변동도 가격에 큰 영향을 준다. 카자흐스탄 농무부 장관이 수출하는 밀에 관세를 부과할 것을 검토하자 하루 만에 국제 밀 가격이 22%나 급등한 사례는 곡물 가격 상승의 투기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벤처 농업과 해외 곡물기지의 허구성
곡물 자급률이 28%로 세계 최하위 수준인 한국은 곡물 가격 폭등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농산물은 그냥 수입해서 먹으면 된다던 정부도 다급했는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지만 물가잡기식 발상 외에 마땅한 것이 없다. 수입 곡물에 대한 관세를 낮추는 것을 검토하고 있지만 이미 농업 시장 개방으로 내릴 만큼 내렸다. 대두는 관세가 없고, 옥수수와 밀은 0.5%에 불과하다.
이명박 정권은 벤처 농업으로 유명한 '신지식인 농업인' 정운천 씨를 장관으로 임명하면서 한국 농업의 나아갈 길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농업은 기본적으로 민중에게 먹거리를 공급하는 식량산업이다. 일부 농가를 제외하고는 벤처농업으로는 생산과 공급이 원활할 수 없다. 고부가가치 농업이라는 발상 자체가 저가 농산물의 대량공급을 전제한 후에 틈새시장을 노리는 것인데, 현재와 같은 주식 곡물의 가격 상승을 이런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노릇이다. 정부는 오히려 농업을 말살할 한-미FTA 비준을 종용하고, 한-중FTA 등 다수의 FTA 채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결국 벤처농업이나 농업을 식품가공업과 서비스업 중심으로 2, 3차 산업화하자는 발상은 농업을 포기하겠다는 오래된 주장을 빛 좋게 포장한 것일 뿐이다.
정부의 대책 중에는 해외 농장을 개발하여 이른바 세계 곡물기지를 건설하자는 방안도 있다. 이를 위해 지난 2월에는 해외 농업개발포럼을 출범시켰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과 같이 지금의 곡물가 폭등과 농업 위기는 농업이 자본에 포섭된 상황에서 자유무역 이데올로기에 따라 농업을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에너지와 자본을 고투입하는 해외 농업개발은 문제를 악화시킨다.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자원 민족주의에 더해 곡물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식량 안보에 대한 수많은 경고를 무시하던 자본과 정권이 해외 농장개발이라는 방식으로 위기를 우회하려는 것은 여전히 문제 파악을 잘못하는 것이다. 구조적 문제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정세적 조건은 임기응변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결국 남은 것은 공허한 파퓰리즘 언행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3월 5일 청와대 참모들에게 “밀가루 값이 비싸다면 설렁탕에서 사리를 빼든지, 아니면 사리의 재료인 밀가루를 쌀로 바꿀 정도의 고정관념 파괴가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물가가 불안하자 현실과 동떨어진 쌀국수, 쌀라면 발언도 계속 되고 있다. 임기응변도 못되는 선정적인 말잔치이다.
식량주권과 먹거리ㆍ농민 운동의 활성화가 대안
곡물 가격 폭등의 최대 피해자는 여전히 굶주리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세계에 여전히 8억 5천만명 이상이 영양부족으로 고통 받고 있다. 대부분 1~2달러 이하로 살고 있는 극빈층인 이들은 가족 수입의 50~80%를 식료품 구입에 사용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곡물 가격 상승은 생존의 문제이다. 더군다나 비용 상승으로 국제 구호기구의 활동도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어 문제가 가중된다.
가격 상승의 혜택이 농민에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영농에 필요한 트랙터와 경운기는 석유로 움직이고, 비료와 농약도 석유가 주원료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이런 비용이 덩달아 오르니 대출을 통해 비용을 충당하던 농민들의 금융 부담이 가중된다. 사료 가격 때문에 파산하거나, 사육을 포기하는 돼지 농가가 늘어나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이 들려온다.
우리는 농업과 먹거리의 위기에 대한 대안이 대안세계화 농민운동과 식량주권에 있음을 강조해왔다. 식량주권은 생태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생산된 건강에 좋고 문화적으로 적합한 식량을 누릴 민중의 권리이다. 즉 농민 주도의 지역적이고 생태적인 영농과 그 생산물에 대한 민중의 통제를 의미한다. 소비의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를 먹거리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도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으로 대표되는 농민운동은 농가 소득 보장과 농산물 개방 반대를 두 축으로 투쟁해왔다. 농업 구조의 변화와 정책 실패로 농사에 필요한 돈은 늘어나지만 농민의 수입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농산물 개방을 막고 민족적인 식량자급체계를 지키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국내 농업도 자본과 에너지를 고투입하는 자본주의적 농업과정에 깊숙이 편입해있다. 또 쌀과 일부 과채류를 제외하고는 이미 대부분의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었다. 남미의 비아 캄페시나(Via Campesina)와 무토지 농민운동(MST)은 소농의 문제가 자본의 농업지배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식하고, 대중적이고 지역적인 차원에서 상품화하지 않는 방법으로 생태적인 농업을 재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 이들은 더 이상 시혜적인 정부정책이 아니라 토지, 종자, 물, 숲, 식량에 대한 민중의 직접 통제를 주장하고, 페미니즘 등을 수용하여 농민운동에 한정되지 않는 광범위한 시각에서 보편적인 해방을 위한 운동을 지향한다. 이러한 조류를 대안세계화 농민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한국의 농민운동이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자본에 종속된 농업구조에 대한 투쟁을 전개하고 농민을 보편적인 해방과 변혁 운동의 주체로 만드는데 더 천착해야한다. 그러한 운동 속에서 생태적이고 지역적인 농업 시스템을 구축하고, 농민운동으로 농촌사회를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부터 본격화된 유기농, 생협 운동이나 2000년 이후의 급식조례 운동은 주로 소비 측면에서 농업과 먹거리 문제를 제기했다. 최근에는 이러한 운동을 아우르고 발전시킨 로컬푸드 운동이 주목받고 있다. 로컬푸드 운동은 세계적인 농업과 먹거리 시스템의 문제에 주목하여 농민과 소비자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와 사회적인 거리를 줄이자는 운동이다. 지역적인 먹거리 생산과 소비의 시스템을 구축해 농민은 적절하고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받고, 소비자는 안전하고 생태적인 먹거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지역에서 생산한 좋은 먹거리를 집단적으로 공급하는 급식조례 운동도 로컬푸드 운동의 한 사례이다. 또 로컬푸드 운동은 친환경과 유기농이 유행하면서 유기농 제품마저 수입되어 지역적인 생산과정과 괴리된 것을 비판한다.
하지만 로컬푸드 운동의 일각은 정부나 지자체를 통한 제도화를 운동의 주요 의제로 하고, 새로운 소비 양식을 개발해서 자본에 종속된 농식품 시스템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0여년의 실험을 거친 생협과 유기농이 기업화, 제도화되어 소수의 색다른 라이프 스타일로 전락한 측면이 있다. 농업생산 구조를 농민 주도로 변혁하고, 유통과 소비 전반에 대한 민중의 통제력을 강화하는 것은 소비양식의 문제로 환원할 수 없다. 운동의 역동성을 상실하고 자본주의의 동학에 대한 맹목을 공유한다면 로컬푸드 운동도 유사한 길을 걷게 될 위험이 있다. 생협이나 로컬푸드 운동을 미래 대안 사회의 가치를 지금 미리 보여주는 '예시적 실천'의 사례로 볼 수 있는데, 예시적 실천은 그것을 보편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투쟁의 한 과정이다. 따라서 생협과 로컬푸드 운동의 가능성이 만개하려면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자본주의의 구조에 대한 면밀한 인식 속에서 여러 운동과의 연대를 통해 대안세계화운동의 일환으로 자신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최근의 곡물가격 폭등은 식량에 대한 민중의 권리 쟁취와 생태적ㆍ지역적 농업의 구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이다. 농업의 위기를 연기할 수 있는 자본과 정권의 대안은 한계에 달했다. 대안세계화운동과 식량주권을 이념으로 농민운동과 먹거리 운동이 발전할 때 현재의 농업ㆍ식량 시스템을 변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길에 우리가 참여하고 연대하는 것, 그것이 바로 곡물가 폭등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