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블레어-노무현은 전쟁범죄자다
- 이스탄불에서 열린 이라크국제전범재판
이라크인들이 터키로 오는 길은 쉽지 않았다. 재판장 주위에 그림을 전시했던 이라크 화가 살람 오마르씨는 디아르바카르 공항(터키 남부의 쿠르드지역)에서 2일 동안 억류되어 있었다. 억류된 이유는 첫째, 이라크인이라 테러의 위험이 있다는 것과 둘째, 그의 그림에 배경으로 칠한 흰색 아크릴 물감이 코카인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2일 동안 감금된 후에야 풀려나 재판에 참가한 살람 오마르씨는 이라크에서 이미 많이 겪었던 일이라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리고 재판 둘째 날 이라크 인권운동가인 후다 알 누아이미씨의 증언은 이러한 일이 이라크 민중들에게는 이미 일상이 되었다는 것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그는 "이라크의 일상은 '감옥같은 점령'이다. 거리는 온통 검문소이며, 미국은 저항세력의 근거지라고 생각되는 지역에 대해서는 적외선 카메라로 집안을 감시하고 있다. 누구라도, 어떤 혐의도 없이 검문에 의해 혹은 한 밤중의 급습에 의해 체포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라크국제전범재판 (WTI : The World Tribunal on Iraq)
이러한 잔혹한 일상을 기록하고 역사에 남겨 범죄자들을 심판하기 위해 전 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이라크국제전범재판(WTI)을 열었다. 6월 24일부터 26일까지 진행된 WTI는 작년 한국에서 진행된 '부시-블레어-노무현 전범민중재판'의 연장선에 있다. 한국에서처럼 각 국(주) 정부의 죄를 심판하고 다양한 관점으로 전쟁을 바라보고 기록했던 런던, 뭄바이, 코펜하겐, 브뤼셀, 뉴욕, 일본, 스톡홀름, 로마, 프랑크푸르트, 스페인, 튀니지, 제네바 등 20여개 법정의 2년에 걸친 과정을 총화하는 행동인 것이다. 아룬다티 로이를 대표로 한 12명의 배심원단이 꾸려졌으며, 증언과 변론을 위해 54명의 증인과 변호인단이 모였다.
터키의 반전운동
WTI는 2003년 5월 자카르타 평화회의에서 발의되고 2003년 6월 26일 '정의와 평화를 위한 유럽네트워크'에서 구체화되었다. 이라크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가깝고, 오래 전부터 의지를 밝혀왔던 터키에서 개최하기로 결정되었다. 터키 민중들은 힘있는 반전투쟁으로 정부의 파병결정을 막았었다. 2003년 11월 당시 터키, 파키스탄, 한국정부가 파병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11월 7일 터키정부는 파병 계획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한국정부는 대규모 추가 파병을 결정짓기 위해 분주했고, 파키스탄과 터키가 파병결정을 주저하는 가운데 홀로 추가 파병을 결정하였다. 실제 터키에서는 지난 몇 년간 매우 강력한 반전운동흐름이 있었는데, 터키의 한 활동가는 "터키는 서양과 중동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 반전운동은 동양에서 좀 더 활발하게 진행되어야 하고, 반전운동의 나침반은 동쪽으로 좀 더 이동해야 한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현재 터키 반전운동에서 중요한 의제는 미군기지 폐쇄이다. 이라크를 침공하기 위한 미군의 공군전력을 재충전하고, 군사장비를 정비하는 인쥘리크(Incirlik) 미공군기지는 터키의 5개 미군기지 중 가장 큰 규모다. 이 곳은 1990년 1차 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 전역의 대규모 폭격을 위한 미군의 발진 기지였고, 1991년 중반부터 이라크 북부 상공의 "비행금지구역"을 감시·요격하기 위한 공군기지로 활용되었다. 2003년 2차 이라크 침공은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인쥘리크 미공군기지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위한 발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수많은 반전활동가들은 터키 인쥘리크 미공군기지의 폐쇄를 요구하며, 터키 정부를 WTI에 기소했다.
3일간의 재판 - 기억하고 기록해야 할 수많은 증언들
재판은 이스탄불의 톱카피 궁(Topkapi palace)에서 진행되었다. 톱카피궁은 오스만 제국의 황제(술탄)들이 거주하던 곳이다. WTI 사무국의 한 활동가는 "제국의 영광을 상징하는 이곳에서 전범을 단죄한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며,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하던 오스만 제국의 전초지였던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똑똑히 보아야 한다"고 했다. 재판이 열린 톱카피 궁안의 임페리얼 민트(Imperial Mint)는 날마다 수백명의 사람들로 꽉 찼고, 증인들의 고통, 분노를 담은 증언들이 이어지는 현장은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한 하나의 몸부림이었다.
재판에서는 6개 세션으로 심리가 진행되었다. 국제법과 국제기관의 역할 각 국 정부의 책임 언론의 책임 이라크 침략과 점령 문화유산, 환경, 세계의 자원 지구적 안보환경과 미래의 대안으로 전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제시해주었다.
'성적 폭력'이라는 주제로 증언을 한 이라크여성문화센터의 활동가 하나이브라힘씨는 "80%의 실업률 속에서 남성들은 경제적 능력은 완전히 상실했고, 이런 상황에서 경제적 수단으로 성매매가 권장되고 있다. 특히 미군들이 저항세력을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가정집을 급습하여 여성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남성들에게 혐의가 있다면 그들을 가두어 둔 채 집을 폭파시켜 버린다. 그리고 여자들은 어디론가 끌려가고, 이 여성들이 강간을 당하는 것은 너무나 흔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녀는 "우리는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감옥에 갇히지 않은 여성들의 모든 고통을 기억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시는 여성에게 가한 모든 범죄들에 대해 전혀 사과하지 않았다"라며 지금 이라크에서 성적 폭력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거듭 강조했다.
점령감시센터 사무국장직을 맡았던 이라크인 이만 카마스씨는 일상생활의 붕괴라는 주제로 증언을 하였다. 그는 "점령 때문에 공포분위기가 조성되어 있고 일상은 완전히 파괴되어 있다. 전에 없이 검문이 강화되고 있다. ID카드가 새롭게 만들어졌는데, 이 ID카드에는 종교, 인종에 따라서 분류되는 번호가 매겨져 있다"고 말했다.
"병원과 박물관 대학, 공공청사들은 주요한 공습 대상이었다. 팔루자의 경우 병원이 주요한 공격대상이었고, 공습을 피한다는 명목으로 의사를 가두어 놓았기 때문에 응급상황이 생겨도 누구 하나 치료받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미국과 영국정부의 죄
국제전범재판은 미국과 영국정부를 전쟁범죄자로 판결하였다. 그들은 UN헌장과 뉘렘베르그 원칙(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렸던 전범재판에 의해 승인된 국제법 원칙)에 위배하여 최악의 침략전쟁 범죄를 계획하고 준비하고 수행했다. 재판 과정에서 증거로 제출되기도 했던 최근 누설된 2002년 7월 23일의 다우닝 스트리트(영국 총리관저) 메모는 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 "군사행동이 현재 불가피한 것처럼 보인다. 부시는 테러리즘과 대량살상무기의 연루를 정당화하며 군사행동으로 사담후세인을 제거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 정보와 사실들은 변한 게 없었다." 미국과 영국정부는 오래 전부터 계획된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담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신화를 조작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클러스터 폭탄, 열화우라늄, 화학무기 등을 무차별적으로 사용했는데, 열화우라늄의 표적이 된 지역에 거주하는 5세 이하의 어린이에게 백혈병이 급격히 증가했다는 전문가의 세부적인 증언이 법정에 제출되었다. 2003년 팔루자에서 12명 이상의 평화적인 시위대를 살해한 것을 시작으로 시위대에 대한 살인적인 폭력을 사용하였고, 집단처형을 비롯한 이라크 민중들에게 가한 근거없는 형벌을 가하였다.
"의지의 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은 공범이다
이러한 범죄에 대한 대가는 미국과 영국정부 뿐 아니라 이에 동조하고 협력한 모든 정부가 치러야 한다. 그들은 미국의 더럽고 추악한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했을 뿐 아니라, 이라크 민중의 삶의 권리를 침해한 공모자이다. 남반구 포커스 소장인 월든 벨로는 "이라크 침략은 1939년 나치와 같이 모욕적인 행동이며, 의지연합 50개국은 루마니아, 헝가리,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이 독일 나치를 위해 일했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하며 의지의 연합을 혹독하게 비난했다. 특히 미국-영국에 이어 파병 3위 국가인 한국정부는 "의지연합 내 다른 동맹국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익, 평화재건 운운하며 몰래 파병을 강행한 한국정부는 또 다시 국방장관이 파병연장을 언급함으로써 더 큰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이것이 이라크 민중과 전 세계 민중에 대한 씻을 수 없는 범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UN의 죄
WTI 배심원들은 UN이 전쟁을 막지 못한 것 뿐 아니라 점령기간 동안 국제법 위반에 대해 책임을 묻지 못했다고 판결하였다.
특히 필 쉬너는 "이라크 점령이 안보리 결의안 1483 결의안 따르는 것이라고 할 때, UN 안보리에 이를 승인할 권한이 있는지 없는 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며 "안보리 결의에 따른 점령 권한 행사가 인권을 유린하고, 훼손되는 것을 보고 있음에도, 이같이 묻는 것은 편협한 질문이다. 점령과정에서 수행한 활동과 정책의 불법성을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현재 이라크에서 일어나는 모든 범죄에 대한 UN의 책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권고
WTI의 배심원들은 6월 27일 기자회견을 통해 몇 가지 권고안을 발표했다. 연합군은 이라크에서 즉각적이고 조건없는 철수를 할 것, 연합군 정부들은 그들의 불법적 침략과 점령이 야기한 인도적, 경제적, 생태적, 문화적 파괴에 대해 이라크에 전쟁 배상과 보상할 것, 관타나모 수용소와 미군의 다른 모든 해상 수용소는 즉각 폐쇄할 것, 고의적으로 거짓말한 언론인, 인종적 종족적 종교적 증오를 조장한 상업언론사, 이 전쟁으로부터 이윤을 얻은 다국적기업 총수들에게 책임을 묻는 과정을 시작해야 할 것 등이다.
또한 전 세계 민중들이 직접적인 이윤을 획득하는 미국과 영국의 기업들에 대항하는 행동을 개시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한 기업들은 핼리버튼, 벡텔, 칼라일, CACI(네트워크솔루션업체), 타이탄그룹, 켈로그 브라운&루트(핼리버튼의 자회사), 딘코프(사설용병회사), 보잉, 엑슨모빌, 텍사코, 영국석유 등이다.
또한 이라크를 고소해서 '보상금'을 받아낸 토이저러스(미국의 장난감회사), 켄터키프라이드치킨, 쉘, 네슬레, 펩시, 필립모리스, 쉐라톤, 모빌등에 대항한 행동을 제안한다. 저항행동은 사무소 폐쇄, 불매운동, 주주에 대한 압력과 같은 직접행동의 형태를 취할 수 있다.
그들은 우리를 대표할 수 없다
지난 해 한국의 전범민중재판에서 증인이었던 살람 가드반씨도 이곳에 참가했다. WTI측의 공식 증인은 아니었지만 한국 참가단이 이스탄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힘겨운 걸음을 했다. 그는 한국에서 이스탄불까지 이어지는 전범재판을 보며, 이라크에서도 이 같은 전범재판을 꼭 치러내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은 너무나 위험하고 힘든 일이지만 이라크인들의 손으로 전쟁범죄자들을 심판해야 한다며 한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과 연대를 당부했다. 이스탄불에서 재판이 열리는 시간에 한국에서는 김선일 씨 1주기 추모 반전집회가 열렸다. 피랍사실이 밝혀진 이후에도 무리하게 파병강행 방침을 밝혀 김선일씨를 죽게 한 노무현정부를 민중의 이름으로 기소한 것과 같이, 참가자들은 각 정부를 전쟁범죄자로 기소하고 그들이 우리의 대표가 될 수 없음을 천명하였다. 그들은 전쟁범죄자일 뿐이며, 전 민중의 양심으로 그들을 심판할 것을 외쳤다. 더 이상 이 씻을 수 없는 범죄가 지속되지 않기 위해 미국은 점령을 끝내고 이라크에 있는 모든 군대는 철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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