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녀'. 요즘 한창 네티즌들의 뭇매를 맞고 있는 한 여대생에게 붙여진 별칭입니다. 아시다시피 지하철 객실 안에서 자신의 애견이 실례(?)를 한 일로 생긴 해프닝이 디카에 찍혀 인터넷에 유포되면서 촉발된 사건입니다.
여대생이 그냥 사라지자 한 노인이 구부리고 앉아 개똥을 치우는 장면이 네티즌들의 분노를 산 모양입니다. 여대생의 행위가 비판을 받아 마땅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렇다고 한 여인을 이렇게 '개똥녀'라고 부르며 뭇매를 가하는 게 옳은 일인지 그 판단이 쉽지 않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개똥녀에 대한 비난이 수그러들지 않음과 동시에 그녀의 인권에 대한 지적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비난을 받을 일이긴 하지만 그녀의 신상(학교와 학번까지)이 공개되는 것까지는 너무했다는 여론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전후관계를 생략한 채 한마디씩 하지만, 그렇게 형성된 여론은 한 인간을 매장시킬 수도 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겠죠. 그러나 그녀가 당한 심리적 충격과 상처, 그로 말미암은 데미지는 우리 모두가 부담해야 할 사회적 비용이 될 겁니다.
개똥녀의 사회적 파장은 대단합니다. 여기저기 카페가 생겨나고 각종 패러디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녀가 다니는 학교에 대한 불명확한 정보와 지니고 있던 악기 가방에 대한 정보까지 나돌고 모자이크가 삭제된 사진이 유포되고 찾아내서 창피를 주자는 말도 돌고있습니다. 경범죄로 처리되면 될 일인데, 그냥 재미 삼아 보기에는 도가 지나쳤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똥녀 보다 훨씬 심각한 부도덕한 일들이 비일비재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
렇게까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현장의 모습이 고스란히 모니터 되었다는 구체성과 '개의 똥'이라는 선정성, 그리고 이 사회의 불합리한 일들에 대하여 분노를 삭이고 있었던 네티즌들 잠재의식의 표적이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개똥녀의 행위에 대하여 비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만, 나아가 상대의 인권을 생각할 줄 아는 따뜻한 비판 문화가 이제는 자리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상대에 대한 비판이 비난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익명성을 빌미로 무차별적으로 난무하는 비난은 쾌감을 지향하는 '배설 문화'의 산물입니다. 사회에서 추방되어야 할 변태적인 성적 욕구의 출구이기도 합니다. 하여, 또 하나의 "개똥"이 된다는 점에서 큰 문제입니다. 이건 역사와 의식의 발전이 아니라 퇴보입니다.
철저한 자기 성찰과 반성 그리고 애정 어린 충고가 담보된 비판 문화, 그리고 성숙한 네티즌의 인권의식이 아쉽습니다. 상대의 관심을 끌기 위한 선정성과 상업적인 마인드는 이 사회를 더욱 삭막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도 '개똥녀의 인권'을 생각할 만큼 성숙한 시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주현(경기민언련 사무처장)