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의 주간지 사회와노동

홍콩 WTO 각료회의 저지투쟁은 정당하다!

홍콩 투쟁을 다녀와서

사회화와노동 292호
292호 2005년 12월 30일(금)


홍콩 WTO 각료회의 저지투쟁은 너무나 정당하다!
- 홍콩 투쟁을 다녀와서


역시 신자유주의 세계화, WTO와 세계 민중들은 한 하늘 아래서 살 수 없다. 이번 WTO 홍콩 각료회의와 이를 저지하고자 하는 세계 민중들의 투쟁 그리고 이에 대한 홍콩 경찰과 정부의 탄압은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명백히 드러내주었다. WTO 10년의 재앙을 끝장내고자 세계 각지에서 모인 민중들의 투쟁은 끝끝내 ‘불법·폭력’ 시위로 매도되고, 1,000여명의 집회 참가자들은 전원 연행되었다.

전 세계 인구를 통틀어 한 줌도 안 되는 가진 자들만을 위한 WTO 각료회의에서 세계 민중 대다수의 삶 전체를 좌지우지하고 죽음으로 몰아넣을 논의를 진행할 수 없다는 세계 민중의 저항은 너무나 정당하다. WTO 자유무역체제가 전 세계 국가와 민중에게 고른 혜택을 줄 수 있다는 선전은 새빨간 거짓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WTO는 세계 민중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 기본적인 권리를 박탈했으며, 심지어 세계 곳곳에서 민중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있다. 바리케이드와 엄청난 수의 경찰의 보호 속에 안락한 회의실에 앉아 협상을 진행했던 각료들은 회의장 밖에서 더 이상 죽을 수 없다고 절규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조금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차디찬 바닷물에 몸을 던지고, 홍콩 거리를 삼보일배로 행진하면서 처절하게 절규했지만, 그들은 이 절규에 눈과 귀를 막고 자신들만의 흥정을 계속했다. 그래서 우리는 컨벤션센터로 갔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결정해야 한다고, 너희들끼리 마음대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WTO는 없어져야 한다고,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갔다.

컨벤션센터 앞 도로에서 1,000여명의 시위대가 연행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바로 다음 날 한국의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홍콩까지 가서도 불법·폭력 시위’라며 그 전까지 삼보일배 등으로 쌓아온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며 홍콩 각료회의 저지투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을 강하게 질타했다. 한국 정부는 집회가 불법·폭력 시위로 변질된 것에 ‘유감’을 표했고, 심지어 구속된 사람들의 신원보증마저 거부했다. 한국 정부와 언론은 우리가 왜 컨벤션센터로 가야만 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언급조차 없었다. 언제나 "불법시위는 안 된다"라는 똑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보기 좋은 모습을 연출하는 쇼를 하러 그 먼 홍콩에 간 것이 아니다. 그들이 허용해주었던(?) 삼보일배조차 전 세계 민중들과 홍콩의 시민들에게 WTO의 반(反)민중성과 한국 민중의 생존을 건 절박함을 알리고 연대와 지지를 호소하기 위한 것이었지, 그들의 ‘평화·합법’ 규정을 지켜 입에 발린 칭찬을 듣자고 한 것이 아니었단 것이다. 우리는 WTO 각료회의를 저지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막아내기 위해 홍콩에 간 것이다.

홍콩의 시민들은 WTO 각료회의를 저지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홍콩에 온 민중들의 외침과 요구에 마음을 열고 열렬한 지지로 화답했다. 이미 너무 오랜 시간동안 자유무역의 도시이며, 도시 전체가 면세점을 방불케 하는 쇼핑의 천국인 홍콩의 시민들은 WTO가 세계 민중들에게 재앙을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 언론과 홍콩 정부가 WTO 반대 시위대를 얼마나 무시무시한 폭도로 악선전을 해댔는지, 12월 13일 개막집회 행진 도로 주변의 상가들은 다 문을 닫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한국민중투쟁단은 끊임없이 우리가 홍콩에 간 이유를 설명했다. WTO 각료회의 저지 투쟁에 나서는 이유를 담은 신문을 들고 곳곳에서 선전전을 진행하고, 집회와 행진에서 세계 민중을 위해 WTO는 없어져야 한다는 우리의 요구를 담아냈다. 홍콩 시민들의 반응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시위대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건네고, 촛불집회에서 광둥어 통역을 자처하는 시민들이 생겨나고, 지지와 연대의 편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 홍콩 시민은 편지에서 “세계에서 온 여러분들, 홍콩에 와줘서 감사합니다. 당신들이 들려준 삶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 ‘쇼핑 천국’ 홍콩이 실은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들의 피와 땀 위에 지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라고 말했다. WTO 각료회의를 저지하는 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단식 농성을 진행한 홍콩 대학생들도 있었다. 이들의 이런 반응은 단지 한국민중투쟁단의 시위 방식이 소위 ‘한류’를 이어갔기 때문이 아니다. 농업, 서비스 부문 개방을 강요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추동하는 WTO의 본질을 이해하고 우리 투쟁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WTO가 세계 민중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주장,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아닌 민중의 저항과 권리에 근거한 대안적인 세계화가 가능하다는 요구가 홍콩 시민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당성을 잃고 스스로의 모순에 걸려 전전긍긍했던 것은 오히려 WTO이다. 농업, 서비스, 비농산물 협정에서 회원국들 사이의 이견이 계속 터져 나오면서 합의가 불투명하다는 사실은 각료회의 이전부터 예견되었다. 각료회의 동안에도 이런 갈등은 계속되었다. 협상이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 홍콩 빅토리아 공원으로 계속 들려오고, 케냐,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5개국이 퇴장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의 갈등으로 드러나기는 하지만, 그 의미가 단지 국가간 협상전략의 유불리를 따지는 수준을 넘어선다. 이는 WTO가 보장하는 초민족 자본들의 무한한 이윤추구의 과정에서 식량, 물, 의약품, 교육에 접근할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조차 박탈당하고, 자신의 땅마저 빼앗기고, 높은 실업률과 불안정한 일자리에 시달리는 배제된 땅의 민중들의 현실의 반영이다. 그동안 WTO가 선전하던 자유무역의 혜택을 공평하게 누리자는 주장의 모순이 점차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초민족 자본의 이윤추구를 위해 점점 더 자유무역의 대상을 확대하고, 개방을 강요해 온 WTO는 애초부터 세계 민중들에게 어떤 혜택도 줄 수 없었던 바, 세계화로부터 배제된 주변부 지역의 주민들이 겪고 있는 빈곤과 기아 등의 고통을 더 이상 외면할 방도가 없었을 뿐이다.

1999년 시애틀에서의 각료회의 저지 투쟁 이래로 가는 곳마다 민중의 거대한 저항에 부딪혀 왔던 WTO는 자기 내부의 갈등과 모순이 커지면서 존립 자체를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번 홍콩 각료회의의 목표도 낮은 수준에서라도 홍콩 선언문을 통과시켜 어떻게든 WTO와 도하개발의제의 수명만은 연장하는 것이었다. 도하개발의제를 살리려는 홍콩에 모인 각료들은 세계 민중의 요구를 외면했다. 그들이 무슨 자격으로 대다수 민중의 삶을 파괴하는 WTO 도하개발의제를 유지, 발전시키자는 선언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그들은 페퍼 스프레이, 최루탄, 고무총, 전기 충격기를 동원해 민중의 저항을 탄압하고, 무수한 시위대를 연행하고서야 도하개발의제를 유지하자는 선언을 할 수 있었다. WTO가, 도하개발의제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세계 민중들과 결코 공존할 수 없음을 이보다 명백히 말해주는 사건이 또 어디 있을까!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그 첨병 WTO는 세계 민중의 삶을 도탄에 빠뜨리고 있다. 부와 자원의 약탈, 삶의 파괴, 전쟁과 같은 거대한 폭력과 범죄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은 바로 WTO 자체이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초래한 재앙적인 결과가 날이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으며, 이러한 거대한 폭력에 맞선 민중의 투쟁과 저항도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죽음으로까지 저항하는 민중들 앞에 지배세력이 내어놓는 답이라고는 경찰과 같은 국가기구를 동원한 물리적 폭력이다. 민중의 삶을 책임질 의사도 능력도 없는 그들은 물리적 폭력을 동원해 민중의 투쟁을 탄압하고, 짓밟는다. 인권마저 무시한 무자비한 과잉진압을 자행했던 홍콩 경찰의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고(故) 전용철, 고(故) 홍덕표 농민 또한 이런 무능력한 지배세력이 동원한 경찰 폭력에 의해 돌아가셨다. 이런 그들이 ‘평화 시위’ 운운하는 것은 차라리 한 편의 코메디다.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한 민중의 투쟁은 민중이 가진 정당한 권리이며, 이를 침해하는 그들이야말로 불법·폭력 세력이다.

WTO 홍콩 각료회의는 홍콩 선언문을 통해 도하개발의제의 수명을 연장해주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각국 정부와 지배세력들은 WTO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변함 없는 합의를 가지고 있음을, 결국 우리의 삶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경찰의 탄압과 언론의 매도 속에서도 WTO 각료회의를 저지하자는 우리의 투쟁에 대한 세계 민중과 홍콩 시민의 지지와 연대는 그치지 않았다. 이런 홍콩에서의 투쟁을 통해 우리는 WTO에 맞선 우리의 투쟁이 너무나도 정당함을, 세계의 노동자, 농민, 여성, 빈민의 권리가 바탕이 되는 다른 세계를 건설하자는 우리의 요구가 너무나도 보편적이고 정당한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우리는 다른 세계를 향한 우리의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충실한 추종자 노무현 정권과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선 투쟁을 한국에서도 계속할 것이다. 비정규노동법 개악을 저지하는 투쟁, 고(故)전용철, 고(故) 홍덕표 농민의 한을 풀고 농업의 근본적 회생을 이루어내는 투쟁, 파병연장을 저지하는 투쟁, 지금 한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중의 정당한 모든 투쟁은 홍콩 WTO 각료회의를 저지하고자 했던 투쟁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점은 너무도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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