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의 주간지 사회와노동

1017 빈곤심판 민중행동을 주목하라

밀레니엄 개발 목표의 달성은 빈곤철폐의 길이 아니다

새롭게 주목 받고 있는 세계빈곤철폐의 날

10월 17일 세계 빈곤철폐의 날을 맞이하여 전 세계적으로 열린 “일어나서 외쳐라” 캠페인에 총 3천8백만 여명의 사람이 참가하여 국제 단일 켐페인 부문에서 기네스 기록을 갱신하였다고 한다. 유엔과 "반빈곤지구적행동촉구"(The Global Call to Action against Poverty, GCAP)가 주관한 이 켐페인은 빈곤퇴치의 열망을 담은 하얀 띠를 두르고 일어나는 상징적 행동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일명 ‘화이트밴드 캠페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10월 17일 세계빈곤철폐의 날은 1990년대에만 해도 그리 잘 알려진 기념일은 아니었다. 1992년 유엔은 이 날을 세계빈곤철폐의 날로 선포했지만 유엔이나 유엔 소속 회원국 모두 별 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10월 17일은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원조를 하는 시민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극단적 빈곤을 극복하기 위한 선진국들의 원조를 호소하는 날로 주로 알려져 있었다. 이는 이 날의 기원이 <제4세계 운동>의 호소로 1987년 프랑스 파리 트로카데로 인권 광장에서 극단적 빈곤으로 인한 희생자를 기리고 국제적 해결을 요구하는 행사였던 점과 연관이 있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이 날이 새삼스럽게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화이트밴드 켐페인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 배경에는 무엇보다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초래한 일국적이고 세계적인 빈곤과 불평등의 확산이 있다. 투자와 무역의 자유화로 인한 노동조건의 악화와 착취의 심화, 자원의 약탈과 생태 파괴, 각 국 정부 재정의 긴축과 공적서비스의 사유화 등은 세계 각국 민중의 인간다운 삶은 물론 최소한의 생존마저도 위협해 왔다. 빈곤과 불평등은 제3세계 국가만이 아니라 모든 국가에서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면하는 보편적 현실이 되었다. 빈곤과 불평등의 해결은 시대적 과제로 누가도 회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고, 세계빈곤철폐의 날 역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이에 대한 여러 가지 해결책들이 주장되는 계기로 새롭게 주목받게 된다.

국제기구들 : 인간의 ‘가면’을 쓴 자본의 세계화

1992년 유엔의 관련 활동은 원조 단체들의 켐페인에 대한 지지 및 국제원조의 확대의 필요성을 각국 정부에게 알리는 일이 중심이 되었다. 한편 1990년대 이후 발전과 빈곤퇴치를 통합하기 위한 유엔 차원의 논의가 지속이 되는데 이는 성장과 지속가능한 발전, 그리고 빈곤 퇴치의 통합이 가능하며, 이를 위해서는 민주적 통치, 발전된 제도, 평화와 안정이라는 기초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견해다.
이러한 논의는 2000년 9월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담에서 선언된 “밀레니엄 개발 목표(MDGs)”로 수렴된다. 이는 극단적 빈곤과 기아의 해결, 보편적인 초등교육의 실현, 성평등의 촉진과 여성의 권익 증진, 유아사망률 감소, 산모의 건강 증진, 에이즈, 말리라아 등 질병 퇴치, 환경의 지속가능성, 개발을 위한 전 세계적인 협조의 증진 이라는 8가지 목표와 2015년까지 달성해야 하는 구체적인 지표를 담고 있다. 이후 유엔은 “밀레니엄 개발 목표”를 선전하고 이것이 실현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 계기로 세계빈곤철폐의 날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유엔의 흐름은 사실 빈국들에 대한 국제적 원조와 개발 사업을 시행 해 온 세계은행, IMF 등의 국제기구들에서 불고 있는 이른바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 구제금융 등을 제공하는 대가로 강제했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사실상 대부분의 국가에서 빈곤과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킬 뿐이라는 것이 현실로 확인되자 이들 국제기구들은 세계화의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 보다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회통합을 위한 사회정책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시민단체등과의 적극적인 협력이 중시된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정책의 확대 역시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교리를 해치지 않는 한에서만 인정될 뿐이다. 유엔의 밀레니엄 개발 목표는 공개적인 시장과 금융 시스템의 발전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해결책은 사실상 현재 전 세계가 처하고 있는 불평등과 빈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부작용을 조금 줄여 보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는 원조의 대가로 혹독한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을 강제해 왔다.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 조치는 초민족적 자본이 각 국의 자원과 부를 마음대로 개발하고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 해당 국가 노동자 민중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았다. 더구나 이러한 과정은 그 나라에 전통적으로 이루어져 온 농업을 비롯한 여타의 산업을 파괴하고 이들을 이주노동자로 전 세계로 내 몰았다. 최소한의 공적 서비스마저 초민족적 자본의 이윤 놀음의 전쟁터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그대로 두고 인간적 색채를 조금 가미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결국 유엔이나 세계은행 등이 추진하는 빈국에 대한 지원 계획이란 결국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을 보다 원활히 추진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 마련에 불과한 것이다.

원조/개발 NGO :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주요 파트너

세계화의 폐해를 줄이고 국제기구들을 개혁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일부 운동들 역시 이러한 국제기구들의 변화를 환영하며 이들의 적극적인 동맹세력이 되었다. 세계사회포럼 등에서 유엔의 밀레니엄 개발 목표에 어떠한 입장을 취할 것인가가 커다란 논쟁이 되었고 여기에서 밀레니엄 개발 목표가 실현될 수 있도록 감시하고 압력을 행사하는 활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국제 NGO, 사회운동, 노조, 여성운동 등은 2004년 요하네스버그에서 반빈곤지구적행동촉구라는 국제 네트워크를 출범시킨다. 이 네트워크의 목표는 통상정의, 부채탕감, 원조의 질적, 양적 확대, 빈곤퇴치와 밀레니엄 개발 목표의 달성을 위한 일국적 활동인데 특히 구체적인 활동은 마지막 목표에 집중되어 있다. 이들은 화이트밴드 캠페인을 주관하며 세계빈곤철폐의 날 행사의 가장 커다란 흐름을 만들고 있다.
이 네트워크를 주도하고 있는 세력은 옥스팸(Oxfam)과 같은 국제 원조 NGO들이다. 사실 많은 원조 혹은 개발 NGO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본격화된 순간부터 사실상 세계화가 원활하게 수행되기 위한 적극적 역할을 해 왔다. 1980년 중반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하여 제3세계 국가의 정부들은 심각한 재정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NGO가 공공서비스의 제공에 있어 담당하는 역할이 커졌다. 재정적, 물질적, 인적 자원을 동원하는데 효율적이었고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었다. 또한 국가 주도의 원조활동과 이와 연계된 제3세계 개발에 참여해 온 중심부 국가에서도 경제침체, 긴축재정 등의 여파로 NGO의 비중이 점점 커졌다. 유럽 연합의 경우 1976년 정부를 통한 원조가 95%이상이었는데 1990년에는 단지 6%로 줄었고 NGO의 경우 0%에서 37%로 늘었다.
이러한 NGO의 활동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민중들의 피해를 완화시켜 신자유주의 정책의 원활한 실현을 보완하였고 이들이 표방하는 시민의 대변자적 위치는 민중들의 불만이 정치화되는 것을 차단하였다. 따라서 이들이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의 흐름에 적극 편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세계화 반대운동의 우경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WTO나 FTA에 대한 대안으로 공정무역과 같은 자유무역의 온건한 조절 전략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이는 많은 사회운동들에서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경실련이나 원조NGO 등이 주도하여 반빈곤지구적행동촉구의 한국판인 지구촌빈곤퇴치시민네트워크가 꾸려져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밀레니엄 개발 목표 중에서 특히 한국정부의 원조를 확대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지난 17일에 이들이 주최한 콘서트에서는 외교통상부 장관, 한국국제협력단 총재, 대선 후보 등이 연설자로 등장해 세계 경제 12위 반열에 올라선 한국도 국제 원조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한국의 국가 원조는 미미한 수준이나 점차 확대되고 있으며 OECD의 개발원조위원회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원조는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의 교두보를 만드는 것에 가장 큰 목표를 두고 있다. 한국정부가 유상원조를 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필리핀의 '마닐라 남부 통근열차 프로젝트(사우스 레일 사업)'은 인근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파괴하고 강제철거하는 등 많은 문제를 일으킨 바 있는데 이 원조의 조건은 한국기업이 개발 사업에 참여한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원조의 미명 아래에는 자본의 해외진출의 확대와 이로 인한 해당 지역 민중들의 권리 파괴가 숨어 있다.



민중이 일어나서 대안세계화를 외치자

유엔과 국제 원조 NGO들이 주도하여 '지원 받을 권리', '구제 받을 권리'를 호소하는 빈곤철폐의 날이 우리에게 기념해야 할 어떤 것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어나서 외쳐라”. 신자유주의 세계화 아래서 빈민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구호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떠한 ‘권리’를 제기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빈곤철폐의 날은 빈민들 스스로 인간답게 살 권리를 외치고 투쟁을 선포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빈곤과 불평등에 고통 받고 있는 민중들이 “일어나서” 인간의 ‘가면’을 쓴 자본의 세계화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넘어 서는 대안세계화를 “외치는” 운동이 필요하다.
한국의 반빈곤운동은 80년대 도시빈민운동이라는 형태로 폭발하였고 87년 민주화 투쟁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였다. 이후 도시빈민운동은 한편으로는 주민운동이나 공동체운동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노점상이나 철거민 운동과 같은 특정한 이해에 기반한 대중조직운동으로 분화되었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 재편 속에서 전자의 다수는 서비스 NGO화의 길을 걸으며 오히려 신자유주의 개혁을 보완하는 역할을 담당해 왔고 후자의 경우 생존권 투쟁을 넘어서지 못하며 실리주의적 경향이 강화되어 왔다.
따라서 “바닥 생존 불복종! 민중의 기본 생활권 쟁취! 1017 빈곤심판 민중행동”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세계빈곤철폐의 날 공동행동과 같은 흐름은 반빈곤운동의 발전에 있어 매우 고무적이다. 무엇보다 다양한 형태로 분화되어 존재하는 빈민대중들의 주체화와 직접행동을 중심에 두고 있고 개별적인 이해를 넘어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라는 정치적 요구 속에 공동의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하지만 여전히 이러한 고무적인 운동의 흐름이 빈곤심판 민중행동 조직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많은 조직들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지 못할뿐더러 보다 대중적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있는 한계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여 빈곤심판 민중행동과 같은 흐름이 더욱 발전할 때 반빈곤운동은 NGO화와 실리주의적 경향을 넘어서는 새로운 운동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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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 세계빈곤철폐의 날 , 반빈곤운동 , MDGs , 밀레니엄 개발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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