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0일 북한 외무성이 발표한 성명서는 핵무기의 보유를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그동안 무성했던 북핵에 관한 추측과 주장은 이로써 ‘공식화’되었고 한반도는 91년 미국의 전술핵 무기 철수 선언 이후 15년 만에 한반도는 다시 핵 지대가 되었다. 3월로 예정되어있던 제4차 6자 회담은 사실상 무산되었으며 위기의 한반도 호는 다시 한 번 폭풍과 마주하게 되었다. 성명 발표 이후 각 국의 언론들과 싱크탱크들은 성명서의 진의와 한-미-중 정부의 이후 대응을 중심으로 분석과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각 국 외교가의 반응을 초점으로 한 향후 행보를 묘사하거나 추측하는데 그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분석은 사태의 원인에 대한 적합한 인식이나 의미 있는 전망을 추출하는데 장애가 될 뿐이다. 우리는 지금의 한반도 위기가 어디서 연유하고 있으며 왜 반복되고 있는지를 몇 가지 질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북의 강경책이 문제의 원인인가?
주류 언론과 각 국의 싱크탱크들은 북의 핵무기 보유가 일본과 미국의 군비확충 정책을 가속화할 힘을 실어준다는 의미에서 북한 정부의 ‘실기(失機)’로 파악하는 견해를 피력한다. 더 나아가 여전히 현재의 사태를 한-미-일의 강경파와 북한 정권의 적대적 의존관계로 파악하고 있는 부류마저 존재한다. 물론 북한의 강경책이 한반도 위기를 심화시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위와 같은 사태 인식은 기본적인 인과관계를 외면하는 근본적인 결함을 지닌다. 소위 미국의 온건파 정부의 정책인 페리프로세스가 한반도 정책의 중심일 때에도 미국의 대북정책에서 한-미-일 삼각동맹은 그 핵심 축이었다. 즉 북한의 군사주의적 행보라는 선택을 결코 문제의 원인으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 현재 동북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워싱턴을 중심으로 주도되었다는 점, 그러므로 군비감축의 신호와 성의 있는 협상 태도를 보여야할 선차적인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점을 도외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입장을 가진 이들은 기본적으로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현실적인’ 상황이라는 알리바이를 등에 업고 미국 정권을 ‘상수’(常數)로 파악하는 종속적인 인식 틀을 밑바탕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문제의 실질적 파탄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북한 외무성 성명은 92년도 비핵화 선언과 94년도 제네바 합의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한반도 문제의 심각성을 의미한다. 주지하다시피 90년대 클린턴 정부의 대북 정책은 봉쇄-고립 정책으로만 일관했던 (아버지)부시 정부와 달리 핵, 미사일로 상징되는 대량 살상 무기의 '완전한 제거'를 목표로 ‘협상과 군사력 증강’을 양면으로 한 페리프로세스였다. 페리프로세스는 협상을 첫 번째 경로로 상정하고 있지만 군사력 증강을 협상의 후순위에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병행(Two-Path Strategy)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리고 이를 승인한 DJ 정부의 햇볕 정책은 여기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구조적 제약을 가지고 있었다.
클린턴 정권이 군사주의적 압박을 주요한 카드로 사고한 것은 94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게 상■하원 모두를 패배한 이후 레이건적 전통을 일부 수렴하면서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선거 이후 클린턴은 북한과의 협상 의제에 미사일 문제를 추가적으로 제기했다. 클린턴 정부의 한반도 정책을 무력하게 평가한 네오콘은 집권 초기 북에 대한 압박 정책에 보다 힘을 실음으로써 한반도 정책에 변화를 가져왔다. 물론 군비를 체계적으로 확장-강화하는 데에는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의 일관성은 충실히 확보했지만 말이다. 이렇게 10년을 보낸 미국의 대북정책이 사태를 어떻게 악화시켰는지는 모두들 아는 바와 같다.
현재 미국은 소위 리비아식 해법(a Libyan solution)과 같이 북한에게도 핵무기에 대하여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해체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할 것을 주문하고 있지만, 그와 연계된 다른 제안(보상)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주문은 리비아의 사례가 역설적으로 증명하듯이 북한이 선택지로 사고하기에는 불가능한 해법이다. 2003년 말 리비아가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한 이후, 미국이 리비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일부 풀기는 했지만, 별다른 경제적 보상을 약속하지도 않았으며 여전히 테러지원국의 명단에 포함시켜 일부 제재를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리비아 석유에 대한 통제권을 자본 진출이라는 명목으로 장악하려고 하고 있다. 리비아와 같이 무기를 선 포기하는 결단의 또 다른 어려움은 이라크 사례가 보여주고 있다. 이라크는 무기사찰단을 받아들였지만, 사찰단은 주권을 침탈하는 수준의 무리한 요구를 제기하여 지속적인 갈등을 빚었다. 미국은 이를 빌미로 이라크를 침공, 전쟁을 일으켜 후세인을 제거했다. 이는 북한이 미국의 주문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더욱이 부시와 공화당은 최근 의회에서 북한 인권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집권 2기를 맞이한 취임 연설에서도 폭정의 전초기지로 북한을 지목하는 등 북한에 대한 압박을 거론했지 대북문제의 실질적 해결에 관해서는 일언반구조차 없는 상황이다.
2.19 미-일 안보 공동선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편 이번 북한의 성명이 일본에 관한 언급을 적시하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성명에는 납북자 유골을 가짜라고 조작하면서 평양선언을 백지화한 일본에 대한 강한 이의제기가 짧지만 분명한 어조로 담겨 있다. 6자 회담의 한 주체로 나서고 있는 일본은 한-미-일 삼각동맹의 한 축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동북아의 미완된 교차승인의 한 당사자라는 점에서 동북아 평화체제에서 중요한 변수다. 현재 양국 간의 외교관계는 실체적 진실을 알 수 없는 납북자 유골문제로 악화일로에 놓인 상황이다. 사태를 더욱 비관적으로 만드는 것은 지난 2월 19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간의 안전보장협의위원회에서 미-일 동맹의 수준을 강화하는 공동전략 목표에 합의한 선언이다. 양국 간의 합의는 일본의 안보리 상임 이사국 지위 추구, 양자간 방위협력 수준을 극동지역을 넘어선 수준으로 추구하고 북핵 등 한반도 문제에 관해서도 긴밀한 공조체제를 구축하는 것을 요지로 하고 있다. 또 미국과 일본이 대만 문제를 포함하여 대(對)중국 정책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미-일 안보 공동선언이 북한의 성명 직후에 발표되었다는 점에서 특히 시사점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선언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수준에서 위기와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으며, 북의 외무성 성명과 견주어 볼 때 훨씬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다시금 드러난 노무현 정권의 무능
노무현 정부 역시 현 사태의 주범이다. 주지하다시피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이라크에 파병했다는 논리는 한반도 문제의 해결에 대한 대미 종속성을 가장 비극적으로 천명한 사례였다. 어디 그 뿐인가!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갈등의 재연, 김일성 주석 10주기 조문 논란, 평택 기지문제 등 노무현 정부가 남북관계의 당사자로서 무엇을 했는가는 그의 충성스러운 지지자들에게조차 비난받고 있는 실정이다. 남북특사로서 DJ가 나설 수도 있다고 표명한 것은 노무현의 무능을 드러낸 가장 역설적인 희극이다. 그러나 남한 정부가 ‘자주’적인 외교력을 가지고 대중(對中), 대북(對北) 협상력을 높이고 미국의 유연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일각의 목소리가 가지는 한계 역시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질서 하에서 철저히 미국에 종속되어있는 노무현 정권에게는 독자적인 국방, 외교 정책의 수행이란 이 구조적 제약을 벗어나야 하는, 따라서 불가능한 문제다. 기껏 해야 노무현 정권에게 부여된 카드의 효능은 사태를 봉합하고 지연하여 그럭저럭 버티기 이상이 될 수 없다. 지금 중요한 것은 외교적 술수에 의한 지연과 봉합이 아니라 남한을 비롯한 동아시아 수준에서의 대중운동의 활성화에 있다.
과연 지금과 같은 6자 회담이 의미가 있는가?
북의 성명 발표 이후 각 국은 한결같이 6자 회담으로 조속히 복귀할 것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북에 보내고 있다. 그러나 과연 다자 회담이 어떠한 성과물을 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설득력있는 근거들이 존재하는가? 2003년 북한의 NPT 탈퇴이후 열렸던 세 차례에 걸친 다자 회담은 여러 국제 정황으로 인하여 구성된 공간이지만 근본적인 한계를 내재하고 있었다. 기실 한반도 및 동아시아 문제에서 핵심적 축은 북핵과 주한미군의 문제인데, 이를 해결하고 논의할 수 있는 틀에는 실질적 당사자라 할 수 있는 미국과 북/남한 3국이면 족하다. 중, 러, 일 역시 지난 세기 동안 동북아 문제에서 모두 핵심적인 갈등의 당사자였던 것은 사실이나 현재의 구도에서 핵심 의제라고 할 수 있는 대북 문제를 풀 능력이나 권한을 갖고 있지는 않다. 물론 지난 세기 동안 동북아에서 벌어진 네 차례의 비극(청일전쟁, 러일전쟁, 태평양전쟁, 한국전쟁)을 떠올려 보면 동아시아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데 있어서 이러한 틀이 가질 의미는 존재할 수 있겠지만, 동북아 제국가들의 국가 팽창주의적 요소가 여전한 지금의 현실에서 6자 회담은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두 번째로 지적해야 할 다자 회담의 한계는 미국이 이 틀을 고수한다는 역사적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냉전 이후 미국은 자국의 사활적인 이익이 걸린 곳이라고 판단하는 지역에서는 강력한 개입주의적 대외정책을 표방했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에서는 방관하거나 국제기구의 이름을 빌려 부분적으로 개입했을 뿐이다. 이에 비추어 볼 때 북의 성명에 대해 백악관이 상대적으로 조용한 반응에 그치고 있는 것은 현재 미국의 대외정책의 핵심순위에 북핵 문제가 위치해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양자간의 대화는 부인한 채 막연하게 6자 회담 수준의 느슨한 틀을 유지만 할 뿐이었으며 북한과의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카드를 내놓지 않고 있다. 미국은 오히려 6자 회담 틀을 통해서 여타의 국가들에 행동반경을 제약하고 행여나 회담을 통해서 나올 수 있는 북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분담할 수 있는 안배를 획책했을 뿐이다. 미국이 6자 회담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사태의 해결이 아니라 대화의 틀을 유지하고 있다는 대외적 명분 그 자체일 뿐이다. 이것이 2년에 걸쳐 세 번이 열린 6자 회담에서 별다른 가시적 결과물을 산출할 수 없었던 이유다. 그러므로 단순히 북한에게 현재의 수준에서 조건 없는 6자 회담 복귀를 촉구하는 것은 우스운 주문일 수밖에 없게 된다.
북한의 선군정치(군사 우선 정책)가 한반도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가?
한편 핵무기 보유 자체를 둘러싼 문제는 민중운동 내에서도 쟁점이 되고 있다. 외무성 성명을 보면, 이북은 자신들의 핵이 자위적 핵으로만 남을 것이며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에는 변함이 없음을 천명하고 있다. 92년 비핵화선언에도 불구하고 지난 12년 동안 무책임한 협상 태도와 일관된 군사력 증강을 한반도에서 도모했던 미국의 행보는 북한으로 하여금 군사주의적 해결방식을 (병행하는)선택하도록 강제했다. 사실 92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선언의 당사자가 남/북한에게만 국한되어 있기에 한반도 내에서의 미국(혹은 여타의 국가)의 핵무기 사용에 대한 일체의 구속력을 가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절반의 선언에 그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행보가 한반도 주변의 위험을 증대시켰다는 것도 간과할 수는 없다는데 있다. 비록 북한의 선군정치가 제국주의 질서에 의해 강제된 선택이라 ‘항변’하더라도 그 형태가 ‘핵’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있다. 무엇보다도 일부 운동진영의 주장처럼 북의 핵 보유 선언을 선군정치의 승리라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북의 핵 보유가 즉자적으로 동북아의 전쟁 억지력을 가져다온다고 보기에도 어려우며, 핵무기가 가지는 절멸의 위험성을 고려할 때 북 역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의 정신을 훼손한다는 평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핵이 가지는 파괴력은 ‘절멸’의 위험일진데 핵에게 자위적 성격을 부여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방어적 이유에 근거한다 하더라도 핵이 태생적으로 상호절멸의 위기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지금과 같은 북의 군사주의적 대응이 한반도 평화체제의 지렛대가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게다가 핵무기 보유는 사태를 확실히 비가역적인 국면으로 만들어갈 수밖에 없기에 사태는 더욱 비극적이다. 주 유엔 북한 대표부 대사인 한성렬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의 CVID도 가능하지만 이는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이 확실히 이루어질 때만 가능하며 이 경우도 그 성격상 오랜 기간(10년 이상)을 거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
한반도 위기에 맞선 단호한 태도와 실천이 필요하다.
이번 북한의 외무성 성명과 미-일 안보 공동선언은 제2차대전이 종전된 지 6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 여전히 민중의 평화가 도래하는 길이 험난하다는 것을 새삼 말해주고 있다. 현재 한반도 위기는 북한의 군사주의적 선택을 초래한 미국의 일방주의적 태도와 이에 안보 공동선언으로 호응하는 일본과 한미공조를 튼튼히 하는데 소홀함이 없는 남한 정권에게 그 책임이 있다. 한-미-일 삼각동맹이 굳건한 지금의 상황에서는 어떠한 유형의 회담이라도 상황을 반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사태를 해결하는 경로로써 한-미-일 삼각동맹에 맞선 핵을 동반한 군사주의적 대응을 수긍하기도 어렵다. 같은 맥락에서 노무현 정권의 자주적 외교를 촉구하거나 북의 핵 보유를 선군정치의 개가라고 평가하는 태도 역시 해결책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위와 같은 입장들은 모두 대중의 운동을 사태의 해결에서 철저히 배제하거나 폄하시킨다는 면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민중의 평화에 대한 결정권을 국가기구의 외교적 기술, 군사적 능력에 위임하는 것이 가져올 결과는 기껏해야 한반도 위기가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것에 그칠 뿐이다.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를 되찾기 위한 전제조건은 대중운동을 하찮은 종속변수가 아니라 진정한 문제의 해결자의 위치에 놓는데 있다. 반전반미평화를 외치는 대중운동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결코 한반도 위기를 제대로 마주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년 전 세계적인 차원의 반전평화운동이 베트남을 비롯한 곳곳에서 제국주의 질서를 패퇴시켰던 대중운동의 역능을 기억하고 있다. 90년대 이후 반복하고 있는 한반도 절멸의 위기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그리고 이 위기가 신자유주의 경제통합에서 기원한 새로운 제국주의에 있다고 한다면 남한을 비롯한 동아시아 수준의 반전운동과 대안세계화운동이 활성화되고 결합되는데서 그 출발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