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을 죽음으로 내모는 억압과 차별
지난 3월20일, 어묵을 팔며 하루 1-2만원의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청각장애인 김모씨가 노점단속을 당한 뒤 관할 시청으로부터 70만원의 벌금을 부과 받고 월세 30만원을 마련할 길이 없어 고민하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있었다. 같은 날 밤 9시 30분 경, 잠실대교 남단에서는 점점 심해지는 뇌병변장애로 인한 가족의 부담에 괴로워하던 최모씨(47세)가 한강에 몸을 던져 이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또한 지난 2월 18일에는 장애인 주모씨(53세)가 생계의 어려움을 견디다 못해 강서 구청 현관 앞에서 목을 매 숨을 거두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죽음은 효율성과 경쟁만을 강요하고, 공동체의 경제적 어려움이 가진 자만을 더욱 배불리는 것으로 귀결되는 비상식적인 사회에 의한 타살이다. 장애인이 지닌 차이를 철저한 차별과 배제로 만들고, 기본적인 교육권, 노동권, 이동권조차 보장하지 않는 이 땅의 정부에 의한 잔혹한 타살인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아직도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장애인들이 사회적 권리를 박탈당하고 억압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각종 통계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장애인 실업률(29%)은 비장애인 실업률(6%)의 5배가 넘고, 전체 장애인의 51.6%가 초등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이며, 장애인의 컴퓨터 활용 수준(27.6%)은 비장애인의 컴퓨터 활용 수준(66%)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그만큼 이 땅의 장애인들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고 단지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심각한 차별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 차별 철폐를 위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2001년 오이도역의 장애인용 수직형 리프트 추락 참사를 계기로 시작된 장애인 이동권 투쟁과 2002년부터 조직된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의 활동은 우리 사회에 장애인 문제의 심각성을 알려내는 한편, 장애운동을 활성화하는데 있어 소중한 성과를 만들어오고 있다.
올해에도 지난 3월24일부터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소속 장애인 30여명이 ‘대한민국에는 장애인 인권이 없다!!’는 검정색 플랭카드를 내걸고 국가인권위원회 점거 농성을 진행하고 있으며, 최옥란 열사의 기일이기도 한 3월 26일에는 제1회 전국 장애인 대회를 열어 장애해방열사의 정신을 계승하여 장애인차별철폐 투쟁에 나설 것을 선포하였다. 지난 4월 12일에는 점거 농성이 진행 중인 국가 인권위원회 앞에서 ‘중증장애인 노동권확보와 장애인연금제도 도입을 위한 한마당’ 행사가 그리고 4월15일에는 세종문화회관 뒤편에서 장애인교육권연대 주최로 ‘장애인 교육권 확보와 장애인 교육지원법 제정을 위한 전국부모결의대회’가 열렸다. 또한 4월 16일에는 제3회 장애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몸으로 쓴 장애 여성 잔혹사’라는 주제로 ‘장애’와 ‘여성’이라는 이중적인 차별에 고통 받아 왔던 장애여성들의 투쟁이 진행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2005년에도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쟁단을 중심으로 장애인 차별철폐를 위한 법률제정, 장애인 생존권 생활권 쟁취, 장애인의 사회적 권리 확보를 요구하며 차별 받는 장애인의 인권확보를 위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2005년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의 의미와 과제
그 동안 장애차별철폐 운동은 이동권과 교육권을 중심으로, 단순히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들을 진행해왔다. 그 과정에서 2004년 12월에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이 제정되기도 하고,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의식 변화, 장애 운동의 주체 재생산과 외연 확장 등의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동안 장애 운동을 주도해왔던 장애인이동권연대나 장애인교육권연대와 같은 단위의 경우 기본적으로 단일 사안을 다루는 연대체의 성격으로 인하여, 그리고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은 장애인의 날을 기점으로 하는 한시적 투쟁체의 위상을 가짐으로 인하여, 장애인 문제 전반에 대해 일상적이고 조직적인 투쟁을 수행하는 데에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장애 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기반으로 하여 현재의 장애인 투쟁이 민중 운동에 있어 단지 하나의 부차적인 부문운동으로 환원되지 않고, 신자유주의가 양산하는 다양한 억압과 차별에 저항하는 보편적인 투쟁이 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과제가 필요하다.
첫째, 보다 확장된 노동권-생활권 쟁취 투쟁이 중요하다.
UN에 따르면, 세계인구의 10%를 차지하는 장애인 가운데, 중증 장애인의 약2/3가 빈곤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대중교통 수단과 건강 서비스가 열악하거나 구비되어 있지 못한 경우, 그리고 교육, 고용 및 기타 소득기회에 충분히 접근할 수 없을 때 심각하게 타격을 받게 되는 집단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장애인의 경우, 2000년 장애인실태조사를 보면 장애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08.2만원으로 도시근로자의 평균 가구소득(233.1만원)의 46.4% 수준에 불과하고, 전체 장애인 가구의 약 62.5%가 월 100만원 미만의 소득자임을 알 수 있다. 또한 15세 이상 133만2천명의 장애인 중 경제활동인구는 63만7천명이며, 취업자 수는 45만6천명(71.6%), 실업자 수는 18만1천명(28.5%)이다. 결과적으로 97만6천명의 장애인들이 노동시장에서 배제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과 국가는 자신들이 바라는 노동력을 제공하지 못하는 장애인은 이 사회에서 평균적인 삶을 보장받을 수 없고 빈곤과 소외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라고 강요하고 있다. 이처럼 노동에서의 배제와 차별은 곧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권리에서의 차별을 재생산하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 장애인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다양한 요구들을 제기하고, 그 결과 사회복지제도 개선 등을 통해 얻게 된 혜택은 매우 소중한 것이다. 이제 이러한 성과를 더욱 발전시켜 장애인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근본적인 노동권-생활권 쟁취 투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여기에서 장애인의 노동권은 ‘노동할 권리’와 ‘노동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하는 것이며, 생활권은 이러한 노동권의 개념으로 모두 포괄할 수 없는, 다양한 삶의 문제와 관계되는 권리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투쟁은 단지 장애인차별철폐 운동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비정규직/여성/이주 등 신자유주의 지배 전략 속에서 끊임없이 분할, 배제되고 있는 여러 운동과 함께 만들어가야 할 투쟁이다. 지금까지 장애운동에 연대해왔던 사회운동의 과제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장애인을 비롯하여 이 땅에서 하나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소외되어 온 다양한 주체들의 노동권과 생활권을 제기하고, 이를 보편적인 민중의 요구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둘째, 진보적 장애 운동을 위한 실천이 필요하다.
현재의 장애 운동이 사안별 연대 혹은 한시적인 공동 투쟁체라는 위상이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장기적인 시야에서 장애민중의 삶을 변화시키고 남한 사회 변혁적인 민중운동과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계획과 입장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진보적 장애운동의 정체성과 담론을 형성하며 지속적인 현장투쟁을 벌여낼 수 있는 대안 세력의 구체화 및 이의 확장을 위한 ‘진보적 장애운동 연대체 건설’ 흐름은 매우 소중하고, 유의미하다.
새롭게 건설될 진보적 장애운동 연대체는 장애인문제를 변혁적 입장에서 분석하고 발언해 낼 수 있는 이론적-전략적 입장을 마련하는 것, 장애운동이 전체 민중운동과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기만적인 포섭과 배제의 전략 속에서 더 많은 차별을 양산하는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운동으로 발전하는 것, 그리고 그 동안 서울을 중심으로 펼쳐져 왔던 장애 운동을 전국화하고 한국 사회 전역에서 차별에 저항하는 장애인 대중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투쟁이 벌어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소통하고 조직하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하고자 한다.
사회운동, 민중운동은 이러한 진보적 장애운동 연대체 건설 흐름에 적극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장애운동을 단지 장애인의 권리만을 요구하는 투쟁으로 사고하는 것을 넘어서, 장애차별철폐 운동이 장애운동의 성장과 더불어 차별에 저항하는 다른 운동들과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도록 장애운동을 하나의 운동적 의제로서 정당하게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연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장애’와 ‘여성’이라는 이중적인 차별에 의해 고통 받는 장애여성문제에 주해야 한다.
이 사회 구조 속에서 남성보다 여성이 불평등하고 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차별 받는 상황 안에 장애 여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존재하지 않는 듯 논외로 취급되며, 이중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비장애 여성과 장애 남성보다 빈곤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출산, 육아, 보건, 위생이나 가사 등에 있어서도 비장애 여성보다도 훨씬 많은 비용들을 부담해야만 한다. 그러나 실태조사나 국민기초 생활보장 제도의 계측시행 시 장애 여성의 이러한 현실은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장애 여성의 현실이 제대로 파악될 수 있는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도 적극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장애여성은 성폭력과 성매매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지난 3월 27일 4명의 성매매 여성의 목숨을 앗아간 하월곡동 화재사건의 현장에서 구조된 장애 여성은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기도 하였고, 2003년에도 성남 성매매 집결지에서 두 명의 장애여성이 구출되었던 사례가 있었다. 이처럼 장애여성들은 교육현장에서 배제되고, 노동현장에서도 소외된 상태에서 인지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포주들이 관리하기 쉽기 때문에 성매매 현장에 놓여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장애’와 ‘여성’이라는 이중적인 차별 속에서 극심한 빈곤으로 내몰리고 극단적인 폭력과 성폭력에 의해 고통 받는 장애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장애여성 역시 하나의 당당한 투쟁의 주체로서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 장애 여성 역시 스스로의 삶의 문제에 대해서 당당하게 발언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사회 운동적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다.
420 장애인의 날을 모든 차별에 저항하는 ‘차별 철폐의 날’로 만들자!
자신을 억압하고 있는 모순에 맞서 차별에 저항하는 장애인차별철폐 투쟁은 경쟁과 효율의 원리 속에서 끊임없이 분할과 배제를 낳는 신자유주에 저항하는 가장 보편적인 투쟁이다. 더 이상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길 거부하고,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권리들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는 이번 420장애인차별폐투쟁은 이런 의미에서 더욱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또 다른 차이에 의해 차별 받는 비정규직, 여성, 이주 노동자, 빈곤 계층 역시 신자유주의의 배제와 억압 속에서 당당한 투쟁의 주체들이다. 이 주체들이 서로의 운동을 상승시킬 수 있는 연대와 공동 투쟁의 기풍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 출발로서 이번 420장애차별철폐의 날을 차이에 의한 차별로 인해 억압받는 장애, 비정규직, 여성, 빈곤, 이주 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의 날로 만들자. 나아가 앞으로 있을 노동절 투쟁에서도 이들이 당당한 주체로서 투쟁할 수 있는, 노동자의 권리가 보편적인 인민의 권리가 되고, 여러 주체들의 투쟁이 노동자들의 투쟁이 될 수 있는 단초를 만들어가자. 420장애인차별철폐 투쟁은 이런 의미에서 지속되고, 확장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