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사회적 교섭안을 둘러싼 극한 대립 속에 또 다시 무산된 가운데, 그간 국회 환경노동위 여당 간사로서 비정규개악안 처리를 주도해온 열린우리당 이목희 의원이 민주노총에게 이른바 ‘극좌 맹동주의자와의 결별’을 주문하고 나섰다. 이목희는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이 한줌도 안 되는 극좌 맹동주의자에 의해 나락에 떨어지는 모습이 안타깝고 그들에 대해 깊은 분노를 느낀다”는 열린우리당의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그는 “민주노총 지도부에 연민의 정을 느낀다”며 다소 흥분된 어조로 노동운동에 대한 그의 지나친(?) 애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또한 이목희는 “이번 민주노총의 대의원대회와 관계없지만”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여야합의에 따른 정부 비정규법안의 4월 조기 처리'를 분명히 한 뒤, “노사관계 로드맵안은 오랜 기간동안 한국노총과 논의해왔기 때문에 6월내로 처리하겠다”며 갑작스레 그 지나친 애정은 온데 간데 없이 오히려 ’민주노총의 배제‘를 시사하기도 했다.
2. 이목희의 이 같은 망언은 한 마디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무산될 수밖에 없었던 근본 원인을 고의적으로 외면한 채, 전직 노동운동가라는 경력을 앞세워 대의원대회의 물리적 충돌에 대해서만 ‘감 놔라 배 놔라’ 식의 훈수를 두는 것이다. 특히 “민주노총이 사회적 교섭기구 참여를 결정하더라도 비정규 법안의 4월 처리는 불가피하다”거나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더라도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 논의를 끝내겠다”는 대목은 그가 전직 노동운동가라는 명함을 팔아먹으면서까지 비정규개악입법을 반대하는 노동자대중의 피맺힌 절규를 묵살하려는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폭로해주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이목희의 어처구니없는 망언을 규탄해 마지않는다. 사실 이목희를 위시한 신자유주의 개혁 세력은 애초부터 비정규직 노동자의 실질적인 권리입법을 위해 노력할 의지가 눈꼽만치도 없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오로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조응하는 노동유연화 정책의 관철이었을 뿐이며, 이목희 스스로가 폭로하듯 사회적 교섭이라는 것 역시 참여라는 외양을 뒤집어쓰고 비정규직을 전면 확대하기 위한 수순에 불과했다. 노무현 정권은 바로 이 수순에 민주노총이 들러리서주기를 주문했던 것이다.
3. 이목희의 망언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바로 현재 민주노총 지도부가 보이고 있는 행보이다. 이처럼 뻔뻔스럽게 자신들의 의도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는 신자유주의 개혁 세력과 이른바 ‘교섭’이 가능하다는 판단은 도대체 어떻게 나올 수 있는 것인가? 노무현 정권이 사회적 교섭을 추진한 의도는 무엇보다 노동운동을 '교섭'의 이름으로 묶어두기 위함이었다. 오직 지배계급의 의도를 관철시키는 것에만 목적이 있는 사회적 교섭기구를 통해 노동운동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민주노총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사회적 교섭에 지금까지 헛된 노력을 쏟아 붓고 혼란에 혼란만 거듭했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더 이상의 사회적 교섭을 위한 노력을 중단하고 투쟁의 전면에 민주노총이 나서야 한다.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은 “정부가 비정규법안을 강행 처리하면 사회적 교섭을 폐기하겠다”고 이미 수 차례 선언한 바 있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지금이 바로 정권과 자본의 비정규법안 강행 처리 의사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시기이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민주노총이 사회적 교섭안을 폐기하고 노동법 개악에 맞선 단결된 계급대중의 투쟁을 조직하는 길에 떨쳐나설 것을 진심으로 촉구한다.
4. 정작 민주노총 지도부가 결별해야 할 세력은 이목희가 말하는 ‘극좌 맹동주의자’가 아니라 바로 이목희와 같은 신자유주의 개혁 세력이다. 지금과 같은 노동운동의 혼란과 동요, 분열이야말로 신자유주의 개혁 세력이 진정 원하는 것이며, 이목희의 ‘결별’ 발언은 이러한 동요와 분열을 더욱 촉구하고 나선 것이라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사회적 교섭안의 무리한 강행으로 인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파행은 그 찬반을 떠나 전체 민주노조 운동과 전선에 심대한 혼란과 위기를 초래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틈을 타 정권과 자본은 기아자동차 노조 비리 문제와 귀족노조 운운하는 보수언론의 비난공세 속에서 궁지에 몰린 노동운동을 이참에 아예 뿌리 채 뽑으려는 듯 공격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또 다시 물리적 충돌이 불 보듯 뻔히 예상되는 대의원대회 강행 방침만을 거듭한다면 한국 노동운동은 정말 회복하기 힘든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전체 노동운동의 위기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면밀하게 진단하고 그 위기의 해법을 계급대중의 단결된 투쟁 속에서, 비정규개악입법 저지 투쟁 속에서 하나씩 하나씩 마련해나가야 할 때이다.
2005. 3. 16
사회진보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