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을 어떻게 볼 것인가
-8.31 부동산 대책의 본질과 한계
한국사회의 부동산 투기열풍과 노무현정권의 대응
얼마 전 행자부가 발표한 우리나라의 토지소유 현황 수치를 살펴보면 현재 우리나라의 토지 소유 편중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상위 1%(48만 7천명)가 전체 사유지의 51.5%를 소유하고 있으며, 상위 10%가 전체 면적의 91.4%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지난 24일 조세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부동산 가격이 폭등함에 따라 집값으로 환산한 빈부격차의 정도가 단순히 월평균 소득으로 따졌을 경우 보다 두 배 이상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불평등한 토지 소유 구조와 부동산을 하나의 투기 시장으로 형성한 신자유주의적 정책은 사회적 빈곤을 확대하고 빈부격차를 더욱더 심화시켜 현재와 같은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하고 있다.
이처럼 왜곡된 토지 소유현상에 대한 불만과 부동산투기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거세지자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 임기 내에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부동산투기는 꼭 때려잡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잇따른 부동산 정책에도 불구하고 집값은 좀처럼 떨어질 기색 없어 보이자 이번에는 ‘토지 공개념 제도’를 언급하며 강도 높은 부동산 정책을 추진할 것을 시사했다. 이러한 정부와 여당의 움직임에 대해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진영은 토지 공개념 제도는 이미 위헌 판정을 받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며 연일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참여 정부 출범이후 국토균형발전이라는 슬로건 아래 진행되는 각종 기업도시, 혁신도시 사업 등으로 전국토의 투기지역화를 조장하고 있는 현실을 비추어본다면 노무현 정권이 토지 공공성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모순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2개월 간의 지난한 공방은 8월31일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발표를 통해 일단락될 것처럼 보인다. 애초 검토되었던 안에서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여 발표된 이번 안은 결국 또다시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린 꼴’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것은 일부 언론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강력한 조세저항을 우려한 결과라기보다는 애초부터 노무현 정권이 부동산 투기를 억제할 의도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결국 이번 8.31 부동산 대책은 주식, 채권과 더불어 금융시장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부동산 시장이 장기간 저금리로 인해 과도한 거품이 형성되자 이를 제어 가능한 수준에서 관리하기 위해 정부에서 마련한 일시적인 관리 장치인 셈이다.
위기관리정책으로서 '토지공개념'의 한계
이처럼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토지 공개념에 대한 논의는 1980년대 후반 올림픽 개최를 전후로 전국 곳곳에서 부동산 투기 광풍이 불던 때에 이루어졌다. 전국적인 부동산 투기에 따른 지가 상승은 서민들의 생활고를 가중시켰고 이는 ‘공공의 복리를 위해 토지 소유권에 일정한 제약을 가해야 한다.’는 토지공개념제의 취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으로 이어졌다. 이에 정부는 1989년 정기국회에서 '택지소유에 대한 법률', '토지초과이득세법', '개발이익환수에 관한 법률' 등 토지공개념 관련 법률을 제정하였다.
하지만 이처럼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만들어진 토지 공개념 제도는 실제로 사회 안정과 공공복리를 위해 개인의 재산권을 제한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당시에 3저 호황으로 발생한 막대한 유동성 자금들이 올림픽 등을 계기로 일시적으로 부동산 시장으로 쏠리게 되었다. 이러한 부동산 투기 열풍은 노태우 정권에서조차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이렇게 과도하게 형성된 부동산 시장의 거품은 언제 어떻게 붕괴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 직면해있었다. 법제정당시부터 줄곧 위헌 논쟁을 불러온 토지공개념 관련 법규들은 이처럼 당시의 부동산 경기를 관리 가능한 수준에서 통제하기 위한 하나의 제도적 장치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권에서는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강력한 의지가 있었지만 마치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 때문에 토지공개념제도가 좌절된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왜곡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토지초과이득세법」(토초세법)이다. 토지초과이득세법의 주요 내용은 ‘별장용 토지, 부재지주 농지, 기준초과 공장용지 등의 소유자에게 3년 단위로 토지 초과이득의 30~50%에 해당하는 세금을 부과’ 하는 것인데, 이것은 1994년 7월 ‘재산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를 이유’로 위헌이 아닌 ‘헌법 불합치’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토지초과이득세법의 결함을 수정한 개정 토초세법에 대한 위헌 소송 4건이(1997년 8월~ 1999년8월) 모두 ‘합헌’판정을 받았다.
‘주거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택지소유를 금지’한 ‘택지소유상한법’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 법은 소유 상한을 200평으로 지나치게 낮게 잡았다는 점, 소유 목적이나 택지 기능을 고려하지 않고 예외 없이 획일적인 상한을 정했다는 점이 문제가 되어 지난 1999년 4월 ‘위헌’ 판결을 받았지만, 이 법은 위헌 판결에 앞서 98년 9월 정부에 의해 폐지되었다.
끝으로 ‘택지개발, 공단·관광단지·유통단지·골프장 등의 조성 시 사업시행자에게 개발 이익의 25%(도입 초기에는 50%)를 개발 부담금으로 부과’하도록 하는 ‘개발이익환수법’의 경우에는 합헌 판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업 부담 가중 등을 이유로 2004년 이후 부과가 중지되었다는 것을 감안해본다면 이러한 성격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현재 토지공개념 제도 도입을 주장하고 있는 정부와 열린우리당조차 ‘토지초과이익세법’이나 ‘택지소유상한법’은 이미 위헌 판정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검토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개발부담금제만을 시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89년 당시 노태우 정권이 제안했던 토지 공개념 관련 법률에도 훨씬 미달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러한 부동산 대책을 통해 부동산 투기로 인한 구조적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토지와 주택에 대한 왜곡된 소유 편중 현상을 해결하려는 의도가 전혀 담겨있지 않다는 것을 더욱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8.31 부동산 대책의 본질과 한계: 노무현정권의 대국민 사기극
그렇다면 노무현 정권이 토지공개념 제도까지 운운해가며 추진하려고 하는 8.31 부동산 대책의 실내용과 이것을 통해 노무현 정권이 얻으려고 하는 숨은 의도는 무엇일까?
8.31 부동산 대책의 핵심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보유세의 실효세율을 현행 0.15%에서 2009년까지 1%로 높이고, 현행 9~36% 차등세율로 부과되고 있는 양도세가 중과돼 1가구 2주택자의 경우 최대 50%까지 단일 세율을 적용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당초 보유세액 증가 상한선을 폐지하는 방안이 검토되었지만 현행 150%에서 200%로 소폭 조정되었고, 1가구 2주택자 중과세율을 60%~70%로 적용하는 방안이 검토되었지만 50%로 하향 조정되었고, 이마저도 각종 예외규정을 두어 결국 중과 대상은 전체가구에 2%에도 못 미치는 20만 가구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예상대로 강력한 조세저항을 핑계로 애초 검토되었던 안에서 후퇴에 후퇴를 거듭해 발표된 이번 부동산 대책은 실제 집값 하락에는 큰 영향이 없고 다만 일시적으로 부동산 매매거래가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대체적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친절하게도 부동산 거래 위축을 방지하기 위해 현재 4%인 정도인 거래세율을 0.5%포인트 낮추는 방안을 포함시켰지만 결국 이번 부동산 대책에 대해서 당장 부동산을 처분할 필요성이 없는 강남 '큰 손'들의 손익계산은 이미 끝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애초부터 실질적인 집값 안정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이번 부동산 대책에서 오히려 주목해야할 것은 바로 ‘개발부담금제’의 시행이다. 현재 개발부담금제의 구체적인 안으로는 ‘국토의 이용 및 계획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기반시설부담금제’가 있다. 주된 내용은 기업도시와 혁신도시 등 대규모 국책 사업과 재건축, 재개발에 따른 초과이익을 국가가 환수해 도로와 지하철, 공원, 학교 등 공공의 목적에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당초 2007년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정부와 여당은 이번 부동산 대책을 계기로 2006년부터 조기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언뜻 보면 토지공개념 제도의 삼대축 중 하나였던 개발부담금제의 시행을 통해 마치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고 투기로 발생한 이익을 환수해 공공시설 확충에 사용하겠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참여 정부 출범 이후 국토 균형발전과 경제 활성화를 위한다는 미명아래 행정중심 복합도시, 기업도시 혁신도시 건설계획을 발표해서 전국적인 땅값 상승을 주도해온 노무현 정권이 다시 여기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환수해서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결국 기반시설부담금제의 근저에는 기업도시와 혁신도시 개발 등 대규모 국책 사업 시행에 따른 재정 부담을 민간부문에게 떠넘기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토지 공개념 제도라는 탈을 쓰고 당연히 국가에서 책임져야 할 기본적인 공공시설 건설조차 국가에서 그 책임을 포기하겠다는 것을 선언한 것이다. 정부에서는 대규모 개발 사업 발표를 통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지가 상승을 보장해주고 개발 사업자는 여기에서 발생한 이익 중 일부를 도로와 상하수도, 학교와 공원 같은 기반시설 설치비용에 부담하는 일종의 빅딜이 형성된 것이다. 결국 이러한 빅딜의 피해자는 개발 지역 인근에 거주하는 서민들일 수밖에 없다.
또한 이번 8.31 부동산 대책에 강남 인근의 아파트 공급 확대를 위해 거여동 특전사 부 지(58만평)와 남성대 골프장(24만평)에 약 100만평 규모의 강남 대체 미니 신도시를 추진하는 방안이 포함되었다. 이러한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직후 이 지역 일대는 벌써부터 매물이 실종되는 등 가격이 폭등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집값을 잡겠다던 정권이 여전히 부동산을 하나의 투기의 대상으로 적절하게 관리하고 부동산 투기를 나서서 조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부동산 대책은 결국 금융투기 시장의 위기관리 방책일 뿐이다!
사회적으로 가장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부동산 투기 문제는 단순히 한국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전역에서 경제 위기를 지연시켜 온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부동산 경기의 호황이었다. 미국 전역의 주택가격은 지난 1년 동안 사상 최고 수준인 평균 13.6% 상승했고, 심지어 텍사스 리오 그란데 지방의 쓸모 없는 사막 지대 땅값이 최근 6개월 사이 무려 12배나 뛰어오르는 등 미국 전역이 그야말로 투기장으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996년부터 7년 동안 4배 가까이 급등했던 호주의 주택 가격이 최근 연이은 금리 인상으로 인해 하락세를 보이자 이것을 세계 부동산값 거품 붕괴의 조짐으로 해석하는 견해들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실물 경제에 기반 하지 않은 부동산 거품은 금리인상과 경기침체 등 다양한 원인들이 의해 언제든지 그 거품이 붕괴될 위험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8.31 부동산 대책은 정치적으로 노무현 정권이 하반기 주요 과제로 상정한 극심한 사회양극화 해소와 사회 통합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현할 수 있는 계기로, 경제적으로는 부동산 시장의 과도한 거품에 대한 적절한 관리를 통해 금융 투기 시장의 급격한 붕괴를 제어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부동산과 주식 투자자금의 성격이 상이하고 장기적으로 동반재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곧바로 둘 사이에 직접적인 자금이동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부동산에 대한 기대수익률이 떨어지면 시중 유동성 중 일부가 증시로 흘러 들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떠돌고 있는 부동자금 성격의 머니마켓펀드(MMF) 수탁고는 올해만 23조원 가까이 급증하며 지난 24일 기준으로 82조6461억 원을 기록 중이고 은행·자산운용사 등 금융기관의 단기수신은 7월말 현재 434조6000억 원으로 한 달 사이 13조3000억 원이나 증가했다. 최근 주식시장이 비교적인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꾸준히 상승추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도 이 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5일 KBS의 '참여정부 2년 반, 대통령에게 듣는다' 프로그램에 출현해 부동산 대책과 관련 "집을 사려다가 최근 주식에 간접투자 했다"며 "내가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나는 주식에 걸었다는 것"이라는 발언을 통해 더욱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다.
결국 이번 부동산 대책은 노무현 정권이 강조하고 있는 사회 양극화 해소와는 무관하게 과도한 부동산 거품의 급작스런 붕괴를 방지하고 상대적으로 유동성 자산을 주식시장으로 유인하는 금융시장에 대한 위기관리 장치에 불과한 것이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비판 없는 '부동산정책'의 불가능성
최근 새로운 부의 상징으로 떠오른 강남의 타워 팰리스의 그림자 밑에는 군부독재 시절 정권에 의해 강제이주 되어28년이나 거주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소지를 인정받지 못해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현재 한국사회의 극단적인 양극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주거는 부의 축적 대상이 아니라 당연한 인간의 권리이다!!”라고 절규하고 있는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또한 이번 부동산 대책과 관련해 일부 시민단체와 같이 ‘투기’를 억제하고 ‘투자’를 보호하는 ‘시장 친화적 토지공개념’과 같은 정책적 대안을 요구하는 것이 결코 대안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부동산 투기로 인해 발생하는 구조적 불평등과 같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양산하는 다양한 빈곤의 문제에 맞선 투쟁이 우리가 지향해야할 사회운동의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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