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인간사냥 단속추방과 이주노동자들의 상태
2005년 8월이 되면 추가로 11만 7천명의 이주노동자가 비자 만기로 미등록 상태가 된다. 그러면 기존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18만 8천명을 더해 30만 5천명이 미등록 상태가 되는 것이다. 정부 스스로 올해 도입하기로 한 고용허가제 적용 인력이 3만 9천명인데 실제 도입된 인력은 지금까지 불과 4000여명에 불과하다. 정부는 올해 연말까지 14만 5천명을 출국시켜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16만 명 정도수준으로 감소시킬 계획이라고 하나 무리한 단속추방 정책은 상식이하의 인권침해와 그에 따라 반발만 부를게 뻔하다. 즉 이미 현실에서 고용허가제는 거의 작동되지 않는 것이고 오히려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늘어나고 있다. 더욱이 최근 출입국관리소는 단속과정에서 이주노동자로 하여금 동료들을 밀고하게 하는 ‘프락치’행위까지 강요하는 등 도를 넘어선 인간사냥을 자행하여 규탄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출입국과 경찰까지 가세한 합동단속이 이주노동자 밀집지역에서 일상적으로 자행되고 있으며,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면서 이주노동자들이 실업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단속을 악용하여 사업주들이 임금을 깎거나 체불하는 등 현장에서 문제는 확대되고 있다. 단속추방과 열악한 노동조건의 이중고가 더욱 깊어진 것이다.
그리고 고용허가제 하에서는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고 노동3권이 보장되지 않는다.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게 되어 있어서 사업주가 모든 노동조건을 일방적으로 결정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계약을 거부하면 계약해지가 되고 이는 불법체류자가 되기 때문이다. 인권침해와 비리의 온상인 산업연수제도 역시 온존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 단속추방 중단, 노동3권 보장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현재와 같은 정부정책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지속적으로 양산하고 그에 대한 단속추방과 인권침해라는 악순환을 확대재생산할 뿐이다.
이주노동조합 건설의 역사적 의미
2003년 11월부터 2004년까지 380일 동안 이주노동자들은 명동성당에서 ‘강제추방 저지와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를 위한 농성투쟁’을 전개했고 여기에 민주노총을 비롯하여 많은 사회운동 진영이 함께 했다. 고용허가제 실시를 앞두고 정부가 대대적으로 자행하는 살인적인 인간사냥에 맞서 전국의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생존권과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국적과 인종을 불문하고 노동자의 이름으로 한데 모여 1년이 넘도록 끈질긴 투쟁을 전개했다.
노무현 정부의 단속추방에 내몰려 10여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고 투쟁의 과정에서 함께 하던 이주노동자들이 정부의 표적단속에 의해 폭력적으로 연행되어 강제로 본국으로 출국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 ‘이주노동자도 노동자다, 노동권을 보장하라’, ‘노동자는 하나다, 한국노동자 이주노동자 단결하여 노동비자 쟁취하자’는 요구는 운동진영 전체에, 나아가 한국사회 전반에 뚜렷한 자국을 남겼다. 또한 이러한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더욱 조직적이고 투쟁적인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을 전국적인 규모로 건설해야 한다는 대중적인 열망이 확인되고 공유되었다.
그 연장선에서 지난 4월 24일(일) 민주노총에 결집한 100여명의 이주노동자들은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위원장을 비롯한 임원을 선출하였다. 한국 노동운동사상 최초의 독자적인 이주노동조합을 결성하는 순간이었다. 이주노동조합의 건설의 의미를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10여 년에 걸친 이주노동자들의 피맺힌 투쟁의 결실이라는 점이다. 1990년대 정부 정책으로 본격적인 이주인력이 유입되면서 브로커의 착취, 사업장 인권유린, 산업재해, 임금체불 등 이루 말할 수도 없는 인간이하의 삶에 대해 이주노동자들은 매시기 저항을 조직했다. 인권과 노동권침해 및 산업재해 문제를 고발한 이주노동자 11명의 경실련 농성(1994년), 산업연수제 폐지와 노동권을 요구한 산업연수생 13명의 명동성당 쇠사슬 농성(1995년), 집회결사의 자유 쟁취와 단속추방반대, 노동비자 쟁취를 위한 명동성당농성투쟁(2002년), 외국인보호소 내 최초의 단식투쟁(2002년), 고용허가제 반대투쟁(2003년), 강제추방 저지와 미등록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를 위한 명동성당 농성투쟁(2003-2004년) 등 절박한 투쟁을 계속해왔다. 그 이면에는 손가락이 잘리고 상습적인 구타와 욕설에 시달리며, 최근의 노말헥산 중독 산업재해 등 노예와 같은 노동조건이 있었고 언제 출입국관리소에 단속되어 강제추방 될까 모르는 불법체류자의 굴레가 있었다.
둘째,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자운동의 주체로 당당히 섰음을 조직적으로 드러냈다는 의미다. 고통스러운 삶과 노동에 대해 시혜나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이 주체적으로 노동조합을 조직하여 노동자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상담소 중심의 운동을 벗어나 자주적인 이주노동자운동을 개척하기 위한 흐름은 ‘이주노동자 노동권완전쟁취와 이주·취업의 자유 실현을 위한 투쟁본부(이노투본)’의 결성(2000년), 서울경인평등노조 이주지부 결성(2001년)으로 이어졌고 그것이 전국적인 이주노동조합을 지향하는 서울경인 이주노동조합 결성까지 이르렀다. 물론 아직 규모 면에서는 크지 않기 때문에 이주노동자운동의 조직적 구심체로서 명실상부하게 서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셋째, 이주노동자들의 손으로 직접 건설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것을 지향한다는 의미다. 물론 한국 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의 지지와 연대는 더욱 커져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일차적으로 스스로의 삶과 권리를 스스로 쟁취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이 고민하고 조직하고 투쟁에 나서는 것이다.
노동권 쟁취와 이주노동자 주체확대는 공동의 과제
권력과 자본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과 노동권을 이중적으로 착취하면서 노예로 살 것을 강요했지만 이주노동자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노동자로서 삶과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나섰다. 서울경인 이주노조는 그 규약에서도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단속추방 반대 및 근로조건 개선과 권리 확보, 이주노동자 합법화, 노동계급의 단결과 전진을 저해하는 모든 차별과 억압 거부, 만국의 노동자 단결의 정신으로 모든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의 노동자운동 역시 노동자 단결의 정신으로 이주노동자운동을 강화하고, 노동자 국제주의의 정신으로 제한 없이 연대해야 한다.
최근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규약을 개정하여 이주노동자도 조합원 대상에 포함하였다. 이는 그간 이주노동자가 있는 제조업 사업장에서 파업 등의 단체행동을 할 때 이주노동자들이 공장을 계속 돌려 파업의 영향력이 감소하는 현실적인 상황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우리와 똑같은 노동자로서 이주노동자들을 인정하고 동지가 되겠다는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한국노동자들은 이주노동자를 국내 노동자의 일자리를 침범하는 이해관계의 대립 구도 속에서 바라보기도 한다. 이러한 사고 속에서는 이주노동자 문제가 영원히 풀릴 수 없는 골치 아픈 문제일 뿐이며, 노동자 국제연대의 당위성과 국내 노동자 계급의 보호라는 양자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자본이 인종, 성, 계층의 분할선을 이용하여 내국인과 외국인, 남성과 여성,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으로 갈라놓으면서 노동의 불안정화를 강요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속성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이주노동자 역시 가장 밑바닥의 불안정노동자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주노동자운동은 한국 노동자운동의 중요한 일부일 수밖에 없다.
결국 이주노동자 투쟁을 조직하고 연대하여 이주노동자운동의 주체를 대중적으로 확대하고 노동조합을 강화하는 것은 한국 노동자운동, 전체 민중운동의 중요한 과제다. 이에 노동자들이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동일한 노동자의 문제로 인식할 수 있도록 교육 선전을 강화해야 하고 각 지역과 산업에서 이주노동자들과의 연대를 구체적으로 현실화해야 할 것이다. 한국노동자나 이주노동자나 신자유주의가 강제하는 노동의 불안정화와 노동권에 대한 공격 앞에 놓여있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조합은 민주노총과 제 사회운동단체들과 함께 앞으로 전국이주노동자투쟁단을 건설하여 전국적으로 단속추방 분쇄투쟁과 이주노동자 노동권 쟁취투쟁, 노동허가제 쟁취투쟁 등을 전개할 것이다. 작게는 이주노동조합을 후원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이러한 투쟁에 함께 하며 이주노동자운동의 강화 발전을 위해 노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