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의 주간지 사회와노동

일본 평화헌법을 둘러싼 한판 승부

헌법9조 수호를 넘어 한미일 군사동맹의 해체를 요구하는 국제연대가 절실

개헌의 서막, 국민투표법 통과

일본에서는 지난 5월 14일 ‘국민투표법안’이 참의원을 통과했다. 현행 일본 헌법에는 헌법 개정을 위해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을 뿐 그것의 구체적인 절차법이 없었기 때문에 이 국민투표법의 통과는 개헌의 전제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이번 국민투표법 문제는 개헌의 전초전 성격을 띠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이런 절차법 제정조차 개헌의 일부로 간주되어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1950년대 기시 정권, 1980년대 나카소네 정권 시절 좌절되었던 헌법 개정의 열망을 아베 정권이 이어 받아 착착 진행해가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과 헌법 9조

아베 신조 총리는 취임 초기부터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해 헌법 개정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집단적 자위권’은 긴밀한 유대를 가진 나라가 제3국으로부터 무력공격을 받았을 때 이를 자국에 대한 무력공격으로 간주, 반격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전쟁의 포기와 전력 보유 금지를 명시하고 있는 헌법 9조 때문에 ‘집단적 자위권은 보유하지만 행사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일본 헌법에 ‘평화헌법’이라는 별칭이 붙게 만든 9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항: 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바탕으로 하는 국제 평화를 진심으로 희구하고, 국제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국권의 발동에 의한 전쟁,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를 포기한다.
2항: 전 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 그리고 그밖에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도 인정하지 않는다.

교도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아베 총리의 지시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 문제를 검토하고 있는 ‘안전보장의 법적 기반에 관한 간담회’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해야 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모으고 있다. 지난 6월 29일 열린 간담회 3차 회의에서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인정해 (미국을 겨냥한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도록 해야 한다’, ‘공해상에서의 요격은 다른 나라 영역에서의 무력행사가 아니기 때문에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랐다. 아베 총리는 간담회 결과를 수용하는 형태로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일본 정부의 기존 견해를 수정할 것으로 보인다.

왜 개헌인가?

미일 정상회담 직후인 올해 4월 30일부터 5월 1일에 미일 외교국방장관 회담이 열렸다. 이 회담에서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일본은 MD에서 매우 중요한 파트너’라고 추켜세우며,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요청했다. 2005년 10월에 제출되어 아베 정권 개헌 논의의 출발점이 되고 있는 자민당 개헌안 시안은 헌법 9조의 2항에서 ‘내각총리대신을 최고 지휘권자로 하는 자위군을 보유 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자위대를 ‘자위군’으로 명시하여 보통의 군대가 갖는 교전권과 집단적 자위권을 확보하겠다는 계산이다. 개헌에 찬성하는 자민당, 공명당, 민주당의 경우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어떠한 형태로건 자위권을 명기하는 방향으로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이들은 왜 그토록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원하는가? 이를 알기 위해서는 냉전의 해체와 세계 질서의 변화라는 역사적 맥락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1) 냉전과 평화헌법의 제정
2차 대전이 끝난 후 동아시아는 냉전의 최전선이 되었다. 미국은 공산주의의 세계적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3개의 축을 구상했다. 하나는 동아시아 각 국의 군사정권을 이용한 군사적 대치였고, 또 하나는 오키나와 등지에 직접 군사기지를 형성하는 것이었으며, 마지막으로 일본을 이용해 앞의 둘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2차 대전과 같은 대미(對美)전쟁을 수행할 수 없도록 일본의 군사적 능력을 빼앗고 병참기지로 만드는 대신, 일부 군인과 정치가 등 A급 전범으로만 전쟁 책임을 한정하여 일본 지배계급을 유지시켰다. 전력 보유의 금지와 전쟁 포기, 천황제의 존치를 가능하게 했던 일본의 ‘평화헌법 제정’은 냉전 구도를 이끌어가기 위한 미국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2) 냉전의 해체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확산
냉전이 해체되고 팽팽하게 작용하던 중심이 사라지자 기존의 세계질서는 급속하게 해체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세계적으로 발전주의적 틀이 해체되고 신자유주의가 이를 대체하게 된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구도 아래서는 미국과 유럽을 잇는 범대서양 지역에 자본의 이동이 집중된다. 생산의 중심으로서 아시아 몇몇 국가들만이 이 축적체제에 포함될 뿐이며, 나머지 지역은 광범위하게 배제된다. 자본의 필요에 따른 한정된 지역과 지정학적 중요성을 지닌 지역들만이 세계화의 구도 속에 편입될 뿐이다.
그러나 금융적 축적을 지속하고자 선별된 지역들만을 포함, 관리하는 구상으로는 해체되는 세계질서 전체를 관리하기 어려워졌다. 배제된 지역이 증가할수록 질서의 해체는 가속되고, 이탈은 증가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머지않아 금융적 축적구조 자체도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세계 질서를 유지해 신자유주의 축적구조를 지속시키는 것은 자본의 사활적인 과제가 되었다.

3) 미국의 전략 변화
이러한 과제는 세계 금융흐름이 집중되고 있는 미국에게도 마찬가지 문제다. 부시 독트린이라 불리는 미국의 세계전략은 안보의 개념을 변화시켜 시장과 세계화의 보호를 미국의 사활적 이익으로 규정했다. 이를 위해 미국은 이전보다 훨씬 더 직접적인 군사개입 전략을 취하게 된다.
미국은 각지에 흩어진 주둔군을 통해서는 변화된 세계의 구도 하에서 적절한 개입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신속대응군 체제로 군사전략 구도를 전환하기 시작했다. 세계를 몇 개의 주요 지역으로 묶고, 각 지역 내에서는 발생하는 분쟁들에 대해 동맹국과 함께 한 국가에 한정되지 않는 광범위한 대응을 전개할 수 있도록 대응방식을 전환하는 것을 뜻했다. 이를 위해 분산 배치된 주둔군을 몇 개의 거점 중심으로 집중 배치하고, 개별 국가의 상황에 매이지 않는 군사작전의 유연성을 확보할 필요성이 커졌다. 현재 한반도에서 추진되고 있는 전략적 유연성 문제처럼, 신속대응군 중심의 군사편제와 동맹국들의 군사적 책임의 강화, 개별국가 중심이 아닌 더 넓은 지역을 포괄하는 군사무기 체계의 개발 등의 변화가 진행되어 온 것이다.

4) 변화된 전략과 동아시아, 그리고 일본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구도 아래서 새로운 생산의 중심으로서 동아시아의 안정적 유지는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특히나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불안정성을 제어하기 위한 통제력을 확보하는 것이 강조된다.
1995년 미 국무부 차관 조셉 나이가 작성한 ‘동아시아 전략보고서’는 중국이 21세기 중반까지 미국과 겨룰 초강대국으로 성장할 것을 상정하며, 이 지역에서 일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2000년 10월 미 국가전략연구소가 발표한 ‘미국과 일본-성숙한 파트너십으로의 전진’이라는 특별 보고서(이른바 ‘아미티지 리포트’로 부시 정권의 아시아 전략의 근간이 되었다)는, 일본이 비용분담에서 권력분담으로 역내 안보 역할을 증대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전까지 동아시아에 국한된 지역적인 미일 안보는 새로운 군사적 부담을 짊어질 동맹국으로서 ‘미일 안보체제의 글로벌화’를 시도한다. 이러한 미국의 주문과 후원에 힘입어 일본은 이미 ‘보통국가화’의 과정으로 진입했다. 헌법 개정을 통해 자위군의 보유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보장하는 것은 이러한 과정의 마침표가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전면화로 인한 빈곤의 증대와 경제적 불안정성의 증가, 이에 비례해 커져만 가는 민중의 분노와 저항, 그리고 배제된 지역의 끊임없는 이탈. 이에 대한 자본의 반동적 대응을 우리는 지난 수년 간 계속된 군사적 위협과 전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일본의 헌법 개정 요구는 해체되는 세계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 변화와 신자유주의 시대 글로벌 거버넌스의 파트너 일본의 반동적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동우회, 일본상공회의소, 일본경단련 등 일본의 재계가 일제히 헌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도 이러한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평화헌법을 둘러싼 한판 승부
- ‘무장한 세계화’에 맞서는 민중과 사회운동을 조직하자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재의 일본 헌법 개악은 자본의 금융적 팽창과 이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폭력과 전쟁의 확산이라는 지배계급의 반동적 흐름의 한가운데에 존재한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히 일본의 군국주의화뿐만이 아니라 남한에서는 ‘자주국방’이라는 미명 아래 종속적 한미 동맹의 강화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일본 헌법 개악의 문제는 한 나라의 법 조항 한두 개를 지키는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확산을 저지하는 문제로 사고되어야 한다.
첫째, 한미일 군사 동맹을 해체하기 위한 투쟁을 강화해야 한다. 미국의 패권 전략은 전 세계에 평화가 아니라 폭력과 파괴, 그리고 전쟁만을 가져다주고 있다. 일본의 헌법 개정은 일본의 군사적 팽창만이 아니라,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미군의 재배치는 평택에서처럼 그 자체로 민중의 생존권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전쟁 가능성을 한층 높일 것이다. 자주국방이나 주권의 논리 뒤에 숨어있는 무장한 세계화의 반동적 흐름에 맞서 단호한 투쟁을 벌여나가야 한다.
둘째, 민중의 평화적 생존을 위해 한국에서부터 군축 운동을 조직하자. 북한의 핵 실험 이후 동아시아 각 국의 대응에서 알 수 있듯, 특정한 국가의 군비 확장은 군비 경쟁의 도미노를 불러 온다. ‘북한 위협론’은 일본이 자국의 군사적 팽창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되어 왔고, 이는 그대로 한국의 군사적 팽창에 알리바이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역내에서 끊임없이 군사적 긴장을 유발시켜 평화와 민중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과 동시에 민중을 억압하는 기제가 되어 왔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셋째, 반전평화운동의 국제적 연대를 강화하고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확산시키자. 일본의 헌법 개정 반대 운동은 헌법 9조 개악에 반대하는 여론을 확대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 개악의 문제를 ‘9조 수호’와 같은 개별 조항의 문제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 테러대책특별조치법 제정과 아프가니스탄 파병, 690명에 달하는 대규모 PKO 부대의 동티모르 파병, 유사법제와 이라크부흥지원법 제정, 육상자위대의 이라크 파병 등. 헌법 9조가 염연히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자위대의 해외 파병과 일본의 군사적 확장은 계속되고 있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일본의 헌법 개정은 미국의 패권 전략을 한층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고, 따라서 이를 둘러싼 투쟁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폭력을 제어하는 투쟁의 장이 되어야 한다. 일본과 남한의 반전평화운동이 적극적으로 연대를 하는 가운데 서로의 경험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공동의 투쟁을 벌여가야 할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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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 평화헌법 , 헌법개정 , 9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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