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의 주간지 사회와노동

삼성의 금융적 팽창과 민중의 삶은 정확히 반비례한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고려대학교 명예철학박사 학위수여 해프닝에 부쳐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명예철학박사 학위수여 해프닝

지난 5월 2일 고려대학교에서는 삼성 이건희 회장에게 “탁월한 식견과 새로운 경영으로 기업경영은 물론 한국사회 전반의 패러다임을 크게 바꾸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 실현에 앞장서는 등 사회에 크게 공헌한 점을 높이 샀다”며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하기 위한 일대 해프닝이 벌어졌다. 당일 150여명의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이 회장이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무노조신화를 통해 반인권적 노동탄압에 앞장서 온 만큼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을 자격이 없다며 학위수여식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에 보수언론과 재계는 서로 뒤질세라 ‘반지성주의’니 ‘폭력적’이니 하는 수사를 앞세워 이날 시위에 나선 고려대학교 학생들을 맹비난하고 나섰다. 고려대학교 학교당국은 한술 더 떠 부총장 이하 보직교수들이 전원 사퇴하는 쇼까지 벌이며 시위 학생들을 징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으며, 급기야 노무현 정권도 한때 ‘삼성맨’이었던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을 앞세워 ‘반기업 정서’를 운운하면서 이러한 마녀사냥 대열에 동참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돈벌이가 철학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이 금시초문이라는 사실은 차치해 두더라도, 설령 돈벌이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잘만 하면 철학이 될 수 있다고 치더라도, 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대단한 장사꾼을 그저 아버지로 둔 것에 불과한 재벌 2세에게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한다는 것은 도대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질 않는다. 그렇다면 애초부터 말이 되지 않는 한낱 해프닝에 불과했던 이건희 회장의 학위수여식 논란이 이처럼 그 파장이 그칠 줄 모르고 일파만파 커지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고려대학교 학교당국과 보수언론, 재계와 노무현 정권은 또 이 조그만 해프닝에 왜 이리도 호들갑을 떨고 있는가? 도대체 정·재계 모두가 이토록 자발적으로 이건희 쇼의 엑스트라가 되게 만드는 삼성의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 그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인재(人災)와 기술(欺術)을 바탕으로 한 세계 초일류기업 삼성’: 인민의 재앙과 초절정 사기술책으로 성장한 삼성

실로 지난 68년간의 삼성의 역사는 ‘인민의 재앙’(人災)과 초절정의 ‘사기술책’(欺術)을 바탕으로 한 더러운 정경유착과 부정축재, 노동탄압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초 삼성의 창업주인 이병철은 일제 시대였던 1938년 적극적인 친일행각과 조선총독부의 협조를 기반으로 부동산과 양조사업을 시작해 사업의 밑천을 마련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이병철은 이승만 정권과 결탁해 당시 국내 총자본금의 91%에 육박했던 적산과 미국의 원조자금으로 사업자금을 충당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이병철은 전쟁으로 말미암은 물자 부족과 물가급등을 이용해 민중의 피를 빨아먹고 급속하게 부를 쌓아 오늘날의 삼성의 기틀을 마련했다.
뿐만 아니라 삼성은 박정희 정권과 철저히 유착해 1만여 건에 달하는 밀수를 저지르고, 중화학공업, 기계, 화학, 전자, 호텔 등의 전 분야로 사업을 확대했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군부독재의 비호 하에 고속도로 건설, 차세대 전투기, 반도체, 율곡사업 등의 온갖 이권을 독점적으로 거머쥘 수 있었으며, 그 대가로 이병철은 여덟 차례에 걸쳐 모두 2백20억 원을 전두환 정권에 헌납했다. 이병철의 뒤를 이은 재벌 2세 이건희도 아홉 차례에 걸쳐 모두 2백50억 원을 노태우 정권에 헌납했다. 이 때문에 노태우 정권은 차세대 전투기, 상용차 사업, 건설 사업 등의 각종 이권을 삼성에 고스란히 안겨 줬다. 김영삼 정권은 삼성이 자동차 사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허가해줬고, 그 답례로 삼성은 1997년 대선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에 10억 원의 대선자금을 건넸다. 이것이 오늘날 삼성이 소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밑천이다.
한편 이 같은 정경유착과 부정축재의 이면에는 그보다 더 치졸하고 악랄한 노동탄압의 역사가 숨어있다. 실로 창업주인 이병철에서부터 시작된 삼성의 무노조 신화는 극악한 인권유린과 폭력의 역사 그 자체이다. 삼성은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하려하는 즉시 온갖 회유와 협박, 납치와 감금으로 노동자들을 탄압했다. 일례로 지난 1999년 삼성SDI에서는 노조 설립을 주도하던 노동자들이 보름 가까운 납치와 감금, 협박과 회유를 통해 ‘노조 포기 각서’를 강요당했던 사건이 있었다. 이 때문에 그 당시 한 노동자는 행방불명이 된 적도 있으며, 이에 항의했던 노동자는 삼성으로부터 고소를 당해야 했다. 또한 얼마 전 핸드폰 불법복제를 통한 위치 추적 사건은 삼성의 최첨단 노조 탄압의 실례를 여과 없이 보여 주고 있다. 삼성 계열사인 이마트는 노동조합을 파괴하기 위해 노동자의 어린 딸을 미행하고 접근하기까지 했다. 이마트 노동자들은 ‘이마트가 무노조 경영 이념을 갖고 있다’는, 정말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얘기하기만 해도 50만 원의 벌금을 내야 했다. 이것이 삼성 무노조 신화의 진실이다.

‘Your Hope Our Dream, 삼성’: 삼성의 희망이 바로 신자유주의 시대 정권과 자본의 꿈이다.

그런데 사실 정·재계 모두가 이토록 조그만 해프닝에도 호들갑을 떨고 이건희 회장을 찬양해 마지않는 이유는, 비단 이러했던 삼성의 부정축재와 무노조 신화가 부러워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오늘날의 삼성이 정권과 자본에 게 있어서는 ‘꿈’이라고 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가장 큰 수혜자’이자 ‘글로벌 스탠더드에 가장 적합한 발전모델’이라는 사실에 있다. 실제 IMF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속에 한국경제의 체질이 바뀌고 IT와 금융글로벌을 축으로 하는 새로운 경제 질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그 중심에 바로 삼성이 있었다. 삼성은 이제 구조조정 성공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면서 일국의 재벌 수준을 뛰어넘어 일약 전 세계 초민족화된 자본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한때 120조 원을 넘었던 삼성그룹의 2005년 현재 주식시가총액은 94조 원으로 우리나라 4대 그룹 중 현대·LG·SK그룹의 시가총액을 모두 합한 88조 원보다도 더 많은 수치이며, 범 삼성그룹이라 할 수 있는 CJ·신세계·한솔·새한·중앙일보·보광그룹 등까지 합치면 그 규모가 약 108조 원에 이른다. 이는 구래의 기준인 자산과 매출 규모 면에서는 아직 국내 2위에 머무르고 있는 삼성의 놀라운 금융적 팽창을 반증한다. 특히 삼성의 주력인 삼성전자는 7백50억 달러의 시가총액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세계 50위 안에 드는 기업으로, 세계적인 브랜드 평가기관 인터브랜드(Interbrand)에 의하면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는 무려 52억 달러로 추정돼 ‘펩시콜라’와 맞먹는 수준이라니 가히 글로벌 기업이라 할 만하다.
삼성이 이렇게까지 금융적으로 팽창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은 무엇보다도 IMF를 계기로 한 대대적인 금융화 구조조정과 IT업종 집중화, 대규모 인력감축과 노동유연화로 꼽을 수 있다. 삼성은 우선 IMF를 계기로 주주이익을 최고로 중시하는 신경영 방침을 발 빠르게 수립하고 기업의 모든 지배구조가 이에 적합하도록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그리고 초국적 기관투자가들의 입맛에 맞는 ‘미래가치형 투자종목’인 IT와 모바일을 중심으로 삼성그룹 전체의 업종을 재정비했다. 그 결과 삼성 내 IT 전자 관련업종의 외국인 지분율은 불과 몇 년 만에 50%를 훌쩍 넘기게 되었고 매출은 전체 매출 대비 40%로 집중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정보통신과 반도체, 디지털미디어가 각각 30%로 도합 90%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삼성의 주식시가총액은 IMF 직전과 비교해 불과 2년 만에 무려 9.1배나 증가했고 특히 주력인 삼성전자의 경우 98년보다 무려 20배나 증가해 평가차익만 42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기간 현대가 4.6배, LG가 3.0배 증가에 머무른 것에 비하면 삼성의 금융화 전략이 얼마나 발 빠르고 적극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삼성은 이렇게 고평가된 주가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어처구니없게도 매해 2조 원에서 4조 원 가량의 자사 주식을 매입해 ‘소각’하고 있다.
또한 이 같은 삼성의 금융적 팽창은 ‘금융화의 동전의 양면’이라 할 수 있는 대규모 정리해고와 강도 높은 노동유연화를 필수적으로 동반했기에 가능했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가 있다. 실제 삼성은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1997년 말 59개였던 계열사를 디지털·벤처 업종의 신규 설립에도 불구하고 45개로 축소 정리했고, 이 과정에서 231개의 소규모 분사가 생겨났으며, 그 밑에는 각각 수 천 개의 하청업체와 불법 파견업체들이 딸리게 되었다. 이 때문에 1997년 말 16만7천명에 이르렀던 삼성 노동자들은 1999년 말 11만 3천명으로 2년 사이 무려 32%가 줄어들었으며, 1만 5천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은 하청업체로 소속을 바꾸거나 비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이 과정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소수의 ‘삼성맨’들은 그 자긍심이 무색할 정도로 가혹한 노동통제관리 시스템 속에서 휴일도 없이 기계처럼 일해야 했고, 이들을 떠받치고 있는 또 다른 수 만 명의 불안정 노동자들은 노조도 없이 훨씬 더 비인간적인 노동조건과 저임금을 감내하며 가혹하게 착취당해야 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삼성의 ‘글로벌 스탠다드화'와 ‘어닝 서프라이즈’를 있게 한 비결이다.
이처럼 민중의 고혈을 착취해 이루어진 삼성의 금융적 팽창은 그 효과가 비단 삼성 내로 국한되지 않았다. 실제 삼성의 선도적인 구조조정은 신자유주의 시대 모든 기업의 발전모델이자 노무현 정권의 정책전략 길잡이가 됨으로써 현재와 같은 대규모 실업과 폭발적인 불안정 노동층의 양산에 크게 이바지했다. 뿐만 아니라 그 효과는 이제 ‘소니’나 ‘도요타’와 같은 초대형 글로벌 기업들마저 삼성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게 할 정도로 가히 초민족적이다. 이처럼 본사를 한국에 두고 있을 뿐 이미 금융적으로 초민족화된 글로벌 기업 삼성의 성장은 이제 민중의 삶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히려 삼성의 금융적 팽창은 민중의 고혈을 착취해 이루어진 것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민중의 삶과 정확히 반비례하기까지 한다. 이렇듯 명백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마치 오늘날의 삼성이 우리나라 모든 서민들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양 호도하고 있는 보수언론과 정·재계의 행태는 말 그대로 혹세무민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치졸하게도 민중의 피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편승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오늘날 모든 자본가들의 ‘삼성에 대한 부러움’이 숨어 있다. 이것이 아직까지 ‘귀족노조’와 입씨름이나 하고 있는 다른 자본가들과 노무현 정권이 앞 다투어 이번 해프닝의 엑스트라로 나서고 있는 진정한 이유이다.

‘또 하나의 가족, 삼성’: 재벌가와 대학의 밀월관계

한편 일부 언론에서는 이번 해프닝을 두고 480억 원이나 대학에 기부한 고마운 사람에게 학생들이 너무 무례했다는 다소 점잖은 논조를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대학에 대한 자본의 투자가 어떠한 의미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이다. 실로 대학에 대한 자본의 투자는 대학이 삼성을 비롯한 독점재벌가들의 ‘또 하나의 가족’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사실 자본이 대학에 투자하는 것은 자신들이 벌어들인 소득의 일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학을 기업에 종속적인 하위파트너로 재편하고 보다 기업의 입맛에 맞는 유연화된 노동력을 생산하겠다는 적극적인 전략에 다름 아니다. 이번 해프닝이 있었던 고려대학교만 보더라도 “물리학과의 경우 디스플레이·반도체 물리학과로 이름을 바꾸고 삼성전자와 손잡아 실질적인 지식과 기술을 지닌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문 인력을 키워나가겠다”고 어윤대 총장 스스로가 밝혔듯 이미 산학연계를 통한 대학의 자본종속화와 신자유주의화는 날로 심화되고 있다.
실제 자본은 소위 상위권 대학에는 산학연계를 통해 소수의 골드칼라층을 집중육성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한편, 소위 하위권 대학에는 산학연계를 통해 다수의 불안정 노동층을 형성하는 차별화된 전략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대학에서부터 자본의 전략에 맞게 노동력을 서열화함으로써 자본이 손쉽게 취업인력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게 해주는 효과를 갖는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대학인들은 대학 생활 내내 비판적 지성을 갖출 여력도 없이 각종 학점경쟁과 자격증경쟁, 취업경쟁에만 매몰돼 허덕이고 있다. 이번 해프닝을 두고 혹시 취업에 불이익이 생기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일부 고려대학교 학생들의 우려가 지극히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자본은 이러한 투자의 과정에서 자기업의 이미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홍보효과도 누리고 기부금에 대한 세제 혜택까지 받는다. 한 마디로 ‘일석삼조’를 누리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삼성과 같은 대기업 재벌들은 이제 아예 대학을 직접 소유하기 시작하고 있다. 비전 2010을 발표하고 도저히 대학이라고 보기 힘든 ‘차별화된 취업알선소’로 자신의 전망을 밝혀 나가고 있는 삼성 소유의 성균관대는 이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덧붙여: 부끄러움을 모르는 ‘어른’들의 자성을 촉구한다.

이번 해프닝을 두고 몇몇 ‘어른’들은 삼성의 부도덕성을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학생들의 ‘폭력’ 행위는 결코 용서될 수 없는 ‘철부지 같은 짓’이라 꾸짖곤 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현재 고려대학교 학생들 중 일부는 심지어 ‘평화고대’라는 이름으로 시위 학생들을 조직적으로 비난하는 행동들을 전개하고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재벌과 대학 간의 이러한 부도덕한 학위 매매를 저지하기 위해 학생들이 몸싸움을 벌인 것이 ‘폭력’이라고 한다면, 수많은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고 장시간 저임금의 불안정 노동에 허덕이게 하며, 그나마 노조라도 만들어보려는 노동자들을 납치·감금·폭행한 삼성의 행위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역으로 이번 해프닝에서 학생들이 학위수여식을 저지하기 위해 불법적으로 핸드폰을 복제해 위치추적이라도 했던가? 아니면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학위수여식에 참가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이라도 했던가? 무노조 신화로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온갖 부정축재와 편법상속으로 민중들을 울려온 일상적 폭력집단을 뒤로 한 채 대학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을 표출한 학생들을 두고 그저 ‘철부지’니 ‘반지성주의’니 하는 식으로 매도한다면, 그들이야말로 ‘철이 든 어른’으로서의 자격이 있는 것일까?
특히 이번 해프닝을 계기로 부총장 이하 보직교수 전원이 총사퇴를 결의하고 시위 학생들에게 징계위협을 가하고 있는 고려대학교 학교당국의 반응은 정말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전직 대통령이 정문조차 넘지 못하는 수모를 당하고 돌아갔을 때에도 태연하던 이들이 모든 학문적 양심을 480억 원에 팔아치우고 재벌총수에게 굽실거리는 꼴이란 정말 실망스럽다 못해 측은하기까지 하다. “인간보다 돈을 중시하는 이에게 철학박사 학위를 팔아먹고도 당신들이 더 이상 인문학의 위기를 운운할 수 있겠냐”는 인터넷 상의 한 고려대학교 학생의 울분에 찬 토로는 신자유주의 시대 대학의 위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뼛속깊이 실감하게 한다. 이참에 사직서를 제출한 고려대학교 교수들은 보직만 내놓을 것이 아니라 아예 교수직까지 반납하고 학교를 떠났으면 한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돈과 이익’에 따라 몰려다니는 교수들의 모습을 보고 학생들은 무엇을 배울 것인가? 대학을 더 상품가치가 높은 노동력을 찍어내는 ‘취업알선소’쯤으로 여기는 교수들이나, 부끄러움을 모르고 학생들을 '폭력집단 철부지'로 매도할 줄이나 아는 ‘어른’들 속에서, 그래도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학문의 정신이 있음을 당당히 얘기하고 살아있는 비판적 지성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고자 한 고려대학교 학생들에게 늦게나마 박수를 보낸다. 나아가 삼성과 같은 악질자본들의 탄압에 맞서 힘겹게 싸워왔던 노동자들의 투쟁에 오랜 기간 꿋꿋이 연대해왔던 학생운동을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노동자 사회운동이 적극적으로 나서 이들을 지지 엄호해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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