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13차 정상회의가 2005년 11월 18, 19일 부산에서 개최된다. 아시아, 오세아니아, 미대륙 21개국을 아우르는 APEC은 전 세계 GDP의 약 57% 및 교역량의 46%를 차지하고, 회원국의 인구가 전 세계의 약 44.8%(2004년 기준)에 달하는 거대규모의 경제협력체다. APEC은 1989년 창설 이후 ‘개방적 지역주의’를 표방하며 자유무역 확산의 선도적 역할을 자임해왔으나 그 기능과 실적에 대한 비판과 회의에 부딪혀왔다. APEC이 제시한 자유무역의 가능한 경로들은 실현되지 않았다. 유럽연합이나 전미자유무역지대(NAFTA) 등 역내 무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역 블록들의 배타성을 경계하면서 전 세계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를 선도하겠다던 APEC은 명목뿐인 존재로 전락하였다. 그러나 이는 APEC 프로그램의 부실로 인한 것이 아니며 APEC이 유포해 온 자유무역 신화가 붕괴되고 아시아-태평양 경제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이 첨예해진 것에 따른 것이다. 그동안 APEC은 일본을 중심으로 형성된 동아시아 수직적 하청 네트워크를 자유무역의 신화로 포장하고 미국 주도의 자유무역질서의 첨병으로서 WTO협상에 지역블록, 개도국 등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더군다나 동아시아 경제구조의 모순으로 발생한 97년 금융위기 상황에서는 APEC은 IMF 자금지원을 통해 금융자유화 프로그램을 강제하고, 9.11 테러 이후에는 미국의 대테러 전략을 지원하는 ‘인간안보’라는 포괄적인 의제 설정 등으로 돌파구를 모색해왔다. 시효가 만료된 발전주의와 자유무역의 신화는 아직까지도 전 세계 인민들을 호도하고 태평양 바다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자유무역 신화
세계경제에서 하나의 지역으로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출현은 처음에는 일본의 경공업을 위한 시장과 원료에 대한 접근수단을 보장해줌으로써 일본 경제를 재건하려는 미국의 시도에 기반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를 제패한 미국은 냉전정책에 기반을 둔 전후 세계경제 복구책을 내놓으며 일본에 대한 집중적 지원을 수행했다. 미국은 일본에 미국의 기업이 진출하지 못하도록 하고 대미 수출을 적극 개방하는 ‘역개방 정책’을 펼쳤고, 일본은 생산의 배후지(경제적 식민지)를 요청한다. 남한과 대만 등이 배후지로 통합되면서 60년대 일본의 경제기적과 70년대 남한과 대만의 경제기적이 가능했던 것이다.
동아시아 경제발전과정은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와 위계적으로 연결된 일본의 하청 네트워크들의 확장을 통해 성취되었다. ‘날으는 기러기 떼(flying geese)’ 발전(일본을 선두로 하여 아시아 국가들의 산업의 육성과 발전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짐. 이전과정에서는 앞선 국가의 직접투자가 매개됨.)이라는 명목 하에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중심-주변 관계가 공고화되었다. 중심에서 주변 혹은 반주변에서 주변으로 산업들의 재배치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이는 직접투자를 매개로 해서 이루어졌다. 아시아 국가들은 의존도가 높은 대미수출을 통해 수출지향적 산업육성전략을 구사하였으며, 산업화를 위한 기술, 자본유치에 있어서의 ‘개방성’ 및 수출지향성이 아시아 경제의 ‘필수’ 덕목을 구성하게 된다. 네 마리 용으로 부상한 아시아 신흥공업국(NICs)은 직접투자와 대외교역의 개방성을 극대화하여 성공한 모델로 꼽히며 아시아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이러한 ‘역동성’에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로 인용되어왔다. 그러나 전략산업 집중투자라는 성장전략에 따른 과잉중복투자와 금융투기자본의 급속한 유입은 동아시아의 연쇄적 금융위기를 발생시키게 된다. 또한 70년대 이후 미국경제 불황에 따른 수입이 감소하고 일본 거품경제가 붕괴함에 따라 그리고 동아시아에서의 기술혁신과 산업화 진전이 한계에 봉착함에 따라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하청네트워크 형태의 발전모델은 파탄에 이르렀다.
아시아에서 미-일 동맹이 유포해온 다음과 같은 자유무역 신화는 거짓으로 증명되었다.
첫째, 아시아의 경제성장은 역외교역의 활성화와 경제적 역동성 덕분이며, 이러한 경제적 역동성 때문에 아시아에는 지역경제체가 필요하지 않았다. 둘째, 자유무역체제는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과 소득 재분배 효과를 낳는다. 셋째, 자유무역체제는 특히 한국 등의 신흥공업국(개발도상국)에 또다른 기회를 제공한다.
생산의 ’초민족적 통합‘은 이에 조응하는 세계 소득의 재분배를 동반하지 않았다. 오히려 생산 네트워크의 세계화가 진전됨에 따라 중심에서 자본 집중이 증가하였다. 동아시아에서 신흥공업국들을 비롯하여 중하위소득국들이 전반적인 실추를 모면할 수 있었던 예외적인 능력은 일본의 하청 네트워크 확장에 덧붙여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이들의 국가장치가 누린 상대적인 자율성과 이 지역에서 소련과 중국의 영향력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이 이용한 지정학적 전략들과 관련된다. 일본과 동남아시아 간의 중심-주변 관계의 구성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지역이 출현하는 데에 근본적이었다. 일본의 다층적인 하청 시스템들이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의 다른 거점들로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은 이들 거점이 일본과 마찬가지로 미국 시장에 대한 특권적인 접근수단을 보장받았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따라서 미국의 관할권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아시아의 지역경제체제는 새롭게 구성될 필요가 없었고 수출의 판로를 확보하고 자본의 더욱 자유로운 이동을 강화하는 방식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또한 중국경제의 부상과 배타적 역내 블록화 움직임은 미국의 아시아 통제권 상실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그 ’개방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따라서 아시아 지역의 ’개방성‘이란 미-일동맹이라는 현존하는 권력관계의 지속을 승인하고 WTO 협상과 관세철폐 등 여타 지역블록 및 거대개도국 등을 압박하는 교두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말하며, 이는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무역 질서로의 철저한 이행을 촉구하는 촉매라는 APEC의 본질적 기능을 포장하는 것이다.
APEC 전개과정과 미-일 헤게모니에 대한 위협들
APEC은 1989년 11월 1차 각료회의를 계기로 창설되었다. 1993년 시애틀에서의 APEC의 최초 정상회담은 새로운 아시아-태평양 결속에 위협을 느낀 유럽연합이 서둘러 우루과이 라운드와 WTO발족에 대한 동의를 표하는 효과를 낳았다. 2차 인도네시아 보고르 정상회의에서는 ‘보고르 선언’을 채택하여 선진국 회원은 2010년, 개도국은 2020년까지의 무역 및 투자자유화를 실현하기로 합의하였다. 미국 등 선진국 그룹은 지적재산권, 노동, 환경 등 새로운 통상 이슈(기술 이전, 협력 등의 명목으로)를 APEC을 통해 타결하고자 하였고, 개도국들은 선진국의 개방 압력을 다자간 협상체제로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다양한 경제구조와 목적, 이해관계가 혼재한 가운데 APEC은 협력체로서 위상을 공고히 하는 한편, 관세, 무역장벽 등의 제거를 위한 제반조치를 강구하기로 하고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결과 이행 및 WTO체제의 성공적인 출범을 촉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후 APEC은 이 ‘보고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전략들을 구사하는데 첫 번째 경로는 3차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오사카행동계획이었다. 각 회원국들은 개별실행계획을 제출, 구체적인 일정을 수립했으나 이는 실패로 돌아간다. 또 다른 경로로서 APEC은 15개의 조기자유무역화 분야를 선정하지만 이 역시 합의를 도출하는 데 실패한다. APEC은 이후 오클랜드에서 세 번째 경로로 방향을 틀게 된다. WTO에 판돈을 걸고, WTO 뉴라운드 출범이라는 대세에 몸을 맡겨 전 세계의 자유화를 함께 성취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99년 시애틀에서 WTO각료회의는 무산되었다. 사실 이 무산에는 가장 큰 경제규모의 미국과 일본의 갈등이 큰 영향을 미쳤다. APEC의 자유화 경로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APEC의 틀 안에서 한편으로 쌍무협정들과 금융 자유화 조치 등은 꾸준히 강화되어왔다. 자본 이동이 극대화되고 외환시장이 국제적인 투기자본에 좌지우지되는 상황에서 초래된 금융위기로 인해 일본주도의 동아시아 발전모델은 파탄을 맞았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는 ‘관치금융과 거품경제’의 구조개선이라는 명목의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 수용으로 이어지고, 기존에 국가의 집중적 지원을 받아온 재벌체제에 대한 개선과 노동유연화 프로그램의 도입으로 일단락되며, 역설적으로 무역, 투자 자유화가 경제 활성화를 위한 필수과제로 대두된다. 따라서 자유무역의 확대를 위한 자유무역협정 등의 체결이 가속화된다. 외환위기 직후 금융안정화 방안에 따라 금융 분야 구조조정, 민간자본 및 투기자본의 역내 유입 촉진 등이 논의된다. 여기서 IMF 자금지원의 역할은 미국식 자본주의의 고유한 접근과 관리기준의 전파를 용이하게 만들고 금융자본에 우선순위를 부여한 메커니즘을 형성하는 것으로 나아갔다.
APEC의 위상은 전후 아시아지역 경제 주도권을 강화하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지역적 개방주의‘ 구상에서 비롯되었다. 1994년 APEC의 저명인사그룹(EPG)의 정의에 따르면, ’지역적 개방주의‘는 역내 국간에 최대한 시장개방을 실시하고, 개별국가들은 역외국에게는 역내자유화조치 혜택을 선택적으로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호주의에 입각한 자유화의 실시를 강조하는 ‘개방적 지역주의’란 WTO 체제의 순항과 자유무역 달성을 위해 아시아지역의 배타적 블록화를 저지하고, 거대 시장의 형성으로 여타의 경제블록을 압박하기 위한 수사다. 물론, 이와 별도로 아시아 내에서의 지역화 논의도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수출 흡수국으로서 중국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고, ASEAN +3(한중일) 진전, EAFTA(동아시아자유무역협정)모색 등이 이루어지고 있는 한편, 역내 금융협력체제 형성을 위한 아시아통화기금(AMF)의 창설(엔 블록화) 등이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미국이 느낄 ‘태평양 가운데 선긋기’의 위협은 미국 관리 하에서 일본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경제구조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단지 위협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2005년 APEC 정상회의와 노무현 정부
한편으로는 아시아에서의 배타적 지역화를 막고 유럽연합이나 메르코수르(남미공동체) 등을 모든 무역장벽이 제거된 자유무역의 바다로 끌어들이기 위해 미국은 줄기차게 FTAAP(아시아 태평양자유무역협정) 결성을 주장하고 있다. 세계경제의 60%를 차지하는 APEC이 FTAAP를 결성하여 차별의 조건을 내걸 경우 핵심 개발도상국(브라질, 인도 등)이나 유럽연합과 같은 거대한 비회원국들은 이를 이겨낼 재간이 없다. 따라서 배타적 경제블록들로부터 지역적 자유화보다 전 세계적 차원의 추진력을 회복하고 도하라운드 결론을 수용하도록 하여 미국을 정점에 둔 자유무역의 완성에 있어 APEC은 핵심 거점인 셈이다.
2005년 APEC 정상회의의 기조는 “하나의 공동체를 향한 도전과 변화”이다((미국을 중심으로 한)하나의 (빈부의 양극화를 위한) 공동체를 향한 도전과 변화). 유럽연합이 헌법조약투표 과정 등을 거치면서 통합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미국에 적대적인 지역공동체들의 강화와 중국 부상 등 현실적 위협에 대해 자원과 소득의 재분배를 불러올 것이라는 자유무역 신화는 여전히 도전 중인 것이다. 냉전 구도 하에서 그리고 냉전 이후 테러와의 전쟁으로 정치, 경제, 군사적 헤게모니를 장악해온 미국의 불안정성 증대는 자유무역의 완성을 시급히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 불안정성 증대와 종속의 심화라는 자유무역의 진실을 마주한 인민들은 가난한 자들에게 몇 푼을 적선하는 가진 자들에 대한 신뢰를 철회하고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외침을 확산하고 있다.
과연 자유무역체제는 ‘평등한’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전세계 소득을 증진시키고 고루 배분할 수 있는가? 노무현 정부는 ‘그렇다’고 말하고 있다. IMF 구제금융과 혹독한 구조조정의 터널을 거쳐 관치금융과 재벌-족벌 경영의 페해를 시정하고 (아직은 부족하지만)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감내할 노동력의 재구성을 이루어냈으며 금융자본의 출입이 자유로운 신자유주의 경제개혁의 위업을 달성했기 때문에! 또한 우리에겐 아직까지도 착취 가능한 동남아시아, 남미 시장이 존재하며 이를 위한 해외투자의 수행자로서 한국의 자본가계급이 든든히 제 갈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노무현 정부는 자유무역 질서는 지역사회의 민주화와 발전의 가능성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한다. 기존의 국가의 역할은 축소되고 지방화, 분권화가 이루어질 것이라지만 실상 이는 기존의 국가의 기능을 지방정부 등을 통해 강화하고 경제자유구역, 특구 지정 등을 둘러싼 지방 도시들의 경쟁을 부추길 따름이며, 이를 위해 시민들을 동원하고 관리하려는 전략에 불과하다. 이번 APEC 정상회의가 진행되는 부산시는 동북아 물류중심지로서의 위상을 제고하고 해외자본 유치에 가속도를 붙이는 등 APEC 준비과정을 지역경제의 구조조정의 계기로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있다. 초민족적 기업과 국민국가의 위상을 동등하게 다루는 투자자유화 물결은 국가의 역할 분산을 동반한다. 노동력 관리의 엄격함과, 연기금 개혁 등 국가 개입을 통한 투기자금의 형성의 역할은 강화되지만 신자유주의 개혁의 정치적 문화적 쟁점의 상당수는 NGO들에게 이전된다. 노무현 정부는 NGO들을 동원하여 자유무역과 금융투기의 활성화를 위한 APEC의 과제를 달성하고자 하고 부산여협, 부산여성연합 등의 여성단체들은 APEC 여성의제채택 여성연대를 구성하여 ‘중소기업, 영세기업 및 여성 참여 강화‘ 의제에 대해 집중하는 것으로 이에 조응하고 있다. 또한 노무현 정부는 6자회담 진전을 위한 부산선언문을 준비하는 등 정치적 차원에서 APEC을 활용하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주도의 ‘자유무역질서’와 ‘전쟁’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인권과 반테러’ 즉, ‘인간안보’라는 개념이 도출되는 APEC에서 동북아 평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미-일 동맹 헤게모니로의 통합이라는 동아시아 발전모델은 증대된 불안정성과 인민의 고통이란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아시아에서 인민들의 연대와 단결된 투쟁이 요구되는 것은 바로 자유무역 신화의 페해가 가장 극대화된 형태로 드러난 공간이기 때문이다. ‘단일한’ 착취 네트워크를 향한 자유무역질서의 전략적 요충지와 아시아-태평양의 군사기지로서 동북아가 갖는 지정학적 전략에 따른 미국의 재편전략이 수행되고 있다. 이 착취와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 우리는 이미 드러난 자유무역 신화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이 지배구조에 복무하는 노무현 정부를 비판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2005년 APEC정상회의에 대응하는 우리의 기조는 미-일 동맹과 노무현정부에 의해 확장되는 전쟁과 세계화에 대한 반대, 그리고 아시아에서의 인민들의 연대를 통한 대안세계화를 향한 투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