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의 주간지 사회와노동

'독도수호'는 민중의 요구가 될 수 없다!

한·일 지배계급이 공명하는 '(대미)군사동맹'을 분쇄하는 민중적 연대를 구축하자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 이후 폭발적인 反日여론: 어떻게 볼 것인가?

지난 3월 16일 일본의 시마네현 의회는 “다케시마의 날”을 정하는 조례를 상정, 가결했다. 바로 그 날 이후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등의 정치권에서는 “독도수호법 제정”, 독도가 ‘중간수역’으로 애매하게 설정되어있는 “한일 新어업협정 파기”, “군대파견” 등 갖가지 ‘해법’이 백가쟁명(百家爭鳴)식으로 쏟아냈다. 북핵저지시민연대 등의 극우단체가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장기를 소각하고 손가락을 자르는 등의 극단적인 방법으로 일본을 거세게 비난하는 가운데, “6.15 남북공동선언 실현과 한반도평화를 위한 통일연대”,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역시 일본을 규탄하며 항의집회을 개최하거나 독도에서 무기한 농성에 돌입하며 ‘반일’의 흐름에 동참하고 있는 형편이다.
정부차원에서도 대일관계 자체를 재검토하겠다는 듯 여러 차례 강경한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3월 17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는 “대일외교 4대 기조와 5대 대응방향”을 발표하면서 “해방의 역사를 부인하고 과거 침탈을 정당화하는 행위”라고 사태를 규정하였다. 급기야는 3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최근 한일관계와 관련하여 국민 여러분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다케시마의 날” 제정, 총리의 신사참배, 역사교과서 왜곡 등을 거론하며 “일개 지자체나 일부 몰지각한 국수주의자들의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집권세력과 중앙정부의 방조 아래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일본의 행위로 간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하며 “단호히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독도’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공방이 점차 전사회적으로 ‘반일여론’을 확산시키는 가운데 과연 남한의 사회운동은 이번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개입할 것인가?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번 사태는 미국과 일본이 한 축이 되고 남한이 적극적으로 조응하는 동아시아에서의 제국주의적 재편전략에 대한 비판의 현재성을 분명하게 부각하고 있다는 것이며 사회운동은 바로 이러한 현재적인 의의에 착목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반미반전 투쟁에 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첫째 ‘독도 영유권 논란’은 현재적인 동아시아의 제국주의적 재편과 관련되어 있으며, 둘째 ‘독도수호’를 외치며 ‘반일’이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지배계급과 별 다를 바 없는 국가주의적 동원전략에 무비판적으로 조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독도 영유권 논쟁’의 역사적 맥락: 전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독도 주변의 해역은 이른바 ‘황금어장’으로 불리며 예로부터 풍부한 어획량을 기록해왔다. 그렇지만 현재 ‘독도’를 둘러싼 영유권 논란에는 단지 조업권 등의 경제적 이익을 둘러싼 갈등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복합적인 역사적 맥락이 작용하고 있다.
일본은 1905년 시마네현 고시를 통해 독도를 일본으로 편입시킨다고 선포한다. 이후 독도는 40년 동안 시마네현에 속해 있었다. 한국정부가 독도를 실질적으로 장악한 것은 1952년 “인접해양의 주권에 관한 해양선언”을 통해 이른바 ‘평화선’ 안에 독도를 포함시키고 1953, 54년에 걸쳐 울릉도 민병대와 일본 해상보안청의 무장충돌을 거쳐 1956년 정식으로 한국의 경찰이 경비업무를 담당하면서부터이다. 일본정부는 독도가 카이로 선인이나 포츠담선언에서 규정하는 ‘침략에 의한 약취’ 지역이 아니라 1905년 ‘무주지 선점’에 의해 일본에 병합되었다고 주장하고 오히려 한국정부가 일방적으로 ‘평화선’을 설정하여 독도에 대한 일본의 ‘정당한’ 주권행사를 제약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국정부는 이미 독도는 ‘무주지’가 아니라 울릉도와 더불어 조선의 영토였음이 각종 고지도와 일본막부의 관련 문서를 통해 증명된다는 점, 따라서 1905년 독도의 시마네현 편입은 불법적이고 침략적인 것이기 때문에 1945년 해방될 때 ‘자연스레’ 독도는 한국의 영토로 귀속된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일본은 1954년 이후 줄곧 독도영유권에 대한 시비를 국제사법재판소에서 가리자고 제기하면서 오늘날의 상황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당초 독도가 양국 간에 논란이 되었던 직접적인 이유는 1946년 맥아더 연합군 사령부가 항복문서의 시행을 위해 일본정부에 보낸 각서에서 일본의 행정권을 정지할 때는 제주도 및 울릉도와 함께 독도가 명기되어 있으나,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통해 일본의 주권이 회복될 당시에는 독도에 대한 영토의 포기가 명시되지 않았던 데서 연유한다. 이는 당시 미국의 군사·정치적 세계전략 속에서 이루어진 전후 처리의 구상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2차 대전 종전 직후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진영의 급속한 ‘팽창’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루즈벨트의 ‘하나의 세계’ 구상을 폐기하고 트루먼의 ‘봉쇄정책’을 실행한다. 반소·반공을 기치로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복구에 주력하면서 패전국인 독일(서독)과 일본은 오히려 공산주의의 팽창을 저지하는 미국의 세계구상에서 ‘교두보’로서 새롭게 평가되고 미국은 이들 국가의 경제부흥을 물심양면으로 총력지원하게 된다. ‘전후 책임’보다 ‘시장경제로의 재통합’과 ‘반공’의 ‘전진기지’로서의 전략적 가치에 훨씬 무게가 실린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일본에게 군사적·정치적으로 사활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게 되었고 남한에 대한 정책은 종속적 가치를 부여받게 되는데 한국이 처음에는 ‘승전국(연합국)’ 지위였다가 이후 누락되는 과정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따라서 전후 한국은 ‘연합국’의 일원의 자격이 없는 상태에서 일본과의 ‘수교협상’을 진행해야 했다.) 동아시아에서 식민지적 사회·경제 관계의 청산은 무산되거나, 해방 직후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의 해체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군정 당국에 의해 억압되었다. 막 해방된 조선에서 미군정이 필요로 했던 것은 일제에 협력했던 관리들의 행정적 기술이었으며 ‘친일’ 관리와 경찰은 그들이 일제에 봉사했던 것처럼 미국의 반소·반공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따라서 반공·발전주의를 추진하기 위해서 남한의 집권세력들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대해 문제를 제가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고 ‘독도’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공방은 계속 임시방편적으로 봉합되어왔던 것이다. (오히려 박정희, 전두환 정권 당시에는 일본으로부터 거액의 차관을 도입하는 대가로 문제를 마무리짓지 않았고, 김영삼, 김대중 정권 때는 영토문제와 어업수역 문제를 분리하자는 일본측의 제의를 수용하기도 했다.) ‘독도’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갈등은 식민지적 사회·경제적 관계를 청산하기는커녕 유지·온존하는데 급급했던 미국의 동아시아 전후 처리의 부산물인 것이다.

제국주의 비판의 현재성: 미국의 세계전략에 조응하는 일본의 ‘우경화’

이번 시마네현 의회의 조례제정은 과거 일제 치하 식민지로서 침략과 수탈에 대한 원한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한국 내의 ‘반일여론’을 한층 증폭시키고 있다. 일본에서 국가주의/민족주의의 발호의 특징은 대부분 주변 국가와의 ‘과거사(근현대사) 왜곡’ 혹은 ‘영유권’ 문제를 둘러싸고 극우세력의 발언권이 강화되고 있다는 데 있다. 역사교과서 문제나 총리의 신사참배 문제만 하더라도 당장 중국과의 심각한 외교현안으로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쿠릴열도의 4개 섬 반환 문제나, 센카쿠 열도의 영유권 분쟁도 각각 러시아 및 중국·대만과 지속적으로 갈등을 낳고 있다. 주변 섬들에 대한 영유권 확보와 역사교과서의 서술에서 전쟁에 대한 일본의 직접적인 책임을 축소하자는 것은 그동안 극우세력이 주장한 ‘단골메뉴’였다. 압도적인 지지로 지방선거에서 재선된 도쿄 지사 이시하라 신타로가 다른 무엇보다도 중점적으로 추진한 사업은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원노조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행한 초·중·고등학교에서 국기게양과 국가제창의 의무화였다. 현재 총리인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남한과 북한,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줄곧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이 안치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있다. 올해 일본의 극우세력은 ‘잘못된 60년’을 청산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다. 자민당 내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우익세력은 극우파의 각종 활동을 묵인·방조하거나 지원함으로써 자신들의 ‘우경화’를 추진하는 밑거름으로 삼고 있다.
일본 내 우익세력의 목청이 커진 이유에는 장기불황과 청년층의 실업자 급증, 강력한 대중적 기반을 지니고 있었던 총평-사회당 블록을 주축으로 한 이른바 ‘혁신세력’의 몰락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1990년대 냉전의 종식 이후 미국의 세계전략에 조응하는 일본의 대외정책의 기조가 그동안 극우세력이 꾸준히 주장하던 방향과 일맥상통함으로써 일종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부각되는 쟁점이 이른바 ‘보통국가론’인데, 이는 군대의 보유와 집단자위권을 금지하는 현재의 ‘평화헌법’을 개정하자는 것이다. 지난 3월 15일 <마이니치> 신문에는 4월 발표된 이른바 ‘신헌법’의 대강이 보도되었는데, 여기에는 군대의 보유와 집단자위권의 명문화는 물론이고 천황의 국가원수화, 국방의무 부과, ‘유해도서’ 출판과 판매의 금지 등이 포함되어 명실상부한 ‘천황제 국가’로 회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을 낳고 있다. 일본의 우익들은 북한이나 중국의 명시적이거나 잠재적인 위협을 강조하며 미국과의 연대를 ‘보통국가화’의 근거로 제시한다. 미국 역시 이러한 일본의 시도를 지지하고 있는데 이미 1982년 우익의 ‘본류’로 평가되는 하카소네 前 수상(그는 1957년 “미일 안보조약” 개정을 주도했다.)의 노선을 계승하는 나카소네 수상이 레이건 대통령과 굳건한 ‘반공동맹’을 맺은바 있거니와 90년대 들어 “미-일 안보선언”(1996), “미-일 새 방위협력지침”(1997), “주변사태법”(1999) 등은 ‘유사시’ 주일미군과 이를 지원하는 자위대의 참전을 가능케 하는 단초가 되었으며 지난 해 고이즈미 내각은 자위대를 이라크에 파견한 바 있다. 그리고 얼마 전 3월18일 미국의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은 일본의 UN상임이사국 진출을 공개적으로 지지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을 증대하려는 일본정부의 노력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형편인 것이다.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주도하는 미국의 ‘의지연합’에서 막강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지지와 참여는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우경화’는 점차로 일본의 ‘재무장’을 필요로 하는 미국의 동아시아 재편전략, 나아가 세계전략 속에서 점차 힘을 얻고 있으며 이에 대한 우리의 비판은 동아시아에서의 제국주의적 군사재편에 대한 반대, 한-미-일 삼각동맹에 대한 비판, 나아가 ‘무한전쟁’과 ‘무한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사회운동의 반전-대안세계화의 과제 속에서 위치 지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비판하지 않는 ‘반일’은 민중의 생존을 담보로 추진되는 현재의 제국주의적 폭력을 간과, 내지 은폐하고 오히려 민중의 시선과 관심을 오로지 과거의 일제의 침탈에만 맞춘다는 점에서 퇴행적일 수밖에 없다.

‘독도수호’는 민중의 언어가 될 수 없다!
-한·일 지배계급이 공명하는 ‘(대미) 군사동맹’이라는 암묵적 카르텔


일본의 우익세력은 독도 뿐 아니라 주변 국가와 영유권 분쟁에 휘말려있는 모든 지역이 일본의 영토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움직임을 ‘군국주의 침략의 부활’로 규정하고 즉각 ‘영토수호’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은 언뜻 보면 가장 직접적이고 정당한 대응인 듯 하다. 그러나 첫째, 이는 무엇보다 사태를 ‘정략적으로’ 활용하려는 지배계급의 동원전략에 호응한다는 점에서, 둘째로, 무엇보다 동아시아 차원에서 진행되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재편전략에 공조하는 한·일 지배계급의 동일한 논리를 무력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국가주의/민족주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정당화는 방식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혹자는 독도는 일제의 침략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아니냐고, 따라서 ‘독도의 영유권’을 ‘수호’하는 것은 민중의 요구를 정당하게 드러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적으로 돌이켜볼 때 어떤 특정한 지역에 대한 배타적인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민중들 스스로의 권리를 주체적으로 쟁취하려는 것이었다기보다는 국가와 민족의 ‘영광’을 위해서 지배계급에 의해 ‘동원’되는 것일 뿐이었다. 왜냐하면 그 ‘동원’의 성과는 민족/국가에 대한 ‘상징’을 중심으로 애국심을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어떤 ‘경계’를 중심으로 그 외부의 집단에 대해 ‘단결’을 고취하고 내부의 ‘모순’과 ‘적대’에 대해서는 은폐하는 것은 지배계급이 급진적이고 저항적인 민중들의 운동을 무력화하는 가장 고전적인 수법이다. 민족주의/국가주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언제나 지배계급에 대한 비판세력은 ‘반역자’나 ‘스파이’로 매도당해왔다. 물론 ‘독도’는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영토분쟁과는 다른 경우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회운동이 배타적인 ‘영유권’을 주장하자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일본의 우익들의 요구를 ‘제국주의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고 한다면 과연 이에 대한 남한 민중들의 대응이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주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적합한 것인가의 질문을 던져야한다. 우리는 ‘영유권’ 주장의 논리가 첫째는 지배계급의 ‘동원전략’에 조응하는 것이라는 점, 둘째는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방식으로는 제국주의적 군사재편에 조응하는 일본의 ‘우경화’(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공명하는 것은 비단 이들만이 아니라 남한의 지배계급 역시 마찬가지이다)에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들어 운동진영 일각에서 제기되는 ‘독도수호’를 위한 캠페인을 반대한다.
사실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최근 각종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서 밝혀지는 바에 의하면 역대 한국의 정권들이 ‘친일적’이었고 나아가 ‘독도 영유권’ 문제를 포함하여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일본측의 술책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방조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1960년대 ‘한일국교 정상화’ 당시 박정희 정권이 ‘청구권’을 포기한 결과 얼마나 많은 징용노동자, 정신대 할머니들이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지난한 투쟁을 벌이고 있던가? 노무현 정권 역시 마찬가지이다. 취임 초기 일본을 방문하면서 공개적으로 “‘과거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장담하지 않았던가? 언제나 ’말‘로만 일본을 규탄하던 지배계급이었다. 이처럼 과거 일제의 식민지배로 인한 사회·경제적 관계의 근본적인 청산은 고사하고 피해받은 민중들의 권리회복에도 무관심했던 지배계급이 이제 ’독도수호‘를 들고 제법 강경한 어조로 일본을 질타하고 있다. 해방 이후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한의 지배계급의 행보를 보면 과연 이들이 진정 일본의 식민지배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지가 의문이다. 오히려 민중들의 요구를 “(친일파)인적청산”이나 “독도수호”의 범위로 가두고 적당한 수준에서 관리함으로써 민중들이 현재적인 제국주의 비판과 반대로 나아가는 것을 봉쇄하고 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독도수호”가 비판하지 못하는 것은 남한의 지배계급과 일본의 ‘우경화’가 암묵적으로 공명하는 동아시아의 제국주의적 재편전략이다. 아니 오히려 ‘독도수호’ 운동(?)의 성과는 객관적으로 이른바 ‘한-미 동맹’을 강조하거나 혹은 ‘자주국방’ 등 군비증강을 정당화하는 지배계급의 논리를 보강하는 것으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이미 보수적인 신문의 칼럼이나 사설에서는 미일동맹보다 강고한 한미동맹을 구축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이 제출되고 있지 않은가? 즉 우리는 일본의 우익보다 훨씬 더 ‘우경화’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일본의 우경화를 비판하고 나아가 그들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비판하려면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지배계급의 영유권 논리가 아니라, 일본의 ‘우경화’를 적극적으로 주문하는 미국의 제국주의 전략, 이에 공명하는 남한의 지배계급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사안들을 민중들에게 널리 알리기보다 “독도는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강조하는 데 급급하다면 이는 단지 지배계급의 ‘동원’에 무비판적으로 호응하는 것이며, 자발적으로 무장을 해제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대미 군사동맹’이라는 동아시아 지배계급의 암묵적 카르텔이야말로 오늘날 민중들이 투쟁해야할 대상이다!

제국주의/식민지 잔재의 청산은 현재의 모순과 사회적 구조를 바꾸는 데서 시작된다!
-동아시아에서 반미반전의 민중적 연대를 구축하자!


이번 ‘다케시마의 날’ 제정 이후 국내의 운동진영 역시 이러한 민족주의적 국가주의적 논리에서 그다지 자유롭지 않다. 막연하게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구호만을 가지고 극우보수 단체들과 그다지 구별되지 않는 국가주의적·민족주의적 논리에 기대어 대응하는 것은 일시적으로는 어필할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사회운동의 행동반경을 제약하는 올가미로 남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전(<사회화와 노동>241호, ‘친일파 청산인가, 식민지배/제국주의 청산인가?’)에 식민지/제국주의 잔재의 청산은 ‘친일파 청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 ‘제3세계’ 국가들이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는 오늘날 지극히 현재적인 과제이며, 나아가 식민지 시기부터 자리잡고 있는 사회구조 자체를 바꾸는 문제라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사회운동은 제국주의라는 지극히 현재적인 쟁점을 ‘친일파 청산’이나 ‘독도 수호’에 가두어버리는 지배적인 논리에 맞서야 한다. 민중이 배타적인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에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평화에 대한 보편적인 권리를 옹호하고 확장하기 위해 발언하고 투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독도는 과연 누구의 영토인가?”라는 질문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한·일 양국의 지배계급을 동시에 비판할 수 있는 제국주의 군사폭력에 대한 반대, 즉, 동아시아에서의 광범위한 반미반전의 민중적 연대를 추구하는 것이 사회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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